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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꿈이네 Jun 07. 2023

계좌 주세요. #1-14

아파트 잔금 친 다음 날, 하락장이 시작되었다 1-14

* 본 시리즈는 2019년~2023년에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이튿날.



아침 10시가 되자마자 부동산에 전화해서 가격을 조율해 본다. 처음에 당당하게 2억 8000만 원을 이야기했지만 그 가격은 힘들 것 같다고 한다.


매도인 분께서 서운하다고 이야기했다고. 그러면서 2억 9000만 원까지는 본인이 잘 조율해 보겠다고 이야기한다.


.

.

.



“매도인 분도 2억 9000만 원은 괜찮다고 하시네요. 거래 진행할까요?”



수학 선생님 인상의 매도인도 2억 9000만 원에 콜을 했다. 납득이 가는 가격이지만 그래도 한 번 더 깎아본다.



“소장님, 저희 진짜 신혼부부라 돈도 없고 영혼까지 끌어모아서 매수하는 건데 이사 비용 정도라도 좀 더 깎아 보시면 안 될까요.. 200만 원만 더 깎아달라고 해주세요! 그럼 지금 가계약금 입금할게요.”



원래 아쉬운 소리를 잘 못하는 나지만, 어쩐 일인지 죽는소리가 술술 나온다. 돈 앞에 장사 없는 것인가.


몇 분 뒤 부동산 아주머니에게 다시 전화가 온다.



“사장님, 매도인 분께서 정말 서운해 하시네요. 2억 9000만 원에 그냥 거래 하셔야 할 것 같아요. 이 집 어차피 곧 3억가요. 어떻게 하시겠어요?”



3억간다니.

예전에 “계성댁” 아주머니가 했던 이야기랑 같은 말을 또 듣는다. 그때는 곧 3억 간다는 이야기가 터무니없어 보였는데 이제는 실현 가능한 이야기로 들린다.



어쩔 수 없다.


더 이상의 가격 흥정은 힘들 것 같다. 그래도 와이프가 정해준 가이드라인에 들어오기도 하고, 나도 납득이 가는 금액이다.



그래. 가보자.



“계약할게요. 계좌 주세요!”



띠링-


매도인 계좌번호가 적힌 문자 한 통이 도착한다. 이제는 고민하지 않는다. 바로 가계약금 500만 원을 이체한 뒤 계약일을 잡는다.



2주 뒤면 추석인데, 부동산 아주머니 말로는 추석 전에 계약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부동산 아주머니 말을 듣기로 한다.



9월 28일. 드디어 우리의 계약일이 잡혔다.




뭔가 정말 어른이 된 것 같은 기분이다. 이 사실을 제일 먼저 양가 부모님께 알린다.


“저희 이번에 집 매매하기로 결정해서 오늘 가계약금 이체했고 다음 주에 매매 계약서 작성합니다.”



양가 부모님은 일단 축하한다고 하고 있지만 한 편으로는 조금 놀란 눈치다. 자금 계획은 제대로 세운 것 맞는지, 좋은 집을 잘 고른 것은 맞는지 걱정하는 눈치. 그러면서 "다음 주 계약서 쓸 때 같이 가줄까?"라고 한다.



마음은 정말 감사하지만 양가 부모님에게는 어떠한 도움도 받고 싶지 않다.



금전적인 것뿐만 아니라 계약서 작성하는 일도 혼자 해보고 싶다. 나도 이제 한 가정의 가장인 만큼 혼자 세상을 헤쳐나가며 배워야 하니까.



컴퓨터 앞에 앉아 ‘아파트 매매 계약시 주의사항’을 검색해 본다. 허 참. 1년 전에는 '전세 계약시 주의 사항'을 검색하고 있었는데. 1년 만에 이게 무슨 일이람.



대전 부동산 커뮤니티도 가입해서 인기글도 한 번씩 정독해 본다.



인기글 상위에 이런 글이 있다.


최근에 중도금 없이 계약금만 넣었다가 매도인 마음이 바뀌어서 계약취소 ‘배액배상당했어요ㅠㅠ 여러분은  잔금 전에 중도금도 넣으세요.. ㅠㅠ

-북꿈맘-


‘헉, 나도 중간에 중도금을 넣어야 하나?’


매도인이 계약을 취소하면 계약금을 두 배로 돌려줘야 하는 ‘배액 배상’이 있다는 사실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


사실 잘 이해는 가지 않는다. 왜 돈을 두 배로 물어주면서까지 계약을 취소하지.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바보들.



이번에는 부동산 커뮤니티에 우리가 매수한 아파트 단지를 검색해 본다. 우리 아파트가 다른 사람들에게는 어떤 평가를 받고 있는지 궁금하다.


익명1 : 실거주로 살기는 좋지만 투자 목적이라면 다른 단지를 사는게  좋아 보여요!
익명2 :  조금  보태서 다른 단지 매수가 어떨까요?
익명 3 : 저라면 1억만  보태서 다른데 사겠어요.



실거주로는 참 좋지만 투자 목적으로는 다른 단지를 사는게 더 좋아 보인다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기분이 살짝 나쁘긴 하지만 대수롭지 않게 넘긴다.




나는 집값이 오르든 말든 상관이 없다.



그냥 앞으로 이 집에서 이사 걱정 없이 오랫동안 살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다.




2020. 9. 28 계약일




특별한 이슈 없이 일주일이란 시간이 흘렀다.


평일 오전이었기에 와이프도 연차를 쓰고 함께 부동산에 간다. 그래도 우리부부 역사의 상징적인 첫 내 집마련인데 계약서 작성은 함께 하고 싶다나 뭐라나.



아파트 상가에 주차를 하고 부동산에 들어간다. 이번에도 참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다.


'진로이즈백 두꺼비' 인상의 싱글벙글한 부동산 아주머니, 계약 초짜 티 팍팍 나는 어리둥절 우리 부부, 수학 선생님 인상의 매도자와, 그녀와 공동명의인 울그락 불그락 아저씨까지.



인상 좋은 두꺼비 상의 부동산 아주머니가 경직된 분위기를 풀어보고자 믹스커피를 한잔 타온다.


나는 원래 아메리카노만 먹는데 결혼하고 부동산에 조금 다니다 보니 믹스커피도 먹게 된다.


오늘따라 믹스커피 맛이 이상하다. 왠지 어른이 된 것 같은 그런 맛이랄까. 쓴맛과 단맛이 적절하게 섞여있는 거부할 수 없는 맛.



잠시 잡념에 빠진 사이 부동산 아주머니는 매수, 매도자의 도장을 계약서에 마구마구 찍고 있다. 손이  빠르다. 화투  치시나.



‘신혼부부한테는 밑에서 한 장.. 매도자한테도 밑에서 한 장.. 나 한 장.. 이제 마지막으로..’


영화 '타짜'의 대사가 들리는 듯하다.

 

어느 서류에 누구 도장이 찍히는지, 계약 내용이 뭐가 뭔지도 모른 채 그렇게 순식간에 계약이 끝났다. 양가 부모님의 걱정과는 다르게 별 탈 없이 계약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잔금은 약 2개월 후인 12월 10일에 치르기로 했다.



‘그래. 계약금도 이상 없이 잘 넣었고, 도장도 잘 찍었고, 이제 뭘 해야 하지? 이삿짐센터부터 알아봐야 하나? 아니다. 인테리어 견적도 받아봐야지. 아니지 아니지. 잔금 계획부터 확실하게 해봐야 하나?’



계약서는 다 작성했지만 이후에는 뭘 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머릿속이 복잡하다.



아! 잔금 제대로 치를수 있는지 대출 먼저 제대로 알아봐야겠구나. 잔금 못치르면 나머지는 다 말짱 꽝이니까.





이런.

너무 당연한 것을 복잡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다음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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