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ookles Blog Dec 11. 2022

술 권하는 사회 현진건 지음

북리뷰


결혼하자마자 일본 유학을 떠나 칠팔 년을 떠나 있던 남편이 돌아왔지만 술에 취해 늦은 귀가가 잦은 어느 날, 바느질하다 찔려 피나는 손가락에 설움이 복받치는 아내이다. 누구보다 많이 배워 부자가 될 줄 알았건만 무슨 걱정이 있는지 매일 술에 취해오고 눈물에 젖어 잠이 든다.  


남편이 오지 않았는데 잠결에 남편이 온 듯하여 이리저리 궁리하는 아내의 모습이 가엽고도 궁상맞다. 누가 이리 술을 권하였나 물었더니 조선사회가 술을 권한다고 한다.  


“여기 회를 하나 꾸민다고 합시다. 거기 모이는 사람 놈치고, 처음은 민족을 위하느니 사회를 위하느니 그리는데, 제 목숨을 바쳐도 아깝지 않다 아니하는 놈이 하나도 없지. 하다가 단 이틀이 못되어, 단 이틀이 못되어.....”  


“되지 못한 명예 싸움, 쓸데없는 지위 다툼질 내가 옳으니, 네가 그리니, 내 권리가 많으니, 네 권리가 적으니.... 밤낮으로 서로 찢고 뜯고 하지, 그러니 무슨 일이 되겠소. 무슨 사업을 하겠소? 회뿐이 아니지, 회사이고 조합이고.... 우리 조선 놈들이 조직한 사회는 다 그 조각이지. 이런 사회에서 무슨 일을 한단 말이오”  


술을 먹고 싶어 먹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술을 먹게 만든다는 남편의 말을 못 알아듣는 아내는 “그 몹쓸 사회가 왜 술을 권하는고!” 라 말하며 소설은 끝을 맺는다.  


술 권하는 사회의 모티브는 작가의 형인 현정건이다.  


현정건은 한국의 독립운동가이자 교육자이다. 현진건의 반일 사상에 많은 영향을 끼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정건은 결혼한 지 3일 만에 상해로 독립운동을 떠나 7 년간 머물렀다고 한다. 현정건은 야학선생으로 있을 때 마음에 둔 학생인 현계옥을 사랑하고 애국동지로 함께 일을 도모했 다고 한다.  


술 권하는 사회는 아마도 현진건이 자신의 형과 결혼하자마자 버리듯 두고 떠난 형수에게 다시 돌아온 형이 대화가 되지 않는 상황을 그린 작 품이 아닌가 싶다. 현정건의 아내는 명목뿐이 배우자로 같이 산 세월은 수개 월에 지나지 않지만, 남편의 사후 2 개월 만에 음독자살하고 시동생인 현진건을 비난하고 남편과 합장해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급변하던 시기에 신문학을 접하고 돌아온 많은 유학생들이 집에서 정해준 배움이 적은 배우자들과 불화를 겪었다. 대화를 할 상대가 아예 없던 것이 아니 라, 주변에 신 여성들을 많이 접할 수 있었기 때문에 본처를 버리고 떠나는 경우도 많았다.  


술 권하는 사회에서의 아내는 그런 아내이다. 사회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그저 남편이 안타깝고 제일 잘났다고 생각하는, 그러나 남편과 아내는 평행선을 달릴 뿐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하기 때문에 일제의 수탈이나, 너무나도 괴로운 식민지의 상황으로 술을 마시는 줄 알았는데 단합된 마음으로 일제를 타도하려는 사람들은 간데없고, 지위를 다투고, 서로의 잘잘못을 따지고, 권리를 주장하고, 서로 헐뜯고 비난하는 사람들을 보니 독립운동은커녕 아무런 일도 도모할 수가 없다. 그러니 우리 조선 놈들은...라고 말하는 자기비판까지 나오게 된다. “내가 어리석은 놈이었지” 죽을 애를 써도 안되니 이 사회에서 할 것은 주정꾼 노릇밖에 없다고 한 것이다.  


수십 년이 지났어도 이 시대의 지식인들도 같은 이유로 술을 마신다. 사회는 더 붕괴되고 물질만능주의와 유전무죄, 약육강식의 사회가 되었다. 남자는 여자를 혐오하고 여자는 남자를 혐오하고, 젊은 세대는 노인들을 혐오하고, 노인 세대는 젊은 세대를 혐오한다.  


성소수자를 혐오하고, 기독교인을 혐오하고, 이슬람인을 혐오하고, 가난한 사람을 혐오하고, 장애인을 혐오한다. 내 공을 가로채려는 상사들이 회사에 가득하고, 상사 말을 우습게 여기는 사원들도 서로를 혐오한다.  

이러니 술을 마시고 주정꾼이 된다. 조선사회를 욕하던 것이 헬 조선으로 바뀐 것 밖에 없다. 우리 사회 내에서 불러일으키는 불합리와 부조리가 술을 권하는 것이다.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이 책에서는 그나마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나를 맹목적으로 믿고 사랑하는 아내라는 존재가 있다. 현대인들에게는 그런 아내가 없다. 아직 오지 않은 남편을 기다리다 잠시 조는 사이에 들린 문소리가 혹시라도 남편이 들어온 것이 아닐까 하며 노심초사하며, 남편이 잠결에 흘린 눈물을 너무나도 동정하며 자신이 이해하지도 못하는 남편의 상황을 무조건적으로 안타까워해주는 아내 말이다.  

하지만 남편은 이 아내의 소중함을 알지 못한다. 아무리 말해도 알아듣지 못하는 아내를 보며 너한테 위로를 얻으려는 자신이 바보라고 말할 때는 사방이 검은 벽으로 막혀 숨 쉴 구멍도 없이 조여드는 기분이다. 한 방 향으로 계속 손을 뻗는데도 서로 닿지 않는 부부간의 빗나간 핀트가 답답하고 안타깝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