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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꿈이네 May 24. 2023

인정할 수 없다. #1-8

아파트 잔금 친 다음 날, 하락장이 시작되었다 1-8

* 본 시리즈는 2019년~2023년에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그때, ‘계성댁’을 닮은 부동산 아주머니에게 다시 전화가 온다.


도저히 전화받을 기분이 아니지만, 그래도 받아본다



“북꿈씨~ 북꿈씨네가 매수하지 않는다고 해서 집주인이 대기하고 있던 다른 매수자에게 집을 매도하기로 했어요. 지금 가계약금도 들어왔구요. 잔금일은 9월 28일이 될 것 같네요. 9월 28일 자로 북꿈씨네 전셋집은 소유권 이전이 되어 집주인이 바뀌게 됩니다. 알고 계시라고 연락드려요.”


그 잠깐 사이에 우리의 전셋집이 팔렸나 보다. 정말 잠깐의 협상 시간도 주지 않았다. 아무리 깎아봐야 2억 9500만 원이라고. 겨우 500만 원 깎아준다고.


그 가격에는 절대 살 수 없다. 내가 제일 비싸게 주고 사는 것이기 때문에.



아쉽지만 별 수 있나.



며칠 뒤,


우리 부부가 살고 있는 전셋집의 실거래가가 등록되었다.

2억 7800만 원.

응? 2억 7800만 원? 분명 잘 깎아봐야 2억 9500만 원이라고 했는데.


갑자기 '계성댁' 아주머니에게 엄청난 배신감이 느껴진다. 이 정도 금액이면 우리 부부도 조금 고민해 보다가 매수할 수 있었을 것 같다.


마침 '계성댁' 아주머니에게 문자가 한 통 온다. 양반은 못 되시는 분.



띠링 -




우리의 소중한 추억이 담긴 첫 보금자리를 다른 사람에게 빼앗긴 기분이다. 발끝에서부터 화가 치밀어 오르는데 누구에게 화가 나는지는 알 수가 없다.


세입자인 우리에게 가격을 더 깎아주지 않은 집주인에게 화가 나는 건지

오직 집주인 편에서만 중개했던 '계성댁' 아주머니에게 화가 나는 건지

집값을 밀어 올려버린 투기꾼들에게 화가 나는 건지

1년 전 와이프가 집 사자고 했을 때 똑똑한 척 전세를 선택한 내 자신에게 화가 나는 건지.


팬데믹 위기에 내가 그토록 걱정해 줬던 법인 투자자 집주인은 단돈 3,100만 원으로 내 전세금을 레버리지 삼아 1년 3개월 만에 6,700만 원을 벌고 대전을 떠나버렸다.





와이프에게도 이 사실을 알려야 하는데 말하기가 두렵다.


오늘만큼은 와이프가 퇴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와이프의 회사가 기숙생활하는 회사였으면 좋겠다. 아니면 내가 집을 비울까.


꼭 학교에서 사고 치고 부모님 퇴근을 기다릴 때의 기분이다. 조금 무섭지만 그래도 와이프 퇴근시간에 맞춰 데리러 가본다.


와이프가 차에 타고, 집에 거의 도착할 동안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적막한 차 안에서는 이상한 노래 한 곡만이 흘러나오고 있다.


"듣지 마! 우리 노래 듣지 마! 듣지 마! 안 좋을 때 듣지 마!"

형돈이와 대준이. 안 좋을 때 들으면 더 안 좋은 노래


그렇게 기분이 더 안 좋아진 상태로 집에 도착한다. 와이프가 이상한 기운을 감지했는지 내게 묻는다.


“여보 오늘 무슨 안 좋은 일 있어? 말도 없고 힘도 없어 보이네.”


무슨 일 있지. 그것도 큰일. 말하기 두렵지만 그래도 사실은 알려줘야 한다.



스-읍.


심호흡을 크게 한번 하고 와이프에게 오늘 있었던 일들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글쎄 아까.. 어쩌구 저쩌구 집주인이 어쩌구.. 3억.. 어쩌구.. 집주인이 바뀌었어.."

와이프는 이 참담한 이야기를 묵묵히 듣고만 있다. 왜 말이 없을까. 혹시 나를 어떻게 체벌할까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아 1년 전에 그냥 와이프 말을 들었더라면..


와이프가 드디어 입을 뗀다.


“그러니까 처음에 그냥 집 사자고 했잖아.. 뭐 청약 넣는다면서? 이제까지 청약 한번 넣어본 적 있어?”


예상했던 반응이지만 직접 말로 들으니 왠지 서운하다. 남 탓할 곳이 필요하다. 인정하기 싫다.


“이렇게 된 건 다 우리 집주인 같은 투기꾼들 때문이야. 정부에서는 이제 본격적으로 투기꾼과의 전쟁을 선포한다는데 이제는 집값 좀 떨어지지 않을까? 그리고 우리나라 부동산도 결국 일본처럼 폭락할 거래. 우리 주변을 봐 보라구.. 다들 결혼도 아직 안 하고 기도 없잖아. 지방은 인구 소멸이 더 심가..ㄱ..”


와이프의 눈빛이 매서워진다. 메두사의 눈을 보면 돌로 변해버리듯 나 역시 돌로 변해버린다. 그냥 1년 전의 오판을 인정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휴 알겠어.. 내일부터 청약 제대로 알아봐 볼게.”



‘그래, 우리에겐 아직 신혼 특공이라는 큰 무기가 있어. 낡은 이 집 말고 새 집에서 폼 나게 살아 보는 거야.’




다음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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