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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영 Oct 27. 2021

너는 그냥 BTS가 좋은 초딩일 뿐인데.....

상담 한번에 심하게 생각 많았던 엄마 이야기

 아이의 통지표에 적힌 '행동특성 및 종합의견'을 보면 큰 딸은 나무랄 것이 하나도 없는 거의 완벽에 가까운 아이다. 내 아이가 정말 이렇단 말인가??


 주변사람들과 자식 이야기를 할 때 큰 딸 수아에 대해서 이런 저런 걱정이 된다고 말하노라면  "배부른 소리 하고 앉았네"라는 말만 돌아온다. 걱정할 게 하나도 없는 사람이 쓸데없이 사서 걱정한다는 눈초리.

그런데 과연 내 아이를 보면서 걱정이 없고 완벽하다고 생각하는 부모가 몇이나 될까? 있기나 할까?





 얼마 전 학교 담임선생님과의 2학기 상담 중. 아이의 수학공부 문제를 이야기하게 되었다.

(저학년일 때는 보통 아이들의 학교생활이나 언어습관, 행동특성을 많이 이야기 하는 것 같고, 고학년으로 올라갈 수록 학습적인 부분에 상담이 집중되는 거 같다)


" 제가 교직 생활 하는 중에 5,6학년 고학년을 주로 맡아 왔는데요. 그 학년 정도 되면 이미 아이들이 중학교 1, 2학년 수학을 풉니다. 그런데 진짜 그 학년의 실력을 가지고 있는지를 모르겠더라고요. 그리고 아이들이 푸는 문제들을 보면 아주 기초적인 문제들을 반복적으로 많이 풀기만 하고 있어요. 그런 문제를 많이 푼다고 해서 아이가 수학실력이 느는건 절대 아니거든요. 그래서 제가 작년에 실험(?)을 좀 해보았습니다.  그 때 저희 반 아이들이 대부분 중학수학을 학원에서 선행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제가  6학년 문제를 풀려봤더니 60점 정도 맞는 아이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6학년 내용에 대한 확실한 이해가 없이 그냥 중학교 문제를 풀고만 있었던 겁니다. 그건 진짜 실력이 아니죠. 진짜 수학 실력은 조금 심화된 문제를 풀려야 하는대, 아이들은 학원에서 내주는 아주 기본적인 문제를 숙제로 많이만 풀고 있더라는 겁니다."

"네 선생님~ 그러잖아도 제가 수아를 6개월 정도 수학학원을 보냈다가 그만뒀거든요. 아이가 너무 기계적으로 많은 양의 숙제를 하고 있는거 같고. 아이는 지쳐만 가고 수학을 싫어하게 되더라구요. 아직 5학년 2학기도 시작 안했는데 이미 6학년 1학기는 다 끝내버렸더라구요. 그런데 무엇보다 수아가 수학을싫어하게 되고 숙제 부담감에 스트레스를  받아가는 것 같아서 제가 먼저 그만 두자고 했습니다."


"네 어머니 잘하셨습니다. 수아 정도의 아이는 동네 수학학원의 기본적인 숙제만 반복적으로 하는 게 맞지 않다고 봅니다. 그리고 제가 볼 때 여기 학교 아이들이 학업 수준이 아주 높은 건 아닙니다.  수아는  재능이 많고 잘하는 아이에요. 선행만 돌리지 마시고 심화 문제를 풀려서 실력을 높이는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요즘 보통의 아이들은 학교에서 어떤 문제를 던져주면 해결을 못하고 쩔쩔매거나 그 자리에서 포기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제가 본 수아는 문제해결력도 좋고 문제가 주어지면 계획을 세워서  잘 합니다. 그러니 높은 자극을 줘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또 보통 애들이 스마트폰을 사주면 유튜브나 게임만 주구장창 하거든요. 근데 수아는 영상편집도 잘하고 아이패드 드로잉도 할 줄 알고 재주가 많은 아이더라구요. "


선생님과 전화를 끝고 순간 몰려오는 혼란스러움...음.. 일단 수학학원을 끊은 것은 잘한거고.. 그럼 그 다음에는 어쩌라는 거지??



여러가지 생각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1. 뛰어난 아이를 일하는 엄마라 바쁘다는 핑계로 그냥 방치하고 있는 건가

2. 맹모삼천지교라는데 심화를 시킬 수 있는 학원을 알아봐서 보내야 하나

3. 공부잘한다고 유명한 학교를 찾아서 보내야 하나

4. 할 놈은 어디다 데려다 놔도 하던데 왜 그러니


뭔가 중심없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담임 선생님과의 상담은 이제 곧 중학생이 될 우리 큰 아이의 공부 문제를 가지고,  내가 다시 공부 경쟁 속으로 뛰어들어야 할 것만 같은 불안감이 느끼게 했다. 요즘 엄마들은 내 공부가 아니라 내 아이의 공부를 가지고 경쟁하고 있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기에....


 나도 꽤나 오랜 시간 동안 공부와 경쟁의 구도에서 자유롭지 못한 학창시절을 보냈고,  쓸데없는(?) 학구열로 학교를 좀 길게 다녔었다. 학교를 오래 다녔다는 것은 학문적인 깊이가 쌓였다는 것일 수도 있지만 경쟁에 더 오랜 시간 노출되었고 더 예민하게 단련되었다는 것일 수도 있다.


  아이가 한 학년씩 올라갈수록 결국 나는,  공부 경쟁의 구도에서 자유롭지가 못했던 나의 학창시절 마인드가 스멀스멀 기어 올라오려고 하는 것 같아 두렵다. 그 경쟁이 때론 아주  무의미하고 때론 매우 아픈 것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이미 나는 알기에 말이다.




  이런 마음과 상관 없이 딸은  오늘도 나에게 질문을 한다. "엄마!  BTS에서 누가 제일 잘 생긴거 같아요?"(RM빼고는 그 얼굴이다 그 얼굴 같던데....), "요즘은 에스파가 젤 예뻐요~ 춤도 완전 잘 춰요~" (얼굴 작고 마르고 다 똑같이 생겼더라) .

   그리고 슬라임 영상에 자막을 넣고 영상을 편집하고, 가끔은 먹방 촬영을 흉내내서 유튜브에 올리며 신나게 초등 5학년을 지내는 중이다.


 그냥  요즘 보통의 초딩5학년을 두고, 나는 내 아이가 무슨 영재라도 되는 냥 뒤죽박죽 혼란스러웠다.  선생님과 상담 전화 한통에 너무도 많은 생각을 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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