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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변 Apr 11. 2021

언젠간 한번 써봅시다

장강명, <책 한번 써봅시다>를 읽고

요 사이 책을 꽤 읽어서인지, 서점 매대를 돌아다니다 좋은 책을 발견하는 솜씨가 늘어났나 보다. 11년간 기자였다가 소설, 에세이, 논픽션 등을 써내는 전업 작가가 된 필자는 작가를 꿈꾸는 사람에게 '한 번 해보라'고 꼬신다. <책 한번 써봅시다>가 특별한 이유는 작가가 되는 how to become 방법에 대해서 약을 팔지 않는다는 점이다. 필자는 작가와 작가 아닌 자를 구별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것을 인정하고, 작가와 '작가 덜 된 사람'이 있으며 둘 사이의 거리는 (본인 생각에) 합리적인 노력을 통해서 메꿀 수 있다고 설파한다. 1년에 1500명씩 늘어 가는 변호사 시장에서, 변호사들이 사다리를 고상하게 걷어찰 수 있는 방법을 고심하게 되는 것과 비교된다는 엉뚱한 생각에 쿡쿡 웃었다.






책을 쓰는 것이 '버킷 리스트'는 아니다. 버킷 리스트라는 이름이 왠지 모르게 '가오'가 떨어져서인지, 그런걸 몰래 갖고 있는 건 왠지 모르게 유아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장보기 리스트도 아니고, 필생의 과업들을 리스트해서 적어 놓는 것은 예우가 아니랄까. 그러나 죽기 전에 책을 써 보고 싶다는 생각은 좋든 싫든 내 욕망의 피라미드 펜트하우스에 고고하게 똬리를 튼 지 오래다. 



그 생각은 로스쿨에 들어가고서부터 확고해졌다. 당신이 '모범적인 로스쿨생'을 뭐라고 정의하든, 나는 결코 그런 학생은 아니었다. 시절이 하수상해 로스쿨 내 암투를 그린 드라마까지 방영 예정이라던데, 특별히 열심히 공부하는 것도 아니지만 둘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잘 놀아제끼느냐 하면 그것도 아닌, 애매한 캐릭터가 있다면 딱 나일 것이다. 자연히 성적은 부모님에게 미소로 화답하고, 남들에게는 그저 그럽니다 허허, 나에게는 부끄러운 딱 그 정도였다. 왜 그랬냐 하면, 고등학교 교실 문앞에 나붙는 모의고사 석차표보다 더 빽빽한 법조계의 엘리트 코스에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던 것 같다. 군대를 다녀오지 않아 대부분 동기들보다 어려 한창 철이 없을 때라, 서울에 집을 사려면 월급이 얼마여야 하고 결혼을 하려면 얼마가 필요하고 기타등등 이런 현실적인 내적 압박이 없었던 것도 한몫 했다. 물론 다른 미필 동기들은 쌩쌩한 머리를 무기로 평균보다 더 잘하면 잘했지 못하지 않던데... 결국 내 탓이오... 



그래서, 자의 반 타의 반 먹고사니즘 엔지니어링을 가동해보니 자연히 생각은 변호사 자격증을 따고 어떻게 먹고 살아야 할까라는 문제에 봉착했다. 하라는 건 안하고 이런저런 잡생각만 하는 게 특기고 페이스북 시절부터 끄적거리는 걸 좋아했던 나에게 작가로서의 삶은 굉장히 매력적이었다. 집 근처에 허름한 사무실을 빌려서 월세 걱정을 하다가도, 가뭄 콩 나듯 찾아오는 남루한 행색의 의뢰인들과 울다 웃고 그들과 나의 휴머니즘 넘치는 이야기를 책으로 펴내 종국에는 밀리어네어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어 인세로 먹고사는 상상의 나래를 펼치면서, 법학관 열람실 한 구석에서 던져버리고 싶은 암기장을 웅둥그렸더랬다. 







물론 현실은 매우 냉혹하고 나도 말이 10리는 앞서는 타입이라, 책은 당연히 엄두도 못내고 뭐 먹고살지도 모르는 지경에 이르러 법무관 생활의 후반기를 맞이했다. 다만 위안이 되는 것은 내가 이런 글을 쓸 수 있다는 거다. 로스쿨 생활에서의 심리적 결핍과 모순을 극복하고, 내 마음이 어떻게 생겼는지 웃으며 돌아볼 수 있는 여유가 있다. 그리고 그 비결은 책과 글에 있는 것 같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든,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내가 어디 있는지 생각하며 살아가야겠다고 다짐한다.



글의 힘은 참으로 오묘하다. 정확한 언어로 자기 안의 고통과 혼란을 붙잡으려 할 때, 쓰는 이는 변신한다. 그런 글을 쓰면 쓸수록 그는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어 간다. 에세이 작가는 단어와 자기 마음을 함께 빚는다. 한번 그 맛을 알면 점점 더 솔직하게 쓰게 된다. 에세이는 사람을 성장시키는 장르다. (112쪽)


써야 하는 사람은 써야 한다. 
책을 쓰고 싶다는 마음을 포기하는 것을 포기하자. 
의미를, 실존을, 흔들리지 않는 삶의 중심을 거머쥘 수 있는 기회가
바로 눈앞에 있다. (6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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