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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꿈이네 Jul 08. 2024

와이프의 짝사랑남, 그리고 소나기 (ep. 20)

정말이지, 와이프는 알 수 없는 사람이다


세상에서 가장 귀엽고 사랑스러운 와이프. 일편단심 민들레인 나와는 다르게 와이프는 종종 다른 남자와 사랑에 빠지곤 한다.



가장 최근에 사랑에 빠졌던 상대는 킹더랜드의 준호. 준호 자식을 간신히 떼어내고 어렵게 잊게 해줬는데 이번에는 또 다른 경쟁자가 나타났다.



이번 상대는 드라마 [선재 업고 튀어]의 주인공인 선재인가 선대인인가 하는 뭐시기.





언뜻 보니 훤칠한 키에 꽃미남 외모.



웹툰이나 순정만화를 찢고 나왔을 법한 비주얼이다. 와이프가 원래 이런 스타일을 좋아했나 싶다.



12년째 만나고 있지만 아직도 와이프의 모든 것을 알지는 못한다.



하긴, 그러니 알 수 없는 와이프지.



와이프가 선재에게 빠지고 나서 긍정적인 면도 있다. 어느 순간부터 나를 아련하게 보고 있으며 아침에 눈을 뜨면 늘 애정표현을 해준다.



그러면서 소원이 하나 있는데, 제발 드라마 좀 같이 봐주면 안 되겠냐고 싹싹 빌기 시작한다.



기회를 놓칠 내가 아니다.


“설거지하면 같이 봐줄게”

“캔맥 하나만 더 먹게 해주면 같이 봐줄게”



협상 카드를 놓고 와이프와 씨름한다.

김북꿈 인생에 드라마는 시간 낭비니까.



“같이 안 볼 거면 그냥 집 나가.”



언제나 그랬듯 협상은 없다. 절대 권력.

권력 피라미드의 가장 꼭대기 와이프.

울며 겨자 먹기로 선재 업고 튀어 1화를 시청한다.



와이프가 웃을 때 같이 웃어야 하며

설렐 때도 함께 설렘을 표현해야 한다.

그게 나의 장기간 생존 비법이다.



한번은 와이프가 본인 손으로 가슴을 움켜쥐며 먹먹해 하는 모습이 안타까워



“여보 이왕 가슴 움켜쥘 거면 내 손으로 움켜쥐어”



한마디 했다가 선재 앞에서 그딴 저급한 소리 하지 말라고 뒤지게 맞을 뻔했다.






쟤가 듣냐?





어쨌든, 와이프는 계속해서 선재 업고 튀어에 과몰입하고 있다.



한번은 근무하고 있는데 전화 와서는 갑자기 나에게 정말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더라. 평소 미안하다는 말을 절대 하지 않는 독불장군 와이프이기에 조금 걱정이 된다. 무슨 사고를 친 건지.



"왜? 무슨 일이야?"


"내가 곰곰이 생각을 해봤는데.. 만약에.. 변우석이 나한테 결혼하자고 하면.. 해야 할 것 같아.. 그럼.. 나랑 헤어져줘.."


"변우석이 누군데? 그 줄기세포 박사님?"


"그건 황우석 박사고.. 변우석은.. 선재.."



와이프가 진심으로 푹 빠져있구나. 응원하는 마음을 듬뿍 담아 손가락 하트를 만들어 날려준다.







정신 차려라.






또 한 가지 우리 집에 변화가 생긴 것이 있는데 바로 선재 업고 튀어 이후 우리 집에는 매일 소나기가 내리고 있다는 것이다.



모든 날, 모든 순간에 [선재 업고 튀어] OST인 이클립스의 소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무슨 장마가 벌써 오기라도 한 건지 하루 온종일 소나기가 내린다.



하루빨리 와이프를 구출해 주고 싶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와이프를 다시 되찾아오고 싶다. 이대로 변우석에게 와이프를 빼앗길 순 없다.



나 김북꿈. 와이프의 소녀감성에 맞춰 변우석처럼 변신해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시간이 별로 없다.



와이프는 황우석 박사 팬미팅에 가기 위해 티켓팅까지 하려 한다. 티켓팅에 성공하면 나는 끝이다.



남은 일생을 평생 오징어로 살아가야 한다.




어떻게 해야 변우석처럼 될 수 있을까..



『 일단 뒷머리를 조금 길러볼까.

아니다. 그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그래. 그거야. 와이프가 매일 듣는 이클립스 소나기.

그 노래를 맹연습해서 와이프에게 멋지게 불러주는 거야. 』



연애 초, 와이프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임창정의 소주한잔을 맹연습한 적이 있다. 그때 와이프는 소주 한 잔이 아니라 대짝을 먹더라. 뭐가 그리 슬펐던건지.



이상하게 나랑 노래방만 갔다 오면 권태기가 왔던 와이프. 그래도 나에게 방법은 이것뿐이다.



결혼해서 정으로 사는 것이 아닌 가끔 와이프에게 설렘을 주고 싶다. 귀여움이 아닌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20대의 설렜던 마음을 항상 간직한 소녀처럼 살게 하고 싶다.



매번 와이프의 사랑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수컷의 모습을 보여줄 것이다.





매일 출퇴근길에 경제 유튜브 대신 이클립스 소나기를 틀어놓고 목이 터져라 연습해본다.






며칠 뒤.



와이프와 맥주집에서 쌩맥을 한 잔 때리기로 한다. 오늘의 메뉴는 감자튀김.



주문한 감자튀김이 나오고, 시원한 맥주를 벌컥 벌컥 들이킨다.



그런데 무슨일인지 와이프가 잘 먹지도 않고 계속 핸드폰만 쳐다보고 있다.





"뭐해? 먹을때 같이 먹어야지"



사생활 보호필름이 장착되어 있는 와이프.

잘 보이지 않아 가까이 다가가본다.







어익후. 알고리즘보소.



살짝 빈정이 상한다.

나랑 함께 있는 시간에 변우석이라니.



아무래도 오늘이 디데이가 될 것 같다.

와이프에게 소나기를 선물해줄 바로 그 날.



"여보, 코인 노래방 갈래?"


"좋지. 평소에 노래도 안 부르는 애가 웬 코노?"



후다닥 계산을 마치고 옆에 있는 코인노래방으로 자리를 옮긴다.



아니나 다를까. 와이프는 코인노래방에 들어가자마자 리모컨을 쟁취하고 이클립스의 소나기를 예약한다.



"줘봐. 내가 한 번 불러볼게."



며칠동안 연습한 노래 솜씨를 뽐낼 차례다.

내 기필코 선재를 꺾고 와이프를 되찾아오리라.


.

.

.


『 어느 날 문득

소나기처럼 -

내린 그대지만 오늘도 불러 봅니다 -

내겐 소중한 사람.. 』






카메라가 꺼진 뒤 와이프가 한 마디 한다.




"우리 선재는 그딴 싸구려 창법으로 안불러ㅡㅡ 귀 썩었어"





그날 나는 돌풍과 벼락을 동반한 소나기를 몰고 왔고 와이프는 선재 대신 산재를 입게 되었다.




그리고 여전히 와이프는 선재 앓이 중이다.

정말이지, 와이프는 알 수 없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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