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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꿈이네 Mar 06. 2024

와이프의 알 수 없는 과거 (ep. 12)

#12 나는 봤다


12월 둘째 주 주말.



와이프와 거실에서 잠들어버렸다. 크리스마스 분위기 가득한 디즈니 영화, TV옆에서 반짝이고 있는 크리스마스트리, 네 캔의 캔맥주는 우리를 불편하게 잠들게 하기 충분했다.



중간에 수십 번의 이불쟁탈전은 있었지만 나름 개운하게 잘 잤다. 그래서인지 휴일이지만 알람 없이 아침 7시에 눈이 떠진다.



"오늘은 뭐 하지?"



오랜만에 처갓집에 놀러 가기로 한다. 마침 깍두기도 가져와야 한다고 하길래. 이른 시간이지만 우리 부부는 서둘러 채비를 하고 처갓집으로 떠난다.




"단아야! 여기 책장에 꽂혀있는 네 책들 필요하면 가져가고 아니면 아빠가 버린다!"



장인어른의 서재 공간이 많이 부족해지셨나 보다. 하긴, 주식 공부하신다고 매주 책을 읽고 계시니 그러실 만도.



얼마 전 장인어른과의 원활한 대화를 위해 장인어른의 추천주 하나를 매수했다. 장인어른의 서재 공간만큼 나의 잔고도 함께 부족해졌다. 우리는 전우다.



어쨌든 책장 꼭대기 층에 물려있는 정체불명의 와이프 물건들을 하나 둘 지상으로 구조해 준다.



경건한 마음으로 구조에 참여하고 있는데 손이 미끄러져서 물건 하나가 바닥에 떨어진다.




툭-








정체불명의 생활기록부가 눈앞에 펼쳐진다. 사진을 보니 흑백사진이다. 얘 나한테 나이 속였나.



습관적으로 두 손가락으로 증명사진을 확대해보려 하는 찰나, 와이프가 재빨리 생활기록부를 낚아채간다.



얘 곧바로 주방에 가서 가스불로 태우려 하더라.



그러나 나는 봤다.




2007년의 와이프는 쌍꺼풀이 없었던 것을.








집에 돌아와 본격적으로 와이프의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본다. 먼저 와이프가 대학 시절 작성한 금융기사 스크랩부터 살펴본다.




눈물이 멈추질 않는다.

2013년의 비트코인이라.



아니다. 오히려 다행으로 생각해야겠다. 만약 저 때 와이프가 비트코인을 사서 대박이 났다면 남편이 내가 아니었을 수도 있겠구나. 개다행.



금융기사 스크랩을 몇 장 넘기다 보니 데스노트도 발견이 된다. 그러고 보니 한 10년 전쯤 와이프와 통화 도중 편지낭독 형식으로 오목조목 탈탈 털린 적이 있는데 그때의 기록인듯하다.






글씨 써놓고 왜 찍찍 그어놨냐고 물어보니 잔소리 체크리스트였다고 한다. 얘기한 것은 하나씩 지워 내려갔던 거라고.



PTSD 발동.





다음 기록문화유산은 와이프의 2016년 다이어리다. 





이 날 처형과 주꾸미도 먹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나 보다. 나이 먹으니 싸우지도 않고 자매여서 참 좋은 것 같다고.



와이프와 처형은 저 날 이후 내가 기억하는 것만 해도 170번 정도는 더 싸운 듯하다.



그래도 둘은 싸울 때가 가장 교양 있다.

주로 육십갑자를 이용해서 대화를 하기 때문.



계묘년, 신축년, 을사년, 갑진년, 병신년, 미친년 등등



최근 처형은 혼자서는 감당이 안되는지 5살짜리 학도병을 육성 중이다. 한 번은 와이프가 포카칩 좀 뺏어 먹었다고 대검을 뽑아 들더라. 서로 엄마한테 이르고 할미한테 이르고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다.



그래도 와이프와 처형이 한마음이 되고 서로 내 동생, 내 언니 하며 동맹을 맺는 때가 있긴 하다.






장모님이랑 싸웠을 때.






이번에는 초6 와이프에게로 시간여행을 해본다.



사진은 하나만 찍어뒀지만 일기장 곳곳에 구*모 새키 아니 구*모씨 이름이 많이 적혀있다. 둘 관계가 부디 원수로 끝났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머리스타일이 바뀌었는데 아무도 알아봐 주지 않아서 속상했나 보다. 저 때도 분명 머리 한 2cm 자르고 헤어스타일 바뀐 거라고 했겠지.




발야구를 하던 도중 친구들이 장난으로 와이프의 바지를 벗겼나 보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다인씨와 연희 씨는 우리 집에 초대해서 식사 한번 대접하고 싶다. 동심으로 돌아가서 저 때처럼 놀아주시길.



그리고









김치냉장고 위에는 왜 올라가 보고 싶었던 걸까..

김치냉장고 위에는 왜 올라가 보고 싶었던 걸까..

김치냉장고 위에는 왜 올라가 보고 싶었던 걸까..





 시간을 고민해 봐도 해답이 나오지 않는다.



정말이지, 와이프는 저 때부터 알 수 없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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