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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변 Nov 25. 2020

소설은 효자손이다.

귀욤 뮈소, <아가씨와 밤>을 읽고




이름이 귀욤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운해할 귀욤 뮈소의 추리 소설이다. <구해줘>에서 받은 인상이 워낙 강렬했던지라, 사무실 책장에 꽂혀 있는 놈을 바로 집어 왔다. 약간 멋부린 듯 하면서도 센치해지지는 않는, 선을 아슬아슬 지키는 그의 스킬이 부럽다. 내 글은 신파극이거나 태극기부대거나 둘 중 하나인데.





내게 과거는 추억의 보고가 아니라 비극의 진앙이었고

게다가 아버지는 치과의사만큼이나 거짓말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이었다.


'자기 방식대로 사랑한다'는 말은 결국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과 동의어이다.


여자에게 신비스러운 면이 없다면 남자들은 과연 무엇을 사랑한단 말인가?





내 노트에 메모된 영광을 누린 문장들이다. 공통점은? 소설 전개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 개인적으로 소설은 플롯과 관계 없는 작가의 육성이 들릴 때 더 흥미진진하다. 읽으면서 고개가 끄덕여지면서도, 한 번 더 생각해보면 정반대의 이야기도 수긍할 수 있는. 그래서 무해한 문장들.






이 세상에 정직한 치과의사가 얼마나 많겠는가? 김태희, 김희선, 스칼렛 요한슨, 레이첼 맥아담스가 자신의 모든 것이 털어놓은 편지를 들고 전혀 신비롭지 않은 모습으로 고백해 와도 사랑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소설의 힘은, 현실도 허구도 아닌 뒤틀린 공간에서 엉터리 문장들도 묘한 감동을 주게 된다는 데 있다.








아무리 몸을 뒤틀어도 손이 닿지 않는 가려운 곳. 바로 거기를 긁어 주는 효자손 같은 이런 문장들을, 소설가들은 대체 어떻게 도처에 마련해 놓는 것일까? 필경 그들의 명언집 같은 게 있어서, 생각날 때마다 메모를 하겠지. 그리고 인세가 떨어져간다 싶을 때, 플롯은 대충 짠 다음에 명언집을 들치는 거다. 주인공한테 담배 한 대 꼬나물린 다음에.





소설 자체는 사실 그저 그랬다. 스토리가 막장 드라마 그 자체고, 개연성도 매우 떨어진다. 아무래도 스릴러 전문 작가가 아니다 보니까. 대신 여주인공(한 번도 등장하지는 않는게 포인트)에 대한 묘사가 볼 만 하다. 귀욤 뮈소의 팬이라면 읽어봄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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