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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변 Feb 16. 2021

히가시노 게이고를 용서하기로 했다.

히가시노 게이고, <매스커레이드 호텔> 을 읽고



설 연휴에 아빠로부터 핀잔을 들었다. 구매한지 6개월쯤 된 전자책으로 몇 권이나 읽었느냐고 물으시고는, 10권 남짓 읽었다고 대답하니, "요새 책 잘 안 읽는구나?" 라고. 어린 마음에 - 라고 하기에는 너무 징그럽게 커 버린 아들이지만,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싶어하는 욕구는 모든 아들의 마음이라, 그 한 마디가 비수처럼 다가왔다. "책 좀 읽어라" 투의 비난하는 투가 아니었다. '누가 봐도 안 바빠 보이는데 어쨌든 바쁘구나. 못내 아쉽다.' 는 말을 다 삼키고 대신 뱉으신 한 마디에 순간 얼어붙었다. 망할 방어기제는 일사불란하게 작동해서, '책장을 넘기는 맛이 없고 진열하는 재미도 없어서 종이책을 본다' 어쩌구 저쩌구 하면서 제멋대로 주워섬겼다. 설날 아침의 눈치없이 따사로운 햇볕이 빈 떡국 그릇만 빤히 비추었다.








소설을 읽고 싶을 때면 일본 소설을 찾는다. 히가시노 게이고와 오쿠다 히데오를 좋아한다. 위트있고 가볍게 쓰고 싶어서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백야행>이나 <가면산장 살인 사건>은 꼭 한 번 읽어보길 권한다. 그런데 이 작품만큼은 '드럽게' 재미가 없었다. 아버지가 아니었다면 <매스커레이드 호텔>은 완독하지 못했을 거다. <매스커레이드 호텔> 시리즈의 3편인 <매스커레이드 나이트>를 꽤나 재미있게 읽어서 별 의심치 않았는데, 보기 좋게 기대를 저버렸다. 소설을 억지로 꾸역꾸역 읽은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길이는 또 왜 이렇게 긴지.






기껏 책을 읽어 놓고 글로 남기지 않는 것은 배신행위다. 그래서 뭐라도 써야지 하고 키보드 위에서 손가락은 허공을 저었다. 망연히 소설 제목을 인간지성의 결정체인 나무위키에 검색해 보았다. '메카니즘'인지 '알고리즘'인지 알 수는 없지만 당연히 히가시노 게이고 문서에 표류했다. 극찬 일색일 줄 생각했으나, 의외로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소설가라고 평가되어 있었다. 多作하는 만큼 拙作도 많다고. '본격 미스터리 기준에서는 동기나 트릭 등이 지나치게 감정적이고 우연에 의존하는 것들이 많다는 이유로 혹평'받기도 한다고. 그래, 하며 한결 마음이 나아졌다. 그 많은 작품 중 처음으로 졸작을 만난 거였구나. 이 분도 사람인데, 어떻게 다 재밌을 수가 있느냐. 전자책으로 10% 싸게 산 게 어디냐. 공간도 안 차지하고.




그래서 나는 고민끝에, 히가시노 게이고를 용서하기로 했다.

좋은 소설 추천해 주세요.

아참, 히모 씨는 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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