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상징
무의식의 접근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융을 설득하기 위한 노력들과 융이 이 책을 출간하겠다고 마음먹기 전에 꿈을 꾸었던 내용들이 있다.
이 책은 평균적인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집필하였다이 책 전반에 걸쳐 강조되고 있는 것은 바로 개인의 삶에서 꿈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것이다.
당사자에게 가장 중요한 상징을 통해 꿈은 다른 어떤 것에서도 얻을 수 없는 귀중한 것을 충고해 주기도 하고, 꿈꾼 사람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지시해 주기도 하는 것이다.
융 학파 학자들에게 꿈꾸기는 우연이 아니다.
융은 인생의 목적은 개성화 과정을 완성해 가는 것이라고 했다.
의식과 무의식이 서로 평화로이 공존하고 서로를 보충함으로써 완전해지는 상태를 지향할 때 하나의 전체적인 존재가 되고 이런 상태에 이르러야 비로소 안정과 풍요와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내용이다. 이 책은 일반 독자에게 융이 물려주는 유산인 것이다.
어떤 남자가 열쇠 구멍에 열쇠를 찔러 넣는 꿈
묵직한 몽둥이를 휘두르는 꿈
커다란 철 망치로 문을 때려 부수는 꿈을 꾸었다.
이 세 꿈은 모두 성적 비유로 분석할 수 있다.
그러나 꿈꾼 사람의 무의식이 스스로 특정 이미 중 하나(열쇠일 수도 있고 몽둥이일 수도 있고 쇠망치일 수도 있다) 무의식이 어떤 연유로 몽둥이 대신 열쇠를, 호근 쇠망치 대신 몽둥이를 선택했는지를 파악하는 것일 테다 그리고 이를 파악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때때로 꿈이 표현하고 있는 바가 성행위가 아닌, 전혀 다른 심리적인 문제임을 깨달을 수도 있을 터이다.
자물쇠에 꽂혀 있는 열쇠는 성적인 상징일 수 있으나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성직자가 여는 문은 희망을 자물쇠는 자비를 열쇠는 하느님에 대한 희구를 상징한다.
교회의 문을 지팡이로 두드리고 리는 지팡이는 교회의 권위와 양치기의 지팡이를 상징하는 것이지
남근의 상징일 수는 없다.
꿈을 해몽사에게 맡기는 것은 지극히 어리석은 일이다
꿈의 상징은 그 꿈을 꾼 사람과 나누어서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어떤 꿈에 대해서도 단정적이고 직접적인 해석은 있을 수 없다.
빈번하게 등장하는 전형적인 꿈과 단일한 상징(이것을 모티브)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이런 모티브들은 그 꿈 자체의 문맥 안에서 전후 관계가 고려된 상태에서 해석되어야 하는 것이지
자명한 의미를 지녔기에 설명이 불필요한 암호로 받아들여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사전적 해석은 아무 의미도 없다.
꿈이라고 하는 것은 고도로 개성화한 것이기 때문에 꿈 상징을 간단히 분류하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꿈속에서 항상 영웅이나 위대한 역사적 인물을 이 나타난다면 분명히 열등 콤플렉스를 보상하는 꿈이다.
그러나 꿈에는 또 다른 암시를 엿볼 수 있다.
자신의 열등감을 상쇄하는 과대망상증의 경향 또한 지니고 있음을 내비친다.
열등감 때문에 이런 꿈을 꾸고 있다면 자신에 대해 무력감을 느끼는 나머지 이런 느낌으로
자신의 긍정적인 면을 모조리 억누르고 있는 사람에게, 유치하게 그런 꿈이나 꾸고 있다든지
도착적이라고 한다든지 함으로써 그를 구박하는 것은 잘못이다.
구박하는 잔인한 행위는 오히려 열등감을 악화시키고, 치료를 기피하려는 비생산적이고 불필요한 저항의 빌미만 마련해 줄 뿐이다.
꿈 상징은 우리가 지니고 있던 본래의 성질(본능이나 고유의 사고)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꿈은 그 내용을 자연의 언어로 나타낸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낯설어 보이고, 그래서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다.
바로 이 때문에 우리는 꿈 상징을 현대어의 합리적인 용어와 개념으로 번역해야 하는 일과 만나게 된다.
어린아이는 몸이 작고 의식적인 사고도 빈곤하고 단순하다. 그러나 우리가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은, 어린아이의 마음이 원시 심성과 근본적으로 동일한 구조로 되어 있기 때문에 대단히 복잡하다는 사실이다. 인간의 진화 단계가 태아에 의해 되풀이되는 것처럼
이 <원시 심성>은 어린아이의 마음속에서 기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