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발~ 펜대의 깃털이 나부끼던 순간/ 파리 공항
반년 만에 시도한 스케치.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설레며 그린다. 가끔은 아, 모르겠다- 여행 피로에 지쳐 손은 종이 위에서 제멋대로 춤을 춘다.
그림은 그린이의 몸과 마음의 상태를 나타내는 기록이기도 하다.
지난 후에 보면 재미있다. 그땐 그랬지- 참, 지쳐서도 열심히 그렸네, 아니, 이게 뭐야, 왜 이걸 그렸을까, 하고. 웃으며 돌아볼 수 있어 좋다.
멀미약의 기운이 온몸에 스며든다.
비행기가 출발한다.
읽던 책을 덮었다.
그 장면을 담던 스케치 북도 덮었다.
밀려드는 모험이 스치고 지나갈 새하얀 여백 , 두 손 가득 안고 몸도 마음도 날아가기 시작했다.
작은 Tip
비행기 멀미가 심하다면, 각자에게 잘 맞는 멀미 약을 미리 준비하자. 필자가 애용하는 멀미 약은 미국산 Dramamine. 강력하다. 졸음이 덜한 버전 less drowsy도 있고, 졸음이 전혀 없는 생강 성분 100%인 천연 성분도 있다. 멀미가 심각해지면, 도착 후에도 극심한 두통에 시달릴 수 있으니 평소 차멀미가 있다면 미리 약을 준비하자.
+ 멀미를 제거하면, 비행기 안에서 독서가 가능하다. 시간이 없어 못 읽은 책을 접할 절호의 기회.
나라마다 공항의 냄새가 다르다.
외국인들은 인천 공항에서 김치 냄새를 맡는단다. 나의 코에는 너무 익숙해서인지, 몰랐던 사실.
파리 공항을 내리자 코에 닿은 향기는- 하얀 비누의 향이다. 부드럽게 감돌며 오랜 비행에 지친 마음을 편안하게 감싸준다.
공항을 빠져나오자 걸음을 서두른다. 파리는 소매치기가 심하다.
(그것을 들어온 필자도 잠깐 방심하다 당했다. 작년 파리 여행 중, 안전 지역인 15구에 묶었음에도, 마켓에서 처음 본 오렌지 주스 기계에 넋을 잃고 주스를 만들다가, 핸드폰을 소매치기당했다.)
공항 주변은, 특히 동양인 여행객의 따끈한 현금을 노린 소매치기들이 여행가방을 통째로 들고 가버리기도 한다 들었기에 서둘러 호텔로 향한다.
파리에 도착하고 처음 접한 비누 향은 호텔 방에 들어서자 다시 느껴졌다. 깔끔하고 맑은 느낌의 공기, 안정감. 차분한 방의 분위기는 지친 여행객에게 완벽하였다.
습관이 사라진 새로운 방 안
두 눈을 깜박이며 이방인의 눈길로, 눈앞에 침묵하는 방을 스케치한다.
심플한 모던 디자인의 가구들로 이뤄진 호텔 방.
두꺼운 유리는 창 밖을 솟아오르는 굉음도 완벽히 차단하여, 환풍기 소리만이 귀를 울린다.
일시적인 나만의 공간. 비상구가 마련된, 완벽한 은신처...
책 한 권을 들고 하얗고 부드러운 베개에 기댄다. 피로에 지친 여행자의 몸은 서서히 타인의, 또 다른 자신의 이야기 속으로 가라앉는다.
나 홀로 여행과 독서- 자기 성찰의 시간은 이렇게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