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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 May 07. 2024

에세이와 일기사이

큰 딸이 충수염으로 수술을 하고 퇴원했다.

"엄마가 싸준 참치김밥이 먹고 싶어"

김밥을 싸서 집에서 먹기보다는 간단히 소풍을 가려고 준비를 했다.

참치에 매운 고추를 송송 썰어서 마요네즈와 함께 버무려 놓는다.

계란은 동그란 프라이팬에 기름을 살짝 두르고 부친다. 아주 얇게 지단을 만들어 놓는다

김사이즈와 같은 크기의 사각형을 이등분을 한다.

도시락과 간단한 간식 그리고 과자를 들고 가까운 공원으로 소풍을 갔다.

바람이 많은 주말이었다.

넓은 공원에는 배드민턴을 하는 아빠와 아들

휠체어에 앉은 부모님과 함께 나온 젊은 자녀

어린 아들을 위해 물풍선 건을 쏘는 아빠

단란한 가족들의 일상을 한눈에 볼 수 있었다.

커다란 나무들이 우거져 그늘을 찾기는 쉬웠다.

화사한 철쭉이 피기 시작하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지금은 김밥을 손쉽게 가게에서 살 수 있는 음식이 되었지만 내가 어릴 땐 소풍을 가야만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다.

소풍 가는 날 아침이면 고소한 참기름 냄새로 잠에서 깨어났다.

당근을 송송 써시는 엄마의 모습을 보며 부엌으로 향했다.냉큼 썰어져 있는 당근을 한 입 깨물어 먹었다.

참기름과 버무려 놓은 밥을 손으로 한 줌 집어 입으로 가져가 오물오물 밥알들이 입안에서

맴돌고 고소한 향은 머리를 맑게 했다.

평소에 먹던 밥보다 고슬고슬하다. 엄마는 김밥을 싸는 밥은 다른 때보다 신경 써서 하셨다.

맛있는 김밥을 싸서 엄마와 함께 소풍을 갈 수 있는 기회도 주지 않고 홀로 소풍을 떠나버리신 20여 년의 세월 동안 야속한 마음이었다





큰 애가 수술을 하고 마취에 깨어나면서 아파하던 모습에 눈시울을 감출 수가 없었다.

"엄마, 오지 말라니까 왜 왔어"

어릴 때부터 많이 아파서 그런지 아픈 걸 잘 견뎌내는 아이였다. 그런데 이를 앙당 물고 끙끙 앓으며 옆에 서 있는 남자 친구에게 겨우 입술만 벙긋,

"진통제 좀 더 놔 달라고 해줘"

진통제 성분에 알레르기가 있는 큰 애에게 병원에서는 강한 진통제를 처방해 줄 수가 없었다.

무통주사를 맞으며 시간과의 싸움으로 견뎌내야 했다.

3시 업무시간이지만 회사에 말을 하고 간단히 조치를 해놓고 왔으니 좀 더 병원에 있어도 괜찮았다.

하지만 일을 핑계로 집으로 돌아왔다.

월차를 내고 지방에서 올라와 준 딸의 남자친구에게 고마웠다.


나는 산부인과에서 큰 애를 낳고 집에 와서야 엄마에게 전화했었다.

"넌 왜 애를 낳는다고 말을 안 했어?"

큰 딸의 첫 아이이고 첫 손녀였다.

하지만 아빠의 결혼 반대로 인해 엄마의 눈물로 이루어진 결혼이었다. 엄마에게 전화할 수가 없었다.

새벽부터 진통이 시작이 되어 20시간 넘게 진통이 있었다.

저녁에 되어야 시어머니가 오셨고 혼자 견뎠다.

그렇게 힘들게 나은 딸인데 분만실 문을 열고 간호사가 아이를 안고 나가자마자

시어머니 왈 "딸이넹~" 툭 봉지에 담자마자 던져버리는 말투에 서글펐다.

딸이라고 서운해 했던 아이가 성인이 되어서 할아버지생일상을 차려드린 유일한 손녀다.


음식이 그리운 사람을 소환하여 글이 산으로 갔다.

일기 인지 에세이인지... 모를

에세이를 쓰려고 글쓰기를 시작하지는 않았다.

내가 쓰고 싶은 글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었으면 하는 야무진 꿈도 없다.

다만, 내 글을 읽는 이들이 조금이나마 공감하고 그 공감이 번지는 곳엔 감사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바람 많이 부는 날, 따가운 햇살을 가려주는 듬직한 나무아래 김밥을 먹으며 게임을 신나게 하는 성인 딸들을 보며 행복을 느꼈다.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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