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 월드에 입성하다.
중학교 때 친하게 지내던 친구는 가수 이선희를 좋아했다. 높은 옥타브의 노래도 곧 잘 따라 불렀다.
그 당시는 노래방이 없을 때라 가사도 모두 외워야 했다. 반주도 없는데 생음악으로 노래를 잘했던 친구였다. 이선희의 앨범이 나오면 카세트 테이프가 늘어져 듣지 못할 정도로 들었다. 앨범이 나올 때마다 카세트 테이프뿐 아니라 포스터 그리고 잡지에서 이선희 사진들을 오려서 스크랩북을 만들었다.
친구가 자신이 만든 이선희 사진 앨범을 나에게 보여주는 표정에는 뿌듯함과 행복감이 가득했었다.
그 당시 그 친구의 덕질이었다.
(덕질이란 좋아하는 대상을 알아내어 열정적으로 수집하거나 사랑하는 행위를 말한다)
연예인을 좋아하거나 덕질을 하는 사람들은 나와 다른 세계의 사람이라고 치부했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였을까 나도 덕질의 문화에 입문하기시작했다. 좋아하는 작가, 문구 등을 덕질한다.
해년마다 좋아하는 나만의 작가를 발굴하는데 희열을 느끼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장르의 작가 나만 알고 싶은 작가의 책들을 모으고 읽기 시작했다.
마지막 달에는 올해의 나만의 베스트 작가상도 부여해주기도 한다.
작가의 책뿐 아니라 작가가 책에서 언급한 다른 책들도 읽게 된다. 좋아하는 사람을 닮아가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그 사랑이 오래가지 않는다. 한 작가의 책을 몇 권 읽고 나면 또 바뀐다.
올해는 무라카미 하루키다.
카를 융이 말하던 동시성과 무의식은 나를 하루키월드에 입성하게 만들었다.
하루키라는 작가는 나에게 대중들이 좋아할 만한 소재로 통속적이고 사변적인 소설을 쓰는 작가였다.
[상실의 시대]를 두 번이나 읽고 중도에 포기하고 그의 소설을 피상적 판단으로 단순한 관념유희로 치부했었다. 내가 만들어놓은 그물 안에 잡히는 것들만 붙잡는 거미와도 같았다.
우연일까? 필연일까? 그를 체험하게 했다. 이 체험은 나를 하루키 덕후로 만들었다
그를 처음 만난 건 23년 베스트셀러였던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이다.
대단한 작가이다.
현실과 비현실의 벽을 넘나들며 날아다니는 새 처럼 글을 쓰는 작가, 몽환적인 구성이지만 현실에 있는 독자들을 자신의 이야기 속으로 끌어 들게 하는 커다란 자기장을 가지고 있는 천재적인 작가이다.
한 동안 난 하루키 월드에 빠져 있을 것이다.
덕질은 삶을 풍요롭게 한다.
내 인생을 사랑하는 일, 내가 하는 행위에 집중하고 몰입하는 일은 삶에 열정을 불어넣는 일이다.
영혼을 쉬게 하는 오티움과 같다.
매일 우리는 어제라는 일상을 잃어가고 있고 또 나를 잃어 가는 지도 모른다.
크고 작은 상실감으로 마음에 틈이 생긴다.
싱겁고 무미건조한 틈들은 일상의 균열을 가지고 온다
일상과 일상사이에 일어나는 틈을 덕후생활로 비를 맞지 못한 식물처럼 말라가던 갈증을 해소한다.
덕후생활은 자기를 알아가는 지름길이다.
하루키 월드에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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