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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 Mar 12. 2024

내가 만든 죽음의 공포

번지점프


여름날이었다. 아이들과 함께 가평으로 여름휴가를 떠났다.
 짧은 청반바지와 나시를 입고 있는데도 습하고 더운 날씨다. 드러난 맨살에는 땀으로 끈적하여 여행의 설렘은 온데간데없고 지치기만 했다. 당시 가평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번지점프로 유명한 곳이었다.
 예능프로였던 것 같다. 이휘재 씨였을까 번지점프 도전기를 방송했던 기억이 난다.
 번지점프는 55m 정도의 높이였다. 예능프로를 보았던 영향 때문인지 여행 일정에는 없었던 번지점프 장소에 이끌리듯 가게 되었다. 난간에서 뛰어내리려고 준비하고 있는 사람이 아주 작은 인형처럼 보였다. 기다란 밧줄과 함께 떨어져 날아 내려오는 건 인형에 줄을 달아 떨어뜨리는 장난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혼자서 뛰어내리는 사람들도 있었고 젊은 커플들이 함께 안고 뛰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도 도전하고 싶었다.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기분은 어떨까. 죽음의 공포에 대한 도전이었다. 당시 우울한 마음에서 비롯되었던 것 같다.
  
 번지점프를 하기 위해서 몸에 있는 모든 액세서리를 빼야 했다.
 “여기 목걸이 반지 귀걸이 그리고 안경을 벗어서 놓으시고 이쪽에 사인하시고 결제하세요.” 조그마한 바구니에 내 몸에 착용하고 있었던 액세서리를 빼고 안경까지 벗었다.
 중학교 이후 한 번도 외출할 때 안경을 벗지 않았던 나로서는 안경을 벗는 일은 알몸을 드러내는 일과도 같았다. 안경을 내려놓는 순간부터 나의 마음은 쿵 무언가 가슴에서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으나 울컥하는 마음까지 들었다.
 근시인 나의 눈앞은 안개가 낀 것처럼 뿌옇게 보였다. 번지점프를 하는 곳으로 한 계단씩 올라갔다. 번지점프를 하기 위해 올라온 대기자들과 안전장치를 해주는 사람들이 웅성 웅성하며 모여 있었다. 여자인 내가 올라갔더니 사람들이 위아래로 쳐다본다는 느낌을 받았다.

“혼자 뛰시는 거예요?” 직원 인 듯하는 남자분 한 명이 나에게 질문을 했다
 “네” 목소리를 작게 하면 두려워하는 마음이 들킬까 봐 용감한 척 대답을 했다.
 입술을 커다랗게 벌려 입김을 세게 불어 “네”라는 대답을 하고 입을 꾹 다무는 사이 더운 날씨에 끈적함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등줄기에서 서늘한 바람이 스쳐 지나갔다.

“네 잠시만 그쪽에서 기다리세요”


하시면서 내 팔뚝만 한 밧줄이 달린 장비를 가지고 오셨다.
 직원분이 설명을 해 주신 대로 천천히 장비를 착용을 했다.
 다리 하나씩 끼는 동안 “내가 왜 이걸 한다고 했지? 지금이라도 그만둘까, 아니 그러면 결제했던 돈이 아깝잖아 버리는 거잖아. 도전한다고 마음을 먹었으니 해보자.”
 마음속에서는 해야 한다. 하지 마라 위험한 짓을 왜 하느냐
 남자들도 무서워서 하지 못하는데 왜 네가 위험을 무릅쓰고 이 높은 곳에서 뛰려고 하느냐 머릿속의 자아들이 싸우는 소리를 삶을 관조한 사람처럼 나는 차분하게 듣고 만 있었다.

“다 착용하셨으면 신발을 벗으시고 여기 서세요”
 다소곳이 신발을 벗어서 몸을 숙여 한 손으로 신발 두 짝을 나란히 해서 대기자들이 있는 곳에 두었다. 그리고 직원분이 서라는 곳에 갔더니 발자국 모양을 그려 놓았다.
 그 발자국 그림을 보는 순간, 높은 곳에서 자살을 한 현장에 경찰들이 그려 놓은 발자국처럼 섬찟한 생각이 들었다. 왜 자살을 하기 전에 신발을 벗고 뛰어내리는 걸까 나는 맨발로 태양 열기로 달아오른 시멘트 바닥을 천천히 걸어가 발자국 그림 있는 곳에 내 발을 하나씩 올려놓았다.


“이제 준비되셨어요? 준비되시면 말씀하세요~”

나는 심장이 두근거리고 온몸이 떨리는데 아랑곳하지 않고 직원분의 내뱉는 말은 강아지에서 했다 여기 하면서 뼈다귀를 던지듯 말을 던져 놓는 듯했다.
 발을 올려놓고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발아래를 내려다보는 순간 현기증이 나기 시작했다. 번지점프를 하는 것을 구경하는 사람들로 인산인해였던 풍경은 온데 간데없이 사라지고 나만 덩그러니 산 꼭대기에 남겨진 기분이었다. 무서웠다. 너무나 무서워서 뒷걸음을 쳤다.

“한 번 뒷걸음치고 뛰어내린 사람 못 봤는데... 어떻게 하실래요? 내려가실래요?”
 ‘뭐야 이 아저씨 나를 놀리는 거야?’ 내가 뛰지 않는다고 했나. 아래를 보는데 현기증이 나서 뒤로 한 발자국 물러난 것뿐인데 여자가 감히 어디서 뛰어내린다고 그래, 하며 놀리듯 비아냥 거리는 거 같았다.
 “아뇨.!” 다시 굳게 다짐을 하듯 대답하고 발자국 그림이 있는 곳에 가서 가지런히 섰다.
 “아래 보지 마세요. 아래를 보면 뛰지 못합니다. 멀리 저 산을 보세요. 최대한 멀리 뛰어내린다 생각하고 뛰어내리세요~” 그러시더니 준비되었냐는 말도 없이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멀리 산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최대한 멀리 뛰어내렸다. 양손은 직원분의 지시대로 얼굴을 감싸고 있었다. 얼굴이 혹시나 다칠 수 있으니 내리자마자 얼굴을 가리라고 했던 거 같다.
 눈은 감고 있고 한없이 내려간다. 꿈을 꾸는 거 같았다. 꿈속에서 낭떠러지에 떨어지는 꿈을 꾸고 있다. 이 정도만 내려가면 발이 닿을 거 같은데 닿지 않았다. 얼마나 더 내려가야 하는 거야? 눈을 뜨고 싶었다. 악몽을 꾸는 듯 누군가 나를 깨워줬으면 했다.
 빨리 와서 깨워 달라고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조금씩 정신을 차리기 시작한 게 몇 미터 아래로 떨어져 내려왔을 때였는지는 모르겠다. 어디선가 외마디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다친 걸까 무슨 일이 있는 걸까 두려웠다.
 난 언제 이 꿈에서 깨어 나는 거지? 얼마나 더 떨어져야 땅에 내 발이 닫는 걸까
 “악!!” 세차게 나의 발을 잡아당기는 바람에 소리를 지르며 그때서야 양손을 내리고 눈을 떴다. 돛단배를 타고 온 직원이 내 다리가 내려오자 잡아챘던 것이다. 아… 이제 다 내려왔구나 하는 안도감과 함께 천천히 내려왔다.


 내 몸은 온데간데없고 다른 이가 내 안에 있는 듯 발걸음이 휘청거리고 온몸에 힘이 풀려 신발을 겨우 신고 땅을 한 발짝 내딛는데 땅은 더 바닥으로 가라앉아가는 기분이었다.

“엄마~”하며 아이들이 뛰어온다. 아무렇지 않은 듯 환하게 웃어 주었다. 그런데
 “엄마, 피.” 하면서 작은애가 울기 시작한다. 짧은 청반바지를 입고 뛰었는데 중간쯤 내려올 때 구경하던 사람들의 외마디 함성이 들렸던 그쯤이었나 보다 내 다리에 안전장치에 달렸던 기다란 밧줄이 스쳤던 모양이다. 그때 설켰던 상처로 인해 다리에서 피가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는데 나는 아무런 감각을 느낄 수가 없었다.
 
 자살, 죽음에 대한 공포를 느꼈다. 내가 무슨 생각으로 뛰어내렸을까 이제 막 초등학교를 들어간 딸과 유치원에 다니는 어린 딸이 보는 앞에서 엄마가 난간에 올라갔을 때 아이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엄마로서 참 무책임한 행동을 했었다는 생각에 울고 있는 작은애에게 미안했다. 삶이 힘들 때 자살에 대한 단어를 아무렇지 않게 떠올리고 죽음의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현재의 나를 직시하게 했다. 휴가오기 전 우울했던 감정들을 모두 날려 버렸다. 빅터 프랭크 죽음의 수용소에서 자살을 하지 않고 견디어 냈던 이유 중 하나가 사랑하는 아내를 생각하며 행복한 순간을 기억해 내는 것이었다. 아내가 생사조차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아름다운 추억으로 수용소에서 버텨냈다. 나는 지금 사랑하는 딸들이 옆에 있고 건강하게 살아가는 것 만도 행복한 순간들에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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