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영 Jan 05. 2022

처음 엄마가 되던 그 겨울

-무뎌진 아픔을 끄집어내어

 겨울하면 떠오르는 추억이나 기억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작은 아이가 학교에서 과제를 가져왔다. '가정 공동체 이야기 나눔 서클'이라는 종이를 보여주었다.  2021년 한 해를 돌아보고 가족 이야기 나눔 시간을 만드는 과제다.  주제 질문 중에 겨울하면 떠오르는 추억이나 기억을 이야기 해보는 것이었다.  


"엄마 차례에요~"

"음..엄마는 처음으로 수아를 낳았던 겨울이 떠올라~ 아주 작은 수아를 안고 병원에서 퇴원을 하던 날 눈이 왔거든, 영화처럼"





  결혼하고 한달이 채 안되어서,  지름 11센치의 자궁내막종을 발견하고 생리를 하면 자궁내막이 계속 자란다고 하는 이상한 병명을 진단받았다. 수술을 하고 주기적으로 호르몬 주사를 배에 맞으며 억지로 생리를 하지 않는 몸을 만들어야 했다. 결혼한 여자로서 임신을 하는 것이 가장 좋은 치료법이라고 의사선생님은 말씀하셨지만 서른의 나는 결혼을 하고도 아이를 갖고 싶은 마음이 없었기에 호르몬주사를 맞으며 일시적인 폐경을 유지했다. 매달 생리를 해야 할 날짜를 정확히 계산해서 생리 대신  배에 호르몬 주사를 맞는다는 것도 힘들었고, 서른의 여자가 폐경을 경험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결국 나는 호르몬 주사에 백기를 들었고 임신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런데 왜 꼭 인생은 그러는 건지...마음을 먹으면 더 안되는 것들이 참 많다.  

  

   삼십대 초반의 건강한 부부(나는 좀 건강하지 못했다)가 마음만 먹으면 아기는 찾아올 거라고, 임신이라는 건 금방 되는거라 생각했던 나의 오만함은 무참히 깨졌다. 임신은 몇 달을 기다려도 되지 않았다. 다시 찾아간 병원에서는 불임클리닉을 권유했다(그때는 난임이라는 말은 없었고, 그냥 바로 불임). 남편은 거부했다. 우리가 결혼한 지 몇년이 된 것도 아니고, 그 곳을 다니기 시작하면 진짜 '불임'이 시작될 거 같다고...


  미신이라도 좋으니 뭐라도 붙잡고 싶은 마음으로 '대구'에 갔다. 대구에 유명하다는 한방병원에서 약을 지어먹으면 임신이 잘된다는 말을 듣고~(올케 언니의 친정이 대구인데, 올케언니 친정엄마의 말을 듣고 나는 그 먼 대구까지 갔다) 그곳에서 용하다는 약을 지어 먹고 정말 한달 만에 임신이 되었다.  유명하다는 곳은 이유가 있나보다 했다. 그러나 그 기쁨은 얼마 가지 못했다. 아이의 심장소리를 들어보지 못하고 떠나보냈다.


  시간이 흘러 그 때의 감정이 많이 흐려지긴 했지만 또렷하게 기억나는 감정은  죄책감이었다. 허망함, 슬픔 이런 감정보다 자꾸만  죄책감이 들었다. 왠지 내가 무언가를 잘못한 마음이랄까.....


 그나마 다행으로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아기가 찾아왔다. 그러나 많이 두려웠다. 또다시 죄책감을 느끼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아이를 건강하게 지켜내리라 다짐했다. 그러나 이것 역시 내 다짐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었다.


  다행은 오래가지 못했다. 내 몸은 비정상적으로 부어갔고, 너무 무거워 허리가 나간 사람처럼 절뚝거리기 시작했다. 혈압은 상승하기 시작했고, 혈압의 상승은 두통을 동반했다. 잠을 잘 수 없을 정도의 두통은 나를 지쳐가게 했다.  어떤 날은 하혈을 하고 꼼짝없이 병원에 입원을 하기도 했다. 유산을 방지하기 위한 주사를 몇대 맞아야 했고, 내 팔뚝에는 멍이 가시는 날이 없었다.  내가 먹는 음식과 영양분으로 자라야 할 아기는 내 몸안에서 제대로 크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단백질이 소변으로 다 빠져나가는 단백뇨가 나오고 있다고 했다.


  2009년 12월 마지막날 즈음. 산부인과에 진료를 받으러 간 날, 의사선생님은 나에게 지금 이 몸으로 아기를 낳으면 죽을수도 있다는 극단적인 말을 하면서 어서 대학병원에 입원을 하라고 했다. 그렇게 부으면 몸 안에 장기도 붓고 다 망가진다고 하면서 왜 그렇게 얼굴은 괜찮냐고 했다(내 몸의 특징이 몸이 부어도 살이 쪄도 얼굴에 티가 잘 안난다는것) 내가 알겠는가...


그리고

 2010년 1월 6일 추운 겨울 날 나는 어느 대학병원에서 첫 출산을 경험했다. 보통의 산부인과가 아닌 대학병원에 가서 응급으로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산모가 스스로 분만을 할 능력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그런 산모였던 것이다.


 아기를 낳았지만 아기를 품안에 바로 안아보는 경험을 못했다. 진통제를 비롯한 많은 약들이 주렁주렁 걸린 링거를 꽂고 나는 대학병원 병실에, 아기는 신생아집중치료실에서의 생활을 했다. 정해진 면회시간에만 가서 간신히 아이를 안아볼 수 있었다.

.

.

.


힘들었지만 끝은 났다. 너무 작아 겉싸개에서 자꾸 빠져나가려고만 하는 아기를 야무지게 안고 나왔다. 이제 나는 엄마가 되었구나..


오랜만에 나온 병원 밖은 눈이 내리고 있었다. 마치 영화처럼.






매거진의 이전글 브런치를 하면 행복해져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