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능력과 조직의 요구 사항이 맞을 때 최고의 성과를 낼 수 있다
"대단한 일을 하셨네요. 지자체에서 그런 법인을 만드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힘들었습니다. 기관 설립을 위한 첫 간담회에서 지역 대학교 총장님 몇 분이 반대를 하셨어요"
"그럴 수도 있었겠네요? 안 그래도 얼마 되지 않는 R&D(연구개발) 사업비를 나눠가진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으니"
"계속 설득을 했죠. 새로 신설되는 법인은 지역에서 R&D 사업비를 더 많이 가져올 수 있도록 체계적으로 지원하는 기관이라고"
"설립 과정을 잘 정리해서 백서라도 만들어 놓았으면 다른 지자체도 도움이 될 건데 아쉽네요"
지역 R&D 전문기관을 설립한 사례를 살펴보기 위해 과학기술부 간부가 부산을 방문했다. 부산역에서 센텀시티에 위치한 기관까지 가는 동안 간부와 내가 나눈 대화다. 간부는 지역 대학을 설득하고 시 의회와 논쟁한 과정을 기록을 해두었다면 좋았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돌이켜 보면 법인을 설립한 1년의 과정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법인 설립 타당성 용역을 마치고, 지자체 법인 설립 승인권을 가진 행정안전부와 가장 먼저 부딪쳤다. 지역 내에서는 예산 편성과 조례 제정권을 가진 시의회의 싸움이 기다리고 있었다. 행안부 담당 사무관은 퇴짜를 놓았고, 시 의회는 설립 조례를 부결시켰다. 행안부를 수시로 찾아가고 근무시간 후에도 시 의원을 만나서 타당성을 설명했다. 성의와 논리 앞에서 행안부와 시의회도 우리 손을 들어줬다.
나는 설립계획이 수립된 후, 직원 2명을 뽑았다. 본격적으로 기관을 만드는 작업, 즉 정관과 규정을 만들고, 공간을 마련하고, 사무실 집기를 사고, 원장과 직원들을 뽑아야 하는 일을 하는 직원이다.
"사업 준비단이 어디 있나요?"
"준비단, 그냥 내 혼자 하는 데"
"혼자요? 이 많은 업무를?"
새로 임용된 직원 2명은 법인 설립 업무를 나 혼자 챙기고 있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따로 근무시간을 정해놓지 않고 일했던 시간이었다. 지역의 연구개발사업 발전을 위한다는 사명감은 마약처럼 나를 중독시켰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마약에 중독된 것처럼 일을 한 시간이 있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나는 직장생활을 하면서 경제부서에 오랫동안 근무했다. 기업유치 업무와 지역에 R&D 사업을 기획하는 일에 재미를 가졌다. 어느 정도 기획력이 근육처럼 장착되었을 때 큰 프로젝트가 내게 찾아왔고 나는 기꺼이 매진했다.
지금은 법인 업무에서 손을 떼고 다른 일을 하고 있지만 경제업무와 R&D 업무는 나의 관심사항이다. 업무를 계기로 기술경영학 박사학위까지 받았다.
직장생활은 기회다. 자신의 능력과 조직에서 요구하는 사항이 맞아떨어질 때 최고의 성과를 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