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잔금 친 다음 날, 하락장이 시작되었다 1-3
* 본 시리즈는 2019년~2023년에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계약을 안 해도 이런 걸 주는구나.
부동산 아주머니께서 전세 1억 7000만 원에 올 리모델링 되어 있는 집은 아마 다른 곳에서도 구할 수 없을 거라고 한다. 현실적으로 어느 정도 깔끔한 집은 1억 8000은 생각하고 있어야 한다고.
그러면서 A4용지를 떠내 들더니 펜을 집어든다. ‘계성댁’을 닮은 부동산 아주머니의 안경테 끝 쪽이 번쩍인다. 뭔가 중대한 이야기를 할 것만 같다.
설마 나를 혼내려고 하는 건가.. 살짝 내려간 안경을 손등으로 고쳐 쓰고는 카리스마 있는 눈빛으로 말을 이어간다.
“총각, 내 말 잘 들어봐. 다른 제안을 하나 해볼게. 지금 여기 단지 전세가격이 1억 8000만 원에서 1억 9000만 원 정도야. 그에 비해 매매 가격은 2억 1000만 원 수준이고. 차라리 전셋집을 구하지 말고 2000만 원 더 쓴다 생각하고 집을 아예 사버리는 건 어때? 돈이 부족하다면 부모님한테라도 말씀드려 봐. 내가 안타까워서 그래..”
아까부터 부동산에 계속 전화벨이 울리고 있지만 아주머니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어간다.
“지금 전화 벨소리 계속 울리는 거 총각도 보이지? 이거 다 요즘 집 사겠다고 연락 오는 거야. 평일이니까 지금 이 정도지 주말이면 다른 지역에서 투자자들 몰려와서 정신이 없을 지경이야. 여자친구랑 다시 한번 상의해 봐. 여기 곧 3억 가. 내가 진짜 아들 같아서 이렇게라도 이야기해 주는 거야.”
무슨 정신으로 부동산에 앉아 있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계속 혼나고 있었던 것 같다.
차에 돌아와 혼자 골똘히 생각해 본다. 이 낡은 아파트를 뭣 하러 사라고 하는지 정말 이해가 되지 않는다.
거기다가 대전엔 마땅한 일자리도 없어서 친구들도 아직 취업도 제대로 못 한 판국인데. 또 대전의 인구는 늘기는커녕 줄어들고 있지 않은가. 죄다 세종으로 빠져나가고.
아무리 이 생각 저 생각해봐도 매매는 좀 아닌 것 같다.
‘휴, 하마터면 속아 넘어갈 뻔했네. 아무것도 모르는 계성댁 아줌마. 흥.’
부동산 아주머니가 여자친구에게도 전화해서 매매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설득을 한 모양이다.
나랑 이야기를 끝냈으면 됐지 왜 여자친구에게도 연락해서 사람 심란하게 하는 걸까. 아무래도 내가 사람을 잘못 본 것 같다. 고상하기는 무슨. 이제 와서 보니 욕심쟁이 계성댁으로 밖에 안 보인다.
여자친구와 나는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언쟁을 벌이기 시작한다. 여자친구가 먼저 운을 뗀다.
“부동산 아주머니가 괜히 우리에게 매매를 추천하겠어? 주말마다 투자자들도 많이 온대잖아. 그 사람들이 돈 잃고 싶어서 지금 집을 사겠다고 하겠냐고..”
기다렸다는 듯이 나도 받아친다.
“대전이 집값이 오른 적이 있어? 이 동네는 집값 오르는 동네가 아니야. 잘 생각해 봐. 오히려 주변에 세종으로 이사 나간 친구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리고 주말마다 투자자들 온다고는 하지만.. 정부에서 그 투기꾼들 잡겠다고 규제한다는 뉴스 못 봤어? 지금 집사면 바보지.. 그리고 우리에겐 최고의 무기가 하나 있잖아.”
“평생에 한 번뿐인 청약을 써보지도 않고 날리기는 아깝잖아. 차라리 우리 지금 전세 살다가 청약 당첨 돼서 새집 살자.”
이럴 줄 알고 2015년에 취업하자마자 주택청약 통장을 개설해 놨다. 주택청약 통장 1순위 조건도 됐겠다.. 우리에겐 신혼 특공이라는 무기가 있지 않은가. 청약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하지만 건너 건너 청약에 당첨되었다는 사람을 본 적은 있다.
당장 청약에 대해 공부가 되어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 구축 아파트를 부동산 말에 떠밀려 매매할 바에는 전세 사는 쪽을 선택하고 싶다.
청약, 특별공급. 생소한 단어들이 나오기 시작하자 여자친구의 목소리가 작아진다.
나의 전략이 통한 듯하다.
“알겠어..”
다음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