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극적 몰입과 적극적 비몰입 사이, 조용한 퇴사자들에게
문유석의 <개인주의자 선언>
제가 조용한 퇴사를 결심하게 된 계기는 몇 년 전 근무성적 평가를 받았을 때였습니다. 저는 그 해 새로운 법인을 설립하고, 위원회를 구성하고, 자치 법규까지 만들었습니다. 때로는 자정을 넘어서 일을 하면서 사명감이 넘쳐났습니다. 저는 '이 정도면 근무성적 평가도 문제 없을 것'이라고 자평하면서 좋은 순위가 나오길 기대했습니다.
결과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평가가 끝난 다음 날, 외부 행사가 있어 저는 제 승용차로 간부를 모시고 현장으로 떠나게 되었습니다. 저를 평가한 그 간부는 '당신을 잘 평가해줘 봐야 실익이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보다 앞선 순서를 받은 상대 직원이 먼저 승진해야 제가 다음 기회에 승진할 수 있지 않느냐, 는 논리였습니다. 전체를 보면 맞는 말씀이지요. 그렇지만 저는 저대로 '순서대로 할 거면 근무성적 평가는 왜 하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물론 속으로만.
그 사건은 저의 직장생활에 전환점을 제공했습니다. 제가 몸 담은 이 조직은 일하는 만큼 보상을 해 주는 조직은 아니구나, 성과와 보상은 비례하지 않구나, 하는 생각을 깊이 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불태운 저의 시간과 에너지가 덧없이 느껴졌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해야 하나?
저는 공부를 하기로 하였습니다. 당장의 쓰임보다는 퇴직 후에도 제 라벨이 되어 줄 수 있는 것으로 박사학위를 선택했습니다. 책을 더 열심히 읽고 느낌을 적기 시작했습니다. 운동도 빠지지 않기 위해 수영장에 간 날은 책상 달력에 표시를 했습니다.
여론조사기관 갤럽이 2022년 6월, 미국 직장인 1만 5천 명을 대상으로 업무 몰입도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적극적으로 업무에 몰입하는 자는 답변자의 32%, 적극적으로 몰입하지 않는 자는 18%, '조용한 퇴사자'에 해당하는 자는 50%라고 발표하였습니다.
'적극적 비몰입자(Loud Quitting)'는 직장의 요구를 충족하지 못하면 불만을 퍼뜨리는 자입니다. '조용한 퇴사자(Quiet Quitting)'는 '직장을 조용히 그만둔다.'는 의미가 아니라 심리적으로 직장과 거리를 두며, 자신의 맡은 업무만을 소극적으로 처리하는 직장인을 말합니다.
'조용한 퇴사'라는 단어는 미국의 20대 엔지니어, '자이드 펠린(Zaidle Ppelin)'의 틱톡 영상을 통해 빠르게 펴졌습니다. 펠린은 (조용한 퇴사는) '주어진 일 이상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그만두는 것'이라고 하면서 '당신의 가치는 당신이 하는 일의 결과물로 정의되지 않는다.'라고 충고합니다. 저는 제가 한 일의 결과물이 저의 가치를 증명한다고 생각하며 그 결과를 타인으로부터, 조직으로부터 인정받기 위해 투정을 부렸습니다.
이런저런 일로 '조용한 퇴사'를 결심하였다면 무엇부터 해야 할까요? 그전에 조용한 퇴사자가 될지, 적극적으로 업무에 몰입하는 자가 될지부터 결정해야겠죠. 저는 여러 가지 판단 기준 중에 직장에서의 관계 또는 업무가 나를 성장시켜 주는지 살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추구하는 가치나 행동이 업무와 일치한다면 무조건 적극적으로 몰입할 것을 권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조용한 퇴사자가 되는 게 좋습니다. 진짜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찾아서 조용히 실천하시기 바랍니다. 자기가 뭘 좋아하는지 모를 수 있습니다. 그때는 본인이 사용하는 시간을 잘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언제 몰입감을 느끼는지, 행복한 느낌이 드는지 기록해 보십시오. 주말에 어디에 시간을 가장 많이 사용하는지 적어보십시오. 긴 시간 걸리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개인주의자 선언>은 조용한 퇴사를 준비하는 분이라면 읽어 두면 좋을 책입니다.
문유석의 <개인주의자 선언>
"만국의 개인주의자들이여, 싫은 건 싫다고 말하라. 그대들이 잃을 것은 무난한 사람이라는 평판이지만, 얻을 것은 자유와 행복이다. 똥개들이 짖어도 기차는 간다."(58쪽)
자신을 개인주의자라고 소개한 현직 부장판사의 외침은 집단주의 문화에 빠져 허우적대는 현대인에게는 시원한 물줄기와 같습니다. 판사답지 않은 솔직함과 글솜씨에, 이 책은 2015년 9월 첫 발행 이후 2018년 6월, 33쇄를 찍었습니다. TV 드라마 <미스 함무라비>의 원작자라는 유명세도 탔을 것입니다.
다음은 이 책의 문단입니다.
"나는 그저 이런 생각으로 산다. 가능한 한 남에게 폐나 끼치지 말자. 그런 한도 내에서 한 번 사는 인생, 하고 싶은 것 하며 최대한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자. 인생을 즐기되, 이왕이면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남에게도 잘 해주자"(17쪽)
저자는 복잡하고 급변하는 현대사회에서 합리적으로 판단하고 전략적으로 행동하는 기준은 '개인'이 되어야 한다고 하면서 자신의 개인주의적 입장을 들려줍니다. 저자는 독서와 영화감상, 판사로서의 경험을 논리와 증거에 기반하여, 판결문과는 달리 쉽게 읽히는 문장으로 썼습니다. 그의 모든 글에 고개가 끄떡여집니다.
한편, 그의 개인주의자 선언과 실천이 저는 부럽습니다. 싫은 것을 싫다고 말하는 순간, 저는 평판 말고도 잃을 것이 몇 개 더 있다는 것을 압니다. 밥그릇을 잃거나 따돌림에 대한 두려움 없이 하고 싶은 것 하면서 자유롭고 행복하게 사는 사람은 대한민국 부장판사를 포함해서 소수에 불과합니다.
당장은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저자가 주장하는 '합리적 개인주의'와 함께 '다양성의 존중', '권력의 분산(분권)', '부와 정보의 격차 해소'에 대한 정신은 빠르게 확산될 필요가 있습니다. 실천이 되면 더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