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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Ryu 제이류 Oct 18. 2019

푸른 바다의 니스, 첫인상

Chapter 01; 프렌치 리비에라 French Riviera



"오! 저는 바다를 너무나 좋아해요" 하고 레옹이 말했다. 
 "그리고 말입니다" 보바리 부인이 말을 받았다. 
 "그 끝없이 넓은 세계 위에서라면 마음이 한층 더 자유롭게 방황할 것 같지 않으세요? 그걸 가만히 바라보기만 해도 영혼이 고양되고 무한이나 이상 같은 것을 생각하게 되지 않겠어요?"

'마담 보바리' 플로베르, 민음사




니스 성에서 바라본 해변 / 종이에 수채화 2017


자갈 해변을 서걱거리며 걷는 맨발, 아랍 풍의 옷차림을 한 묘령의 여인이 해변에 반쯤 몸을 기대고 앉아 긴 한숨을 내쉰다. 어둠의 바다보다 깊은 눈빛으로 소리 없는 속삭임에 귀 기울이며 말없이 가벼운 손짓으로 열띤 몸을 식히는 차가운 바닷바람. 


이어지는 아침. 검은 우주를 흩트리며 내리쬐는 뜨거운 햇살 아래, 도드라진 주름살을 자랑하듯 하얗게 미소 지으며 즐거워하는 이국적인 여인- 


밤과 아침에 맞이한 니스 해변의 첫인상은, 그런 조용하고 부드러운 섬세함과 함께 영원한 푸른빛을 동시에 지닌 매혹적인 여인이었다. 

흐린 날, 니스 해변가, 첫 스케치/ 종이에 펜

이러한 첫인상은, 후에 읽은 소설에서 겹쳐지며 더욱 또렷해진다. 니스의 국제적인 삶과 쾌락의 도시라는 이미지는, 그곳에서 영국 귀족에게 어린 나이에 팔려가는 오데트('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등장인물)의 일화로 상징된다. 동시에 니스는, 아돌프 할아버지가 그랬듯이 (그와 오데트가 처음 만난 곳으로 니스가 추측된다) 유럽인들이 겨울을 나기 위해 찾는 곳이다.    




위 그림의 이미지 확대

강한 햇살을 온몸으로 받으며 푸르게 빛나는 그 여인은, 수많은 프랑스인들과 외국인, 세계적 문인들을 유혹해왔다. 제임스 조이스, 니체, 헤밍웨이, 사강, 체호프, 오스카 와일드…(다음 편에 등장할 소설가들) 계속 이어지는 크고 작은 이름들. 


그 아름다운 이름들을 부르듯, 니스의 해변은 찰랑거리는 파도의 끝자락이 조약돌을 가지고 노는 소리로 가득하다. 자갈의 소리를 들으며 해변을 걷다가 무심코 고개를 돌린다. 검푸르게 상한 작은 덩어리가 둥그런 자갈 사이에 으깨지고, 부지런한 파도의 손길에 미끄러져 조금씩 작아지다 사라져 간다. 그렇게 마음이 맑아지는 자갈 소리에 기대어 거닐다가 소리가 가장 또렷한 곳에 앉는다. 그렇게 파도 소리를 앞에 펼치고, 좋아하는 소설을 읽는다. 


해변의 독서시간

자갈에 부딪치는 파도소리. 맑고 또렷한 그 소리에 내 머릿속도 환해지고, 소설 속 이야기는 맑게 가슴속으로 흘러든다.

 

종이에 펜/ 자갈 해변이 하천을 만나 뾰족해진 부분은 물살이 세어 하얀 거품이 가득이다. 멀리 낚시꾼들이 보인다.


해가 지면 파도소리는 어둠만큼 선명해진다. 다시 그 소리의 명당을 찾아내 책을 펼친다. 


고개를 드니 바다는 이미 어둡고, 하늘은 아직 푸르르다. 그것도 잠시, 하늘도 잿빛 어둠에 잠겨 침묵한다. 사강의 소설 글귀가 새겨진 분홍빛 상자를 꺼낸다. 그 안에는 커다란 성냥이 상기된 얼굴로 나란히 누워 빛으로 사라지길 기다리고 있다. 


성냥을 긋고 타오르는 조그만 불빛으로 바다의 어둠에 저항해 본다. 뜨거운 불을 품은 동시에 맑게 울리는 소녀의 상냥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전하던, 그 불길이 남길 상처와 그을음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던 사강, 그리고 그런 사강의 영향을 받은 일본 작가 다나베 세이코의 글귀가 성냥 끝에서 울리는 듯했다. 



좋은 책은 다른 좋은 책으로 이어진다고 한다. 우연히 접했던 일본의 여류 소설가, 다나베 세이코는 프랑스 문학사의 문제아, 프랑스와즈 사강으로 이어졌다. 


근래 사강은 한국에서 재조명받고 있다. 경제 부흥의 필연적 결과 일까. 서구의 60년대, 일본의 80년대, 이제 한국의 2010년대. 


여성이 사회로 진출하며 경제적 독립이 가능해지고, 결혼의 의미와 여성의 사회적 역할이 바뀌는 과도기. 이제야 공감대를 형성하여 읽히는 선진국의 소설들. 그중 사강의 소설 일부에서 코르타 쥐르의 배경이 읽힌다. 




나는 니스를 꽤 좋아했다




 ...라고, ‘어떤 미소’의 도미니크는 말한다. 


니스는 화려하지 않다. 도미니크가 설명하듯 칸느나 모나코 같은 주변의 휴양지들보다 초라한 편인지도 모른다. 낮에는 부연 옥색과 남청색이 또렷한 경계를 가지며 바다를 색칠한다. 밤에는 그런 색감마저 사라지고, 평범하고 조용한 바닷가가 돼 버린다. 


그럼에도 끌린다. 옥색의 물결이 자갈이 부딪히는 소리는 특별하다. 그리고 바다 특유의 비릿함 없는, 청량한 공기. 


그런 상냥하게 맑은 초라함은, 가까이할수록 왠지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렇기에 몇 시간이고 멍하니 앉아 바다를 감상하며 책 장을 넘길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른 아침, 부슬비 내리는 해변은 나만의 차지다.

                     

하지만, 안톤 체호프가 말했듯, 니스는 독서에는 좋으나, 글쓰기에 집중하기에는 나쁜 곳인 듯하다. 작가들은 보통 휴식을 취하러, 아니면 말년을 보내기 위해 니스에 머물렀다. 그럼에도, 어떤 작가들은 이곳에서 글을 썼다. 


몇몇은 집필에 실패하고, 몇몇은 성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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