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학교 교사로 살아남기
나를 새로운 곳으로 이끈 원동력이 교사로서의 순수한 열정은 아니었다.
절벽 끄트머리로 내몰던 사람들에 대한 순수한 오기와 복수심 같은 것들이었다. 두 마음 다 순수하다는 점에서는 어찌 보면 같은 맥락 아닐까?
나는 순수하고 진실되게 그 사람들을 미워했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이 얼마나 나를 갉아먹는지도 몰랐다. 그럼에도 그들을 떠올리며 나는 버텼고, 또 앞으로 계속해서 나아갔다.
그렇게 나는 새로운 학교로 올 수 있었다. 나는 잔뜩 벽을 세우고, 경계 태세를 놓지 않은 채로 사람들을 관찰했다. 사람을 또다시 미워하고 원망하고 싶지 않았다. 동물의 본성처럼 안전 지대를 확인한 후에야 나는 비로소 사람들을 받아들이고, 그들에게 다가갔다. 상처받고 싶지 않았기에 섣불리 나를 보여주지도 않았다.
초임 교사 특유의 싹싹한 미소와 말투는 잃어버렸지만 나는 다짐했다. 이번엔 잘 버티겠노라고. 보란듯이, 행복하게.
두번째 외국인학교는 비슷한 듯 많은 점들이 달랐다. 특히 달라진 것은 당연 세상을 둥글게 보고자 하는 나의 의식적인 마음가짐이었고, 대부분의 업무는 사실 거의 비슷했다. 깊숙한 내부 사정까지는 몰라도 선생님들 끼리의 분위기도 그럭저럭 괜찮았다. 설사 불합리하고 이해가 가지 않는 일들이 있다 해도, 애써 무시했다. 무언가를 덮어놓고 싫어하는 감정 소모가 더 불편해졌다.
처음은 늘 어렵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어쩌면 너무 이상적인 세상을 꿈꾸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도 함께 깨달았다. 그냥 한 사람으로, 한 사회 구성원으로, 한 명의 교사로, 그럭저럭 살아가보자.
적당한 선을 지키는 일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노력이었다.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출발을 하자라는 당찬 포부와는 달리, 나는 첫 출근 날 기대를 전부 내려놓았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자 오롯이 아이들을 대하는 교사로서의 내가 보였다, 내가 늘 바라던 나의 모습.
내가 틀리지 않았다고 믿고 싶다. 외국인학교 교사로 잘 살아남고 있다고 믿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