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장 갔다가 교보문고에 다녀올게"
"사재기는 그만해"
토요일 오전, 외출하는 나에게 아내가 한마디 했다. 속으로 뜨끔했다. 지난해 사재기를 했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작년 12월, 출간 다음 주말이었다. 부산의 서점 두 곳에 들렀다. 매장에 진열된 책이 내가 쓴 책이라면, 기분이 어떨까?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교보문고 매장을 방문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1층에 들어서자마자 문구를 파는 매장이 나를 맞았다. 여기는 서점인가? 문구점인가? 책 보는 사람보다 형형색색 필기도구, 노트, 각종 아이템을 구경하러 온 사람이 더 많은 것처럼 보인다. 나도 문구점을 이리저리 어슬렁 거렸다. 책이 진열된 곳으로 직진하지 못했다. 약간의 설렘과 두려움 때문이었을 것이다.
내 책이 깔려있지 않으면 어떡하지? 어떡하긴? 그냥 조용히 나오는 거지. 드디어 자기 계발 분야 판매대를 찾았다. <한 번 읽은 책은 절대 잊지 않는다>를 발견했다. 저자 허필우. 책에서 광채가 나왔다. 나만 느끼는 것이리라. 길에서 우연히 마주친 강아지를 만지듯 표지를 쓰다듬었다. 책 속에 숨겨든 만 원짜리 지폐를 찾듯 이리저리 휘리릭 넘겨도 보았다. 향은 얼마나 좋은지.
온 마음으로 책을 대하는 나를 누가 좀 봐줬으면 좋겠는데, 다들 자기 관심사 챙기느라 바쁘다. 나는 다시 책을 제자리에 두고 잠시 다른 자기 계발 도서를 살폈다. 한두 명의 방문객이 자기 계발 매대를 기웃거렸다. 이때를 틈타 잽싸게 나의 책을 한 권 집어 들었다.
이런 제목의 책이 있네! 당장 읽어봐야겠는걸!
예능 프로그램의 관찰 카메라가 있다면 나는 이렇게 혼잣말을 했을 것이다.
교보문고를 나와 서면에 있는 영광도서로 향했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영광도서다. 새 건물을 짓고 난 후부터는 옛 영광은 조금 사그라든 느낌이다. 매장 규모도 축소된 것 같았다. 주말이라 1층은 북적이지만 지하 1층은 한산하였다. 지하 1층에 독서 코너가 따로 있었다. 작은 규모다. 한쪽 구석에 내 책이 부끄럽게 자리 잡고 있었다.
책 한 권을 손에 들고 1층으로 올라왔다. 사람들의 시선을 잡는 가장 좋은 위치에 어느 정치인이 언급한, 같은 제목의 외국 소설 도서가 8권 정도 펼쳐져 있었다. 하나의 소설을 서로 다른 출판사에서 발간한 책들이었다. 그 외 다른 책들도 차례로 눈여겨보았다. 모두 나의 책과는 차원이 다른, 대단한 작가의 책들이 1층 매대를 차지하고 있었다. 내 책이 1층으로 진출하기만 해도 좀 팔릴 텐데, 하는 안타까움을 가지며 서점을 나섰다.
지난 12월 두 권을 사재기한 이후, 올해 처음 가는 사재기 사냥이다. 나는 교보문고만 들러기로 했다. 다행히 나의 책은 매대에서 쫓겨나지 않고 가슴을 쭈욱 내밀고 있었다. 다시 한번 사랑스러운 손길로 쓰다듬었다. 제일 뒷장을 넘겨보았다. 아직 1쇄다.
1월 초에 RHK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출판사에 500권 정도밖에 남아있지 않아 중쇄에 들어간다고 했다. 본격적으로 원고 수정을 시작하기 전, 편집장과 미팅할 때 '중쇄는 들어가야 합니다.'라는 말이 부담이 되었는데 한 시름 놓았다. 중쇄에 들어갔다고 하지만, 아직 일반 서점에까지는 배부되지 않은 것 같다.
책 파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 유명한 저자라면 글만 쓰면 되겠지만, 나처럼 무명인이면 마케팅도 신경 써야 한다. 부지런히 소식을 전하고 댓글도 달고, 북콘서트 기회를 잡아야 한다.
아내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다시 사재기를 하였다. 1쇄 2,000권 중 한 권이다. 호랑이 어금니 같은 책*이다.
*'호랑이 어금님 같은'이라는 표현은 손세실리아 시인의 <사재기 전모>라는 시에서 인용하였습니다.
"(생략)
호랑이 어금니 같은 시집을 다시 펼친다
울컥, 가을이 깊다"
(<사재기 전모> 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