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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꿈이네 Jun 12. 2023

뭔가 이상하다. 내가 변했나? #1-16

아파트 잔금 친 다음 날, 하락장이 시작되었다 1-16

* 본 시리즈는 2019년~2023년에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2020년 추석. 시골 할머니 댁.




부모님께 우리 부부 아파트 사기로 마음먹었다고 말씀드렸을 때는 반응이 시큰둥하더니. 이제는 온 집안사람이 우리가 내 집 마련한 것을 알고 있다.



만나기도 전에 이미 전화로 자랑을 해놓은 모양이다. 그래서 그런지 연휴 내내 우리 부부의 내 집 마련이 핫이슈다.



그럴 만도 하다. 부모님은 결혼하고 몇 십 년이 지나서야 내 집 마련에 성공했는데 우리는 결혼한 지 1년 만에, 그것도 20대의 나이에 내 집 마련을 한 것이니.



나보다 부모님이 더 신났다.

하긴, 내가 생각해도 뿌듯한 일이긴 하다. 우리 부모님 어깨에 뽕 좀 넣어준 것 같아서 기분이 좋다. 얼큰하게 한 잔해야지.



오색 빛의 꼬지전, 알록달록 종류별 과일들, LA갈비와 홍어무침에 탕국까지.


냄새도 냄새지만 오색 빛 색감이 나의 술욕을 자극한다.



매일 명절만 같았으면 좋겠다. 요즘 다들 오마카세에 많이들 가던데 왜 그렇게 많이 가는지 모르겠다. 이렇게 할머니 집에 오기만 해도 오마카세보다 더 푸짐한 할마카세가 준비되어 있는데.



젓가락이 상 위에 있는 시간보다 공중에 떠 있는 시간이 더 많다. 어느 반찬에 먼저 손을 갖다 댈지 고민이 되니까. 더군다나 오늘은 합법적으로 음주를 즐길 수 있는 날이 아닌가. 와이프 눈치 안 보고!



“할머니! 삼촌! 아빠! 와이프! 짠- 합시다. 우리 부부의 성공을 위하여~!”



짠-! (18:30)

.

짜안..! (18:50)

.

짜..ㄴ.. (19:40)



이렇게 몇 번을 짠했나 모르겠다.

이제 조금 취기가 올라온다.



1차 술상은 정리하고 남은 선수들끼리 2차 술상을 차려서 소소하게 자리를 이어간다. 시간은 벌써 저녁 8시가 되었나 보다. TV에서 8시 뉴스가 시작되는 음악이 들린다.



명절 연휴 기간에도 뉴스를 하네.

‘앵커들도 명절에 집에 못 가고 참 힘들겠군’



역시나 명절 교통상황을 집중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다행이다. 우리는 그나마 가까운 곳에 살아서 교통체증은 걱정 안 해도 되는데.. 교통상황 보도가 끝나고 부동산 관련 뉴스가 나온다.



연휴에도 부동산 뉴스라니. 왠지 귀가 쫑긋 선다.



“임대차 3법으로 전세매물 품귀현상”, “임차인 면접 보는 집주인”, “전세가격 역대 최대폭 상승, 덩달아 매매가도 들썩”



'집'이라는 게 당장 팔 것도 아니고 어차피 내가 살 집인데 가격이 오르고 떨어지는 게 뭐가 그리 중요한지 모르겠다. 집주인 눈치 안 보고 이사 안 가도 된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행복한 일인데.



그때,


1차 이후 누워서 쉬고 있던 삼촌이 술이 얼큰하게 취한 얼굴로 허공에 날카로운 말 한마디를 던진다.

“집값 저거 다 폭락해야 돼. 지금 너무 거품이야. 우리나라도 일본처럼 될 거야.”



뒤통수에는 표정이 없어야 정상인데 갑자기 내 뒤통수가 찌푸려진다. 분명 방금 전까지는 집값이 오르든 떨어지든 상관없는 나였는데, 삼촌의 말을 들으니 기분이 조금 나쁘다.




내가 이제 내 집이 생겼다고 마인드가 변한건가?





추석이 끝나고.




“저희 거실하고 작은방은 확장해주시구요, 샤시는 제일 좋은 것으로, 마루는 강마루, 도배는 실크로 할게요. 아참 타일은 테라조 스타일로, 주방은 ㄷ자 아일랜드 느낌으로..”



집 계약과 대출상담을 다 끝내고 나면 조금 한가해질 줄 알았는데 요즘은 인테리어 업체 돌아다니느라 바쁘다. 그래도 우리가 앞으로 살게 될 예쁜 보금자리를 상상하며 돌아다니니 대출 알아볼 때처럼 머리가 아프거나 하지는 않다.



집을 계약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인테리어 비용이 얼마나 들어갈지 물어봤었을 때는 다들 평당 100만 원이면 올 리모델링 가능하다고 했었는데, 몇 군데 돌아다녀 보니 평당 100만 원으로는 어림도 없다.



돈을 떠나서 우리 이사 일정에 맞는 인테리어 업체를 찾는 것도 힘들다. 인테리어 업체에 방문해 보면 이사 일정부터 물어본다. 심지어는 공사 일정을 못 맞춘다며 다른 업체 알아보라고 퉁명스럽게 말하는 곳도 있다.



오늘도 몇 군데 상담을 받아봤지만 허탕이다.

빈손으로 집에 돌아간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오늘의 집’ 앱을 켠다. 20평대 온라인 집들이를 본다.



사람들 참 개성 있고 예쁘게 잘 꾸며놓고 산다. 집이라기보다는 카페 같다. 방 3개 아파트면 부부 침실, 아이 방, 드레스룸으로 꾸미는 것이 정석이라 생각했는데 요즘엔 그렇지도 않다.



작은방 하나에 냉장고와 식탁을 넣고 ‘다이닝 룸’으로 쓰는 사람들도 있고, 본인 수집품을 전시하는 박물관으로 쓰는 사람들도 있다. 고작 피규어에 저 방을 내주다니. 어렸을 적부터 동생과 서로 방을 갖겠다고 싸워왔던 내 입장에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어쨌든.


요즘엔 집에서 와이프와 온라인 집들이를 구경하는 것이 새로운 취미다. 얼른 인테리어 업체 정해서 공사 일정 맞춰야 하는데..



내일 상담받아 볼 인테리어 업체 몇 군데에 연락해 본다. 한 군데의 업체 빼고는 모두 상담 예약이 꽉 차 있어 예약이 어렵다고 한다.



그 한 군데라도 예약을 해본다.


내일 오후 2시.




다음날.



오후 2시까지 시간이 좀 남는다. 뭐 할까 생각하다가 근처 인테리어 업체들에 무턱대고 가본다.


철컹-


대부분 업체들의 문이 잠겨있다. 그럼 '외출 중'이라는 팻말이라도 걸어 놓던가. 잘못하다 손목 삐끗하겠네.



‘이 사람들 돈 벌기 싫은가. 돈을 몇 천만 원씩 쓰겠다는데도 받아주질 않네. 돈 쓰는 것도 참 어렵다~’



그나마 예약이 된 업체에 가기 위해 차로 발걸음을 돌린다.



차로 터덜터덜 돌아가는 길.

교차로의 전광판에 자막 뉴스가 나오고 있다.




“연일 계속되는 주택 거래 속 인테리어 업체 호황”



아 이래서 다들 바쁜 거구나.










다음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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