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의 평범성

by 필우

월요일 오전 강의는 좀 난감하다. 그것도 9시부터 12시까지 세 시간 강의라니. 202호 강의실문을 열었다.


사무실을 일주일 비워야 하는 부담감과 '이럴 때라도 손에서 일을 놓을 수 있다.'는 홀가분함이 교차한 표정의 수강생이 조그만 강의실을 채웠다. '역량향상' 과정은 기본적으로 토론과 발표, 평가 기반의 교육이다. 모둠 형태의 책상 배치 때문에 등을 보이는 수강생도 있다. 모두 9명이다.


이럴 때는 교육내용이라도 재미있어야 한다. 나의 강의 과목은...'글로벌 허브도시의 공직윤리'다. 평균 40대 직장인들에게 가치관 수업이 먹힐까? 이미 형성된 가치관을 어쩌라고? 3시간 수업으로 가치관이 조금이라도 바뀔까?


이것도 저것도 아니면, 강사라도 통통튀는 유머를 장착하거나 텐션이 높아야한다. 그럴까? 강사 달란트를 아무리 잔뜩 가졌다 하더라도 30년 공직 생활을 했으면 이미 관료화되고 무뎌졌을 터, 무언가를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


우울한 표정의 수강생에게 나는 어떤 시간을 만들어 줄 수 있을까? 의문을 가지며 말문을 열었다. 수업을 마치고 인사를 했다. 9명의 수강생 중 4명 정도는 밝게 환호해 주었으며, 1명은 소리 내어 수고하셨습니다,를 외쳤다.


강의실을 빠져나오는 동안 앨릭스 코브의 <우울할 땐 뇌 과학>이라는 책이 떠올랐다. 우울증의 특성은 두 가지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울증은 이유 없이 찾아온 다는 것과 우울증 상태는 안정적인 심리상태라는 점이다.


책을 읽은 후 나는 인간을 두 가지 타입으로 나누게 되었다. 우울증에 '걸린' 인간과 '걸릴' 인간으로. 우울증이 나를 찾아오는 이유가 없기 때문에 원인을 찾으려고 애쓰지 말아야 한다. 왜,라는 질문을 계속하는 일은 스스로 어두운 지하계단으로 내려가는 것과 같다. 답은 없다. 왜냐하면 '왜'가 없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이 증상을 빨리 벗어날까,에 대한 고민을 해봐야 한다.


그런데 이것 또한 쉽지 않다. 우울하면 편안하기 때문이다. 월요일 아침 강의실에 앉아있는 수강생을 처음 봤을 때 느꼈다. 그들은 편안한 상태였다. 약간은 부정적인 감정이긴 했지만, 분명 안정되어 있었다.


굳이 네 강의를 들어야 하나?

월요일 아침 주식시장과 코인시장 변동이나 살펴봐야지!

주말에 재미있는 연예계 소식은?

새로운 지식을 내게 강요하지 마. 그냥 이대로 난 좋아!

인재개발원 점심식사가 맛있다고 하던데.

수강생들의 생각이 말풍선 모양을 띄고 교실의 빈 공간을 가득 채우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


수업시작 10분 후부터 나는 수강생의 우울을 인정했다. 그들의 일상의 감정을 받아들였다. 강의를 시작한 후부터는 시선을 맞춰가며 ppt 내용을 풀어나갔다. 호흡이 빠르다고 느끼면 한 템포 쉬었다. 수강생들이 잘 따라오고 있는지 확인했다. 그렇게 세 시간이 지났다. 그래도 반 이상의 학생으로부터 호응을 끌어냈다.


나는 월요일 오전부터 기력을 많이 소비했다. 사무실에 들어와 털썩 자리에 떨어졌다. 갑자기 우울해졌다. 기분 좋은 우울, 평범한 우울이 나를 감쌌다. 왜 우울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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