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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영 Dec 20. 2021

칠순 아빠의 사랑 고백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냐! 너는 나쁜 애야!"

"어..어.. 앙~~~"


정확히 몇 학년때였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나는 초4, 동생은 초2정도였을 것이다),  두살 어린 동생의 일기장을 우연히 보았다. 일기장에는  우리 아빠가 진짜 아빠가 아니었으면 좋겠고. 진짜 아빠가 나타나서 지금 아빠와 바뀌면 좋겠다는 내용이었다. 동생의 일기장을  몰래  본 거면 모른척 했어야 했는데, 나는 동생에게 화를 냈다.

동생은 울음을 터트렸다.

그러면서도  그 때의 나는 동생의 마음이 이해되기도 했다.


  어린 시절, 내 기억 속의 아빠는 성격이 급하고 다혈질적인 모습이 많아서 화를 자주 내셨다. 물론 평상시에는 대체로 과묵하셨고, 가끔 한마디씩 하시는 유머는 상당히 재밌는 편이긴 했다. 그리고 술을 드시고 오시는 날에는 과묵함에 표출하지 못했던 자식들에 대한 애정을 술기운을 빌어 표현 하시곤 하셨던 분이었다.(우리 세대의 아버지들은 대부분 그러했을거라 생각한다)

 

  아빠가 화를 내면 무섭고 싫기도 하지만,  어찌됐건 내 아빠이니 나는 부모를 사랑하고 존경해야 한다는 도덕적 기준을 어기면 안된다고 생각했던 거 같다. 그래서 그런 솔직한 마음을 쓴 동생의 일기를 보고 동생을 나무란게 아닌가 싶다.


  그렇게 자라는 동안 늘 아빠는 무서운 사람이었고, 그래서 무서운 아빠의 기준에 어긋난 아이가 되면 안되었기에 성실하고 착했던 것도 같다. 그런데 문제는 그만큼 아빠와는 '마음의 거리'가 생겨났다.  진로의 문제나 특히 돈이 필요한 상황이 되면 일단 엄마에게 이야기를 하고 엄마를 통해서 아빠에게 전달해서 최종 승인을 받는 식이었다. 아빠는 경제적인 부분에서는 탄탄한 지원군이 되어주었지만, 정서적인 부분에서는 저만치 떨어져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 아빠가 올해 칠순이다. 풍채가 좋았던 아빠가 이제는 살도 근육도 많이 빠졌고  머리는 이제 염색을 하지 않으면 흰머리가 더 많은 할아버지다.  칠순이라는 나이는  외형만 변하게 한게 아니었다. 아빠의 급한 성질은 어디 갔는지 찾아볼 수 없고, 다혈질적인 모습은 더더구나 찾아보기 힘들다.(물론 엄마는 아빠가 아직도 가끔은 '욱'한다고 말씀하시지만)

 

 

  형제들이 함께 하는 단톡방에 칠순의 엄마와 아빠가 함께 들어와서 우리들의 대화를 보면서 어떻게 사는지 늘 지켜보셨는데, 얼마 전부터는 아빠가 그 대화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정말 놀라운 변화다.


그런데 더 충격적인(?) 변화는 엊그제  동생이 한 이야기에 있었다


"아빠가 나한테 사랑한대!!  나 진짜 깜짝 놀라가지고 당황했잖아. 그것도 은근 슬쩍 다른 말 하다가 아빠가 섞어서 넣었는데, 나 너무 당황했잖아~ 그래서 나도 사랑한다고 했어! "

"세상에~ 아빠가??"


 아빠가 나에게 건강 챙겨라, 퇴근은 했냐, 밥은 먹었냐 개인톡을 보낼 때도 적응이 안되고 있었는데, 동생의 이야기는  정말 충격에 가까운 이야기였다.


사실 고백하자면

이 나이먹도록 엄마 아빠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해본적이 없다. 언제나 할 수는 있을려나 그러고 사는 중이었다.


그런데 아빠가 먼저 막내 딸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했다고 하니..

왠지 조만간 아빠가 큰딸인 나에게도 그 말을 하실 거 같다...고백이 들어올 거 같은데,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어야 겠다.  


사실 아빠한테 서운한 것만 생각하느라 아빠를 원망한 적도 많았던 나라서 아빠의 고백을 받으면 왠지 펑펑 울어버릴 것  같다. 그래서 지금부터 조금씩 아빠에 대한 원망의 마음을 좀 내려놔야 겠다. 그리고 나도 같이 아빠에게 사랑한다 말할 수 있는 딸이 되어봐야 겠다.



무섭고 엄하기만 한 줄 알았던  아빠도 나이 칠십이 되면 자식에게 먼저 사랑한다 말할 용기가 생기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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