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편지 1
To. 너에게
안녕.
나는 오늘은 새벽 5시가 조금 넘어서 일어났어. 보통은 6시에 일어나는데 조금 일찍 일어나 진거 있지.
넌 몇 시쯤 일어났니?
아침에 일어났는데 창문이 닫혀 있는데도 열어 놓은 것처럼 차가운 기운이 유리에서 막 뿜어져
나오는 거야. 신기하지. 추운 날이 많지 않다 보니 추위가 오면 금방 알게 돼.
드라마에서 보니까 바닷가 마을에 사는 사람들은 겨울이 되면 창문을 먼저 준비한데. 유리 창문에
테이프를 뜯어 크게 엑스자로 붙여 놓기도 하고 창문틈에 신문지를 구겨 넣어서 창문이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를 잡는다고 해. 바닷가에 살면 바닷바람 소리에 밤에는 조금 무서울 것 같아.
나는 날씨가 늘 좋은 캘리포니아에 살다 보니 이런 싸늘한 날씨가 그립고 그래서 겨울이 오면
기분이 괜히 좋아져. 사람은 참 간사한 동물이라 더니 한국에선 우중충한 날씨나 비 오는 날씨가 너무
싫었거든. 기분까지 다운되는 것 같아서 말이야. 또 겨울은 얼마나 춥게. 너무 추워서 칼바람이 볼때기를
때리고 온몸을 꽁꽁 싸매야 하는 추위가 너무 싫었어.
근데 지금 사는 캘리포니아는 더운 날, 햇빛이 쨍 한 날이 매일이다 보니 이런 쌀쌀하고 글루미 한 날이면
커피가 막 당기고 차가운 공기를 만끽하고 싶어 져. 추운데도 창문을 열어보게 되고 얼굴로 그 찬 기운을
느끼고 싶어서 몸을 감싸고 나가보게 돼.
너는 어떤 나라 어느 동네에 사는지 궁금하다. 사계절이 뚜렷한 한국이려나? 한국도 지금은 제법
추워졌을 것 같은데. 다시 내 얘기로 돌아가면 내가 정말 싫어하다가 좋아지게 된 일이 하나 있는데
그건 바로 기다리는 일이야.
한국은 그래도 뭐든지 빨리빨리 문화라서 줄 서는 일이 많지 않았던 것 같아. 줄을 서게 돼도
자기 차례가 빨리 왔던 거 같은데 미국은 정말이지 어디서든 기다리게 하는 일들이 참 많아.
난 성격이 급한 편이라 기다리는 데는 영 소질이 없어. 오래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오면 사야 하는 옷을
포기한다거나 리턴해야 하는 물건을 들고 다음에 다시 오는 걸 선택하지. 맛있는 음식점은 다음에 한가할 때
다시 오자고 하고 마켓에서도 제일 짧은 줄을 골라잡아. 뭐든 빨리 되는 쪽으로 움직이지.
제일 최악은 예약시간에 가도 1시간 이상을 기다려야 하는 병원이야. 정말이지 화가 난다니까!
그런데 여기사는 미국 사람들은 정말 어디서든 다들 느긋하게 기다려. 참 신기할 정도로 말이야.
화내거나 짜증 내는 사람 없이 스스로의 기다림을 받아들여.
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낭비되는 그 시간이 지루하고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지 정해지지 않아서
더 짜증이 나고 화가 났지. 그런데 이렇게 싫어하던 기다림이 좋아지게 된 이유가 뭔지 알아?!
바로 책이야. 그런 빈 시간에 책을 꺼내는 거야. 기다리는 시간이 독서의 시간이 된 거지.
책을 읽으니까 지루했던 시간이 빨리 지나가고 읽다 보면 내 차례가 오니까 여유롭게 기다릴 수 있게 됐어.
그래서 이제는 가방에 늘 책이 있고 나갈 땐 읽을 만한 책을 꼭 챙겨가게 돼. 기다림을 즐기게 된 내 모습에
놀랄 정도라니까.
어디서나 책을 읽는 사람을 보면 멋지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그런 멋진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고 생각하니
왠지 뿌듯하고 더 열심히 읽게 돼 더라고.
너도 기다림이 싫지? 그럼 나처럼 그 시간에 책을 읽어봐. 유튜브나 게임 같은 거를 할 수도 있지만
그것 또한 시간을 낭비하는 일이라 생각되거든. 가끔은 괜찮지만 너무 빠지다 보면 시간이 속수무책으로
흘러가버린 경험이 많이 있었어. 아까운 내 시간들을 다 잡아먹어 버리는 거야. 그래서 핸드폰 게임들은
삭제하고 유튜브는 자주 안 봐. 단호하게! 가끔은 나를 위해 단호할 때가 필요해.
매일 똑같은 평범하고 지루한 날들을 바꾸고 싶다면 너도 한번 책 읽기를 시작해 봐.
나처럼 기다림이 좋아지거나 나의 시간 허투루 잡아먹는 일들이 줄어들거라 생각해.
시작해 보고 나에게도 알려줘. 어떤 것들이 좋았고 어떤 것들이 너를 설레게 했는지 말이야.
주저리주저리 내 얘기 많이 했지? 들어줘서 고마워~
내가 또 편지할게. 그때까지 잘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