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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oklaire 북클레어 Oct 26. 2024

[소설] 6부. 애도의 시간을 향한 초침


눈결정체들은 온도와 습도에 따라 

보석과 같은 아름다운 결정체 모양을 만들어냈다.

 곳에 눈사람들은 인간세계에서의 추억을 담아두었다


준호에게 환상을 보여준 눈사람의 몸은 모두 녹아내렸다. 눈사람은 녹아내려 하얀 숲의 일부가 되었다. 눈사람은 녹아 하얀 숲으로 흘러흘러 들어가 어딘가에 서있었다. 눈사람의 눈 앞에는 가장 오래된 나무가 있었다. 다른 곳과는 달리 눈이 내리지 않아 새 생명의 기운이 넘쳐나는 싱그러운 초록의 숲이 펼쳐져있었다. 마치 다른 세상의 나무처럼 보였다. 숲이 정말 아름다운 것인지 아니면 숲이 만들어낸 환상을 통해 아름답게 보이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눈사람은 처음 하얀 숲에 도착했을 때보다도 더 큰 경이로움을 느꼈다.


가장 오래된 나무 앞에는 뿔이 나뭇가지처럼 여러 갈래로 쭉 뻗어있는 큰 사슴이 있었다. 사슴이 눈사람에게 길을 안내해주었다. 나무를 지키기라도 하는 것처럼 뿔이 나뭇가지처럼 여러 갈래로 쭉 뻗어있는 큰 사슴이 나무 눈사람을 쳐다보고 있었다. 사슴은 멀리서 아이들의 냄새부터 맡는 것인지 코를 씰룩대며 눈사람쪽을 쳐다보았다. 눈사람을 경계하는 모습이었다. 사슴의 경계하는 몸짓에도 눈사람은 발을 앞으로 내딛었다.


눈사람은 녹아 하얀 숲의 일부가 되었다.


다시 눈을 뜬 준호는 다시 집으로 돌아와 있었다. 환상에서 깨어난 준호에게 공허함의 바람이 불어왔다. 아빠가 사라졌다는 사실이 느껴져 가슴이 아팠다. 공허함의 바람은 준호의 가슴에 통증을 남겼다. 환상에서 깨어났을 때 느껴지는 찝찝한 쓰라림이 너무 싫었다. 준호는 아빠 옆에 있고싶었다. 현실에서 깼을 때, 느껴지는 이 느낌이 싫었다. 준호는 그 날이후부터 찾아올 고통을 언젠가 다시 느껴야한다는 것을 이미 알고있었다. 결국 그 느낌은 찾아왔고, 마주해야 했다. 


모두 사라졌다. 



“사랑해…” 준호의 작은 목소리가 아무도 없는 방에 울려퍼졌다.


계속해서 울었다. 


아빠가 사라진 공간이 거대하게 느껴졌다.


집으로 돌아온 준호는 아빠가 없는 텅빈 집을 보았다. 집은 이전과 달랐다. 아빠가 없는 공허한 집이 느껴졌다. 준호는 돌아와서도 한참을 울었다. 준호는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미루어두었던 슬픈 감정들에 싸였다. 아빠가 알려준 사랑보다도 아빠를 잃은 아픔이 더 크게 느껴졌다.  


준호가 울고있자, 엄마가 울고있는 준호를 보고 놀라 달려왔다.  


“무슨 일이야, 준호야. 왜 울어?”


준호는 엄마 품 속으로 파고 들어가 더 크게 울기 시작했다.


“아빠가 보고싶어.”


평소라면 안아주었을 엄마는 울지 않기 위해 얼굴을 가렸다. 그리고는 자신을 안고있는 준호의 팔을 잡아 떼어놓으려 했다. 준호는 엄마의 팔을 놓으려는 시도에도 엄마를 꽉 붙잡고는 말했다. 


“아빠가 울어도 된댔어. 실컷 울어도 된대.”


뜻밖의 준호의 말에 엄마 또한 여태까지 참아왔던 눈물을 터져버렸다. 준호의 눈물은 진정한 애도의 시작을 알렸다. 드디어 준호와 엄마의 멈춰있던 애도를 향한 초침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준호와 엄마는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 머리를 맞댄 채로 그렇게 한참을 함께 울었다.


준호의 말이 엄마로 하여금 슬픔의 파도로 몸을 내맡기도록 만들었다. 엄마는 그 높은 파도에 휩쓸려갈까 걱정했지만 준호의 말대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슬픔이라는 포장지를 벗겨내면 사랑이라는 선물이 담겨있었다. 눈물은 빛을 내며 얼굴에서 흘러내렸고, 준호와 엄마에게 상실의 치유제가 되어 아무리 크게 넘치는 파도 속에서도 두 발로 딛고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성장한 준호


준호는 많은 날, 많은 눈물을 흘렸다. 눈물을 많이 흘릴수록 나약한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는 어른들의 걱정과는 반대로 눈물은 준호를 더 강한 아이로 만들어주었다. 눈물을 흘릴수록 준호가 레고를 가지고 노는 시간도 줄어들었다. 많은 것들이 준호의 마음에 남아있었다. 아빠에게 하지 못한 말들, 좀 더 함께 시간을 보냈어야 했다는 후회, 준호가 좀 더 컸다면 아빠와 작별인사를 나눌 수 있지 않았을까하는 못다한 상상, 많은 것들이 엉켜있었다. 하지만 준호는 아빠의 사랑을 더 기억하기로 다짐했다. 


아빠가 알려준대로 사랑은 무엇보다 강한 거니까.


아빠를 더 이상 안을 수는 없지만, 아빠가 있었다면 준호에게 뭐라고 얘기해주었을 지는 알았다. 아빠는 분명 다시 웃으며 사랑하는 삶을 살기를 바랐을 것이다. 준호는 아빠에게서 받은 사랑을 준호가 하는 모든 행동, 준호를 이루는 모든 것에 녹였다. 아빠는 준호 안에 있었다. 아빠가 준호 안에 살아있으므로 알 수 있었다. 


아빠가 얘기했던 것처럼 슬플 때는 슬프다고, 누군가의 위로가 필요할 때에는 엄마에게 도움을 청하기도 했다. 엄마와 단 둘이 있을 때, 종종 아빠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 주로 아빠와의 즐거웠을 때에 관한 이야기였다. 아빠의 빈 자리보다 아빠가 사랑으로 채워주었던 기억들을 택했다. 준호는 엄마에게도 사랑한다는 말도 더 자주 표현했다. 아빠가 엄마에게 그랬던 것처럼. (앞에서 보여주어야 하지않을까) 준호 안에 녹아있는 아빠의 모습처럼 그렇게 했다.


준호의 일상은 슬픔을 받아들이면서 서서히 빛을 되찾아가기 시작했다. 준호는 언제나 아빠에 대한 기억을 간직하기 위해 엄마에게 아빠와 닮은 레고 조각을 열쇠고리로 만들어달라고 했다. 준호의 책가방에는 이제 아빠를 닮은 레고 열쇠고리가 달려있다. 친구들에게도 왜 그 동안 학교에 나가지 못했는 지 얘기해주었다. 준호의 세상이 변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준호의 세상은 아빠가 없는 세상으로 변해있었지만, 준호는 어디서나 아빠를 마주쳤다. 맑은 하늘을 볼 때, 아빠가 찍었던 사진을 떠올렸고, 누군가 방구를 꼈을 때, 곰탱이 뿡뿡이 대장이라는 엄마가 지어준 별명을 떠올렸다. 아빠가 좋아하던 영화가 티비에 나올 때, 아빠가 좋아하던 맛집을 지나칠 때, 아빠에 대한 기억은 준호가 가는 곳곳에 있었다. 


준호는 엄마에게 아빠의 작업실 방에 있는 물건들을 잘 볼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더 이상 준호도, 엄마도 아빠의 물건들이 슬픔의 파도에 휩쓸려가지 않을 것임을 알았다. 


슬픔의 껍질을 벗으면


울고 또 울며 눈물은 엄마에게 남편의 물건을 마주할 수 있는 용기를 주었다. 보면 눈물만 나는, 상처뿐인 물건들이라고만 생각했던 것들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시퍼렇게만 보이던 집안은 점점 다시 원래의 색깔을 되찾아가며 생기를 얻고있었다. 엄마는 잠궈놓았던 남편의 작업실 문을 열었다.


다시 눈물이 났다. 하지만 이번엔 조금 다른 눈물이었다. 슬픔의 껍질을 벗은 사랑이었다. 슬픔의 허물을 벗겨낸 사랑의 모습을 한 눈물이었다.


엄마는 눈에 보이지 않도록 감춰두었던 물건들을 준호가 언제든지 볼 수 있도록 꺼내어 잘 볼 수 있는 곳에 두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엄마는 미리 주문해둔 유리 진열장에 그렇게 물건들을 하나씩 채워넣었다. 아빠가 아끼던 레고 장난감들, 아빠의 개성이라며 자주 쓰던 녹색 힙한 이장님 모자, 아빠가 쓴 동화책들. 아빠에게 의미있던 물건들로 진열장을 채웠다. 


엄마는 남편없이는 행복했던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행복하지 않은 현재의 삶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만 한다고 자신에게 수없이 얘기해왔었다. 하지만 남편의 물건들을 유리 진열장에 하나씩 정리하며 아빠가 없는 삶을 받아들이면서도 아빠와의 추억들을 통해 다시 행복해질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정리를 하던 중, 아빠의 핸드폰을 발견했다. 엄마는 들여다본 적이 없었다. 엄마는 남편의 핸드폰을 켜고 가장 먼저 사진이 담겨져있는 앨범을 열어보았다. 앨범에는 준호와 엄마의 사진으로 가득했다. 웃기다면서, 귀엽다면서 평소에 남편이 찍은 사진들이 한 가득이었다. 


주말에 엄마와 준호가 함께 소파에서 낮잠에 빠져 입을 벌리며 자고있는 사진, 남편이 처음으로 시도해본 맛없는 음식을 맛보고 놀라는 척을 해주는 사진, 산책을 나가 만난 귀여운 강아지를 발견하여 좋아하는 표정의 사진, 심지어 피곤해서 침을 흘리고 자는 모습까지 있었다. 엄마는 한참이나 사진을 들여다 보았다. 가족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이 느껴지는 사진들이었다. 그리고 좋아하는 걸그룹 시스타의 사진도 있었다. 엄마는 바로 지워버렸


엄마는 항상 화장과 옷이 완벽할 때만 사진을 찍고싶어 했다. 하지만 남편은 엄마의 완벽하지 않은 모습도 항상 완벽하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 사람이었다. 엄마는 그런 남편의 말이 실없이 그냥 하는 말들 중 하나라고 생각했지만, 사진에는 그런 남편의 진심이 담겨져있었다. 엄마에게 남편은 언제나 세상을 사랑이 가득한 곳으로 바라보는 어린 아이같은 특이한 사람이었다.연애때는 그런 모습이 귀여워 반했었다.  


또 눈물이 엄마의 시야를 가렸다. 하지만 엄마에게 한 가지 사실은 분명했다. 더 이상 남편과의 추억을 다시 꺼내어보고, 남편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두렵지않아졌다. 남편의 추억과 사랑을 통해 남편이 없는 곳에서도 새로운 삶을 받아들이며 살 준비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오리라.


남편을 사랑한만큼 슬픔의 몸집은 거대했다. 엄마는 슬픔을 이겨내는 것이라고, 이겨내야만 한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슬픔은 이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온몸으로 느끼고 기어이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준호와 엄마는 이제 언제든지 함께 남편에 관한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아직도 슬픔은 종종 고통을 동반하는 것이었지만,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았다. 슬픔의 수면 아래에서 수영을 하다보면, 잠식되는 일은 없었다. 그 덕에 슬픔 때문에 행복했던 과거를 묻어두는 짓은 이제 더 이상 하지 않을 수 있었다.


준호와 엄마는 더 이상 아빠와의 이야기를 숨겨두지 않았다. 마음껏 자신 안에 있는 감정과 생각들을 표현했다. 슬플 때는 슬프다고, 보고싶다고, 그립다고 말로 마음을 표현했다. 아빠가 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은 변치않는다. 아빠가 없다는 사실에 마음이 아프다는 것도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둘은 이제 아빠와의 행복했던 추억들에 대해 얘기를 한다. 


아빠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떠올리거나, 이럴 때 아빠라면 어떻게 말했을 지, 어떻게 행동했을 지를 상상하거나 예전의 추억을 가져오며 슬픔의 자리를 사랑에게 내주었다. 상실감의 고통과 그리움의 슬픔은 아빠가 남긴 사랑을 통해 조금씩 치유되고 있었다.


준호는 아빠가 얼마나 크게 방구를 쌌는 지를 얘기해주었다. 아빠 방구소리를 재현하며 냄새도 얼마나 심했던 지를 마치 지금 그 냄새를 맡을 수 있는 것처럼 얼굴을 찌푸리며 코를 손으로 막아 숨을 쉬지 않았다. 아빠가 해주었던 재밌는 이야기, 아빠가 좋아하는 맛있는 요리, 함께 웃었던 날들의 이야기들을 해주었다.


엄마는 준호에게서 남편의 모습을 발견하기도 했다. 때로는 아빠가 옆에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 지를 생각하며 그렁그렁한 눈물을 보이며 말하기도 했다. 갑작스레 몰려오는 슬픔의 파도에 저항하지 않고, 그 속에서 유유히 헤엄쳤다.


엄마는 좀처럼 들어가지 않던 침실에도 들어가보았다. 남편이 눕던 자리에 손을 올려보았다. 침대의 보드라운 촉감이 느껴지고, 따뜻하게 미소짓던 남편의 모습이 떠올랐다. 예전처럼 몸을 뉘어보았다. 차갑게만 느껴지던 침실에서 남편의 따뜻했던 온기가 느껴지는 듯 했다. 엄마는 남편의 빈 공간보다 아빠가 나누어준 사랑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었다.

엄마가 오늘 준호에게 물었다. “준호야, 아빠가 있는 곳으로 함께 가볼래?”
 

동화책의 비밀


준호는 아빠의 물건들을 정리하고 있는 엄마에게 자신이 찾은 아빠의 동화책을 내밀었다.


“아빠가 나 어렸을 때 읽어주던 동화책이야. 특히 이거 엄청 자주 읽어줬어.”


준호는 자신이 건넨 책을 보며 엄마의 얼굴이 밝아지는 것을 보았다. 


“준호야, 너 이 동화책에 대한 비밀 알아?”


“무슨 비밀?”


“아빠가 아주 어렸을 때, 여동생을 잃었대.”


“몰랐어. 그런 얘기는 해준 적이 없는데.”


“여동생 몸이 아파서. 여동생을 잃고나서는 방에서 잘 나오지도 않고, 밥도 안먹었대. 그러더니 어느 겨울 날부터 조금씩 나아졌대. 그 이유가 뭔지 알아?”


준호가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바로 이 책 때문이었대. 그 날부터 아빠는 동화책 작가가 되는 걸 꿈꿨대. 아빠는 동화책을 쓰면서 위로를 받았고, 자신이 만든 동화책으로 세상의 모든 아이들에게 자기처럼 상처받은 아이들이 위로받길 바란거야.”


엄마는 퇴근하고 준호가 건네준 아빠가 쓴 동화책을 다시 읽어보았다. 동화책의 내용은 마치 준호와 엄마를 위해 쓴 내용같았다. 남편의 말대로 사랑은 죽음보다 강했다.


남편은 부재하지만, 남편이 남긴 사랑은 영원했다. 엄마에게는 남편이 남긴 친절함, 남편에게서 배운 삶에 대한 긍정이 엄마 안에 있었다. 엄마 안에 남편이 있었다. 엄마는 자신 안에 있는 남편의 모습이 이제서야 보이기 시작했다. 


엄마는 준호 안에 녹아있는 남편의 모습도 발견했다. 슬픔이 갑작스레 파도칠 때, 준호는 자신의 어깨를 빌려주었다. 연애 때 준호의 아빠가 하던 행동이었다. 남편은 본인이 가장 힘들 때에도 자신의 어깨만큼은 무료라고 장난끼있는 목소리로 빌려주곤 했다. 


엄마는 자신에게 녹아있는 남편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준호에게 녹아있는 남편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바라보며 생각했다. 분명 남편은 자신이 준호를 위해 웃으며 살아가는 삶을 희망 했으리라. 그런 삶을 함께 살았으며, 앞으로도 그런 삶을 지속하라고 말했으리라.


다시 찾아온 겨울 


시간은 흘러 다시 겨울이 되었다. 뉴스에 따르면 드디어 바로 내일이 첫눈이 내리는 날이었다. 준호는 날이 추워지면서 간절히 눈이 내리는 날만을 기다렸고, 바로 그 날이 다가왔다. 내일을 위해 준호는 만반의 준비를 하였다. 너무 깊게 잠들지도 몰라 알람까지 맞추어놓기도 하고, 엄마에게도 일어날 수 있도록 부탁했다. 준호는 다음 날을 기약하며 잠들었다. 


잠든 준호의 꿈속에서 눈송이 하나가 손바닥 안으로 안착했고, 준호가 그런 눈송이를 눈 가까이에 대고 말을 했다. 


“안녕, 오랜만이야. 다시 만나서 반가워.”


그러자 꿈 속의 눈송이가 대답해주었다. 


“내가 뭐랬어. 우리 다시 만날거라고 했지? 내 말이 맞지?”


준호가 아는 눈사람다운 대답이었다. 


꿈을 꾸는 준호는 미소를 지으며 뒤척였다. 그리고는 좀 더 따뜻함을 느끼려는 것인지 베개에 손을 넣었다. 


준호가 기대하던 새벽 아침이 찾아왔다. 준호는 창을 통해 온 세상이 새하얗게 뒤덮인 모습을 발견하고는 졸린 눈을 비비며 허겁지겁 잠옷바람으로 엄마 몰래 아파트 옥상으로 뛰어나와 눈을 구경하고 있었다. 눈송이 하나가 손바닥 안으로 사뿐히 안착했다. 꿈속에서 그랬던 것 처럼 준호는 손바닥 위 눈송이에게 인사했다. 


옥상의 세계는 마치 세상의 모든 소음이 눈에 덮여 음소거가 된 듯 고요했다. 눈은 차 위에도, 차가운 회색 아스팔트 바닥 위에도, 작은 집들 위에도 모든 사물들을 새하얗고 포근하게 두툼한 이불처럼 덮어주고 있었다. 찬 새벽 공기에도 불구하고 새 하얀 눈과 인사를 나눈 준호는 이상하게도 더 이상 추위를 느끼지 않았다. 그저 눈 내리는 하늘에 손을 뻗으며 미소짓고 있었다.  


올해 첫눈을 보며 준호의 눈사람에 대한 기억들은 사라져있었다. 성숙해진 준호는 더 이상 눈사람들과 대화할 수 없었다. 눈사람과의 기억들은 사라졌지만, 그 기억들은 이미 준호 마음 깊은 곳에 사랑을 새겼다. 그 사랑이 준호로 하여금 눈이 내리는 날을 기다리도록 만들었고, 꿈 속에서 눈송이 친구와 대화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었다. 


준호는 다시 찾아온 이번 겨울, 학교 운동장에 젤리 눈사람을 닮은 머리에 새싹을 달고있는 새로운 작은 눈사람 친구도 만들었다.  그 눈사람 친구를 꼬옥 안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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