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왜 울어요?"
"음...음... 그냥.. 마음이 아파서.."
오랜만에 주어진 이틀 간의 휴일, 코로나와 강추위를 이유로 집밖을 나가지 않았다. 자연스레 TV채널을 뒤적거려 보지만 딱히 멈춰지는게 없다. 그러다 우연히 나를 멈추게 한 순간이 있었다. '싱어게인2' 재방이었는데, '김현성'이라는 가수가 나와서 노래를 하는 장면이었다.
90년대 후반 2000년대 초반 우리 대학 다니던 시절에 참 인기있던 발라드 가수였다. 발라드를 무척 좋아했던 나도 참 좋아했던 가수다. 외모적으로는 정말 그때하고 하나도 달라진 게 없었다. 세월이 비껴간다는게 딱 맞는 사람같았다. 무대에 선 그는 자신을 '천국과 지옥을 오간 가수다'라고 소개했다. 그리고 그 프로그램에 도전하게 된 이유가 다시 가수로서 유명해진다거나 성공하기 위함이 아니라, '실패한 가수로 기억되고 싶지 않아서'라고 했다.
그리고 그의 노래 'heaven'를 시작했다.
왜 이제 왔나요 더 야윈 그대
나만큼 힘들었나요~
그의 모습과 말하는 목소리는 똑같았는데, 노래할 때 그의 목소리가 조금 아프게 느껴졌다. 성대결절로 노래하기 힘들었었다는 그의 이야기가 이해되었다. 노래를 끝까지 듣는 내내 그의 모습에 눈물이 났다. 전성기때처럼의 고음은 아니더래도 충분히 그의 미성과 감성을 느낄 수 있는 노래였다. 나에게 다시 발라드의 왕자님으로 다가왔다.
쉬는 내내 나는 각종 채널에서 '김현성'만 검색해 보았다. 그는 성대결절로 노래하기 힘들어진 이후 대학원에서 서사창작을 공부하였고 글을 썼다. 이미 에세이를 한권 출간했고 최근에는 그림과 관련한 책을 출간하였다. 음악에 대한 끈도 놓지 않고 유튜브에서는 좋은 음악이지만 알려지지 못한 음악들을 소개하는 채널을 운영중(채널명: 인디아나 쏭스)이었다. 그리고 정면에 화려하게 드러나지 않지만 연주하는 사람들에 대한 칼럼을 꾸준히 쓰기도 했다. '작가수'라는 닉네임으로 작가와 가수라는 일을 모두 멋지게 소화하며 자신의 인생을 살아내고 있었다.
그런 그를 누가 감히 실패했다 말할 수 있을까? 누가 감히 그의 인생을 함부로 평가할 수 있을까?
예전만큼 고음이 좀 안 올라간다고 해서 실패한 가수인가? 노래가 꼭 고음이 올라가야만 좋은 노래인가? (높은 키가 그의 목에 무리가 간다면) 키를 좀 낮춰서 그의 소리와 감성으로 노래해 준다면 나는 얼마든지 그의 노래에 귀를 기울일 마음이 있는데 말이다. 나같은 사람이 엄청 많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어쩌면 나도 그랬었는지 모르겠다. 20대에 갖고자 하는 직업을 갖지 못했을때, 꿈꾸던 인생을 시작하지 못했을 때 인생에 실패한 것만 같다는 심한 좌절감을 느꼈다. 내 몸과 마음의 컨디션을 제대로 정비하지 못한 채 실패로 끝내는 것만 같아서 자책도 많이 했다. 또한 주변 사람들이 나를 실패자라고 손가락질 하는 것만 같아서 도망가고 싶었다. 그래서 최대한 나를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한 살 두 살 나이를 먹으면서 자연스럽게 인생에 대한 질문들을 던지게 되었다. 성공과 실패에 대한 의문을 많이 가졌다. 30대를 지나고 40대를 넘어가면서 처음 정한 길에서의 '성공'을 이루지 못했다고 해서 영원한 실패자로 남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마치 김현성의 말처럼 '실패한 사람이라는 꼬리표'를 떼고 싶었다고나 할까?
인생에는 다양한 길이 있고 다양한 가치가 존재한다는 것을 서른 후반부에야 깨달았다. 그래서 20대에 꿈꿨던 길과는 조금 다른 색깔을 가진 길들에 발을 들여놓기도 하고 다양한 색의 사람들을 만나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조금씩 나의 틀을 깨면서, 더 이상 실패자가 아닌 온전한 나로 서고 싶었다.
타인과 나의 마음 속에 실패자라는 꼬리표를 떼어 내고, 온전한 나로 바로 일어서서 뚜벅 뚜벅 나의 길을 걸어나간다면 그것이 성공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