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 《트럼프, 붕괴를 완성하다》 저자 안병진
새터데이 에디션이 주목한 이슈
인종 차별, 보호 무역을 앞세운 미국 제일주의와 각종 스캔들, 파격적인 북미 정상 회담 추진까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예측 불가능한 행보로 전 세계를 혼돈으로 밀어넣었습니다. 자유와 다양성, 법치라는 원칙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트럼프의 시대를 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트럼프 시대와 그 이후를 내다보기 위한 질문을 던지고 해답을 찾아나가는 북저널리즘 신간 《트럼프, 붕괴를 완성하다》의 저자 안병진 교수에게 물었습니다. 이 세계는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요?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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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세계는 제국의 시대에서 벗어나 질서 이탈의 시대로 진입했다. ② 기후 변화의 파국은 새로운 정치 질서를 요구하고 있다. ③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한계를 넘어 생태 체제로 패러다임을 전환하자.
스크롤을 내리면 확인할 수 있어요
• 트럼프의 미국과 혼돈의 세계를 이해하는 키워드
• 2020년 미국 대선 전망
• 환경 문제가 정치 어젠다로 전환될 가능성
• 한국의 시민이 할 수 있는, 해야 하는 일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된 지 2년이 지났다. 지난 2년을 어떻게 평가하나?
트럼프 시대에 대한 정의를 헨리 키신저의 말로 대신하고 싶다. 키신저는 트럼프 시대를 “한 시대의 종언을 고하고, 그 시대의 낡은 가식(Pretences)을 포기하도록 몰아가는 인물의 우연한 등장”이라 지적한 바 있다. 지난 2년은 트럼프가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기존 자유주의 질서를 붕괴시키며 그 가식을 드러내는 혼돈의 과정이었다.
대통령이 되고 나서도 후보 시절과 비슷한 것 같다. 변한 게 없다.
트럼프가 당선되었을 때, 그의 과격함은 선거 승리를 위한 전략에 지나지 않는다며 취임 후 곧 정상을 찾을 것이라는 예측이 많았다. 하지만 예측과 달리 2018년 중간 선거 패배 이후에도 트럼프는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 미국 사회에는 훌륭한 특질도 많지만 배금주의, 자기애, 타자에 대한 무감각, 속물적 욕망 등 부정적인 특질도 많다. 미국 사회가 보이는 최악의 경향의 끝판왕이 트럼프다. 트럼프는 어차피 자기의 열혈 팬층을 위해, 궁극적으로는 자기 만족을 위해 사는 사람이다. 분노, 냉소, 혐오, 공포, 절망의 시대 정신을 팬층이 갖고 있는 한, 트럼프로서는 달라질 이유가 없다.
트럼프가 잘하는 것도 있지 않을까? 많은 사람들이 지지하는 이유가 있을 테니까.
“낡은 가식을 드러내는 인물”이란 키신저의 말에 그 답이 있다. 트럼프는 걸출한 포퓰리스트다. 트럼프는 정치가의 가장 중요한 덕목 중 하나인 시대의 분위기와 인간의 분노라는 정서를 탁월하게 꿰뚫는 촉을 갖고 있다. 더 이상 아메리칸 드림을 믿지 않는 이들에게 트럼프는 자유주의 질서의 달콤한 미래 약속과 가식을 날려 버리는 복고적 혁명가다.
한국 입장에서는 두 차례의 북미 정상 회담으로 기대할 만한 변화도 있었다.
물론 한반도를 살아가는 입장에서는 트럼프의 장기 집권을 바랄 수도 있다. 현재는 교착 상태이지만 김정은 위원장이 만약 미국이 요구한 기준선에서 더 능동적 태도를 취한다면 2020년 대선을 앞두고 ‘10월의 이변(October Surprise)’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앞으로 트럼프의 변덕이 만들어 내는 화려한 스펙터클 이벤트 이후의 지루한 여정은 물론, 트럼프 없는 미국의 갈팡질팡 행보를 예상해야 한다.
트럼프의 어젠다에 뼛속 깊이 공감하는 고졸 이하 백인 유권자들 사이에서도 피로증이 나타나고 있다. 청문회 정국과 뮬러 특검, 검찰 수사로 트럼프가 대선 이전에 그로기 상태에 몰릴 수도 있다.
오바마 대통령이라는 이상적으로 보이는 지도자의 후임자가 트럼프라는 사실은 상당히 큰 충격이었다.
오바마와 트럼프만큼 완벽하게 이질적인 존재를 찾기는 어렵다. 출신 배경에서부터 정치 스타일, 패션, 음악 취향에 이르기까지 도대체 공통점이 없다. 정치 노선에서도 오바마는 클린턴의 계보를 잇는 제국의 ‘다크 나이트’이고자 했고, 트럼프는 이를 기득권이라 규정하며 흔들고 조롱하는 조커에 가깝다. 하지만 이들에게도 공통점이 있다. 전혀 다른 스타일의 두 대통령은 하강하는 미국호의 연착륙을 준비하고 상승하는 중국을 억제한다는 공통의 화두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오바마와 트럼프에게는 혁신해야 할 공통의 기성 질서가 있다. 바로 워싱턴 기득권이다.
그렇게 보더라도, 트럼프는 기성 질서에 지나치게 반하는 이단아다. 미국의 민주주의 시스템에서 이런 지도자가 등장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하늘 아래 새로운 건 없다. 트럼프 현상의 선구자들은 수없이 많다. 최소한 근대 중반부터만 살펴보아도 백인 인종의 배타성에 근거한 반동적 포퓰리즘으로 민주, 공화 양당제를 뒤흔든 ‘1960년대의 트럼프’ 조지 월리스가 있다. 반동적 포퓰리즘을 B급 할리우드 배우의 연기력으로 변주한 로널드 레이건은 80년대의 트럼프다. 반동적 포퓰리즘에 영화의 스토리텔링, 거대한 신진 정치 세력을 결합한 뉴트 깅리치 하원의장은 90년대의 트럼프다. 다만 트럼프는 과거 이들과 달리 기성 질서가 붕괴되는 세기말적 현상의 아이콘이란 점에서 그 충격파는 이루 말할 수 없다. 트럼프의 ‘상냥한 파시즘’은 미국 민주주의에 심대한 상처를 남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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