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ookles Blog Dec 11. 2022

술꾼 최인호 지음

북리뷰

               

동네 술집에는 오늘도 기묘한 아이가 나타났다. 


술집에 국승현이라는 자신의 아버지를 찾으러 왔고 지금 어머니가 위독하다고 한다. 술집에서 술을 마시는 몇몇 어른들은 이 어린아이에게 술을 권한다. (아버지의 친구들인가?) 말로는 한사코 거절하던 아이는 아무도 모르게 술잔을 가져가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소주를 마셔버린다. 그리곤 자신의 아버지는 국승현이고, 술꾼이지만 대단한 사람들이고, 어머니는 죽어간다고 말한다. 


술집에 있던 사람들은 네 아버지는 이미 다른 술집으로 갔다며 평양댁으로 가보라고 한다. 다음 술집으로 찾아간 소년은 또다시 아버지를 찾는다, 여기서도 아버지는 다음 술집으로 가고 없지만, 소년은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죽어가는 어머니에 대해 이야기한 다음 술을 얻어 마시고 다음 술집으로 향한다. 


저녁이 끝나도록 대여섯 군데의 술집을 돌면서 같은 행동을 한다. 술에 취한 아이는 예전에 나무 깎는 직업을 가진 사내를 따라 술을 얻어먹으러 갔다가 목을 졸린 경험이 있다. 목을 조르는 사내를 깨물고 가까스로 탈출한 이후 오늘 다시 술집에서 사내와 조우하는 것이다. 오늘도 사내는 칼로 소년을 위협하지만 소년은 또 한 번 위기를 모면한다. 


추위는 소년에게 익숙하다. 길에서 취객의 돈을 훔쳐 아이는 다시 술집으로 향한다. 술을 사마신 아이는 집으로 향한다. 그곳은 고아원이었다. 아이는 술에 취해 내일은 아버지를 찾을 수 있을 거라 단정하며 고아원으로 돌아간다. 


감상평
소년이 술집을 전전하는 첫 부분의 소년의 거짓말은 너무나 자연스러워 소년이 술꾼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다만 소년의 반복되는 일상을 이미 겪어오고 있는 술집에 손님으로 온 어른들은 그의 아버지가 다른 술집으로 이동했다고 농담을 한다. 그리고 나선 어른들은 술에 취해 신세한탄을 한다. 


술꾼들은 이제 너무 취해서 한 사람 한 사람 집을 저주하고, 마누랄 저주하고, 맏아들을 둘째 아들을 저주하고, 생활을, 미래에 대한 희망을, 원수 놈의 월급을, 도대체가 살아가는 그 자체를, 그리고 자기 자신을 저주하기 시작했다. 


보통의 경우라면 어른들의 세상사가 더 괴롭고 힘들기 마련이다. 그러나 고아인 소년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들은 마누라가 있고, 맏아들이 있고, 둘째 아들이 있고, 미래를 살았고, 월급을 받았고, 살아간 세월이 있고, 그 모든 것이 자기 자신의 책임이다. 고아 소년은 부모 가 없는 것만으로도 그들보다 암울하고 괴로운 인생살이이다. 


예전에 나무인형을 깎는 직업을 가진 술꾼을 만난 적이 있다. 그는 소년을 좋아하지 않는다 는 것을 소년은 알고 있다. 열린 문틈으로 내다 뵈는 한낮의 중유처럼 뜨거운 땡볕, 미칠 듯한 땀냄새들로 하여 무언가 숨이 막히고 막연한 적의가 끓어오르던 그 여름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그 사내가 그때 아이에게 낮은 목소리로 친근하게, 꼬마야 저 칼 좀 떼어온, 했다고 해도 아이는 그 사내가 자기를 좋아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아이를 바라볼 때마다 사내의 눈에선 노골적인 경멸이 번득이었다. 얼마 전 아이가 길을 지나가고 있을 때, 사내가 그의 일터에서 고개를 내밀고, 작은 목소리로 아이를 유인했다. 그의 손엔 술병이 들려 있었고 그는 벌써 흠뻑 취해 있었다. “얘. 우리 한잔하지 않으련. 해장술 말이다.” 


아이가 해죽이 웃으며 방심한 채 그 움집에 막 들어섰을 때였다. 갑자기 한 팔만 남은 사내의 왼손이 아이의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사내의 왼손이 무서운 기세로 계속 목을 졸라오자, 아이는 혼신을 다해서 사내의 왼손을 이빨로 물어뜯었다. 그리고 사내의 손이 느슨해진 틈을 타서 큰길로 뛰쳐나갔는데, 그때 아이는 자기도 모르게 바보처럼 울고 있었던 것이다. 


소년은 이미 중독이다. 아이는 사내가 자기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지만 해장술이 간절해서 사내의 움막으로 들어 선 것이다. 사내가 아이의 목을 조르기 시작하고, 소년은 가까스로 위기를 모면한다. 그 후 오늘 다시 술집에서 그 사내와 조우한 것이다. 


사내는 짖었다.
“내 널 편하게 죽여주마.”
아이는 무어라고 항거하려 했으나 혀를 놀리는 것이 쓸데없는 짓임을 알았다. “꼼짝 마라, 이 꼬마야.”
그의 왼손 안에서 번쩍이는 나이프는 그 아이의 목을 노리고 있었다. 아이는 목 근처에 가벼운 통증이 오는 것을 느끼었고 그는 안이한 생명의 탄식 소리를 들었다.


오늘도 소년을 죽이려고 한 이 사내는 본능적으로 안다. 이 소년이 살고 싶지 않다는 것을,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그 불행을 잊기 위해 술을 마신다는 것을... “편하게 죽여 주마”는 죽여서 편하게 해 주겠다는 뜻이다. 


저 어린 나이에 술에 취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소년을 애달파하는 것이다. 어쩌면 그도 같은 길을 걸어왔는지도 모른다. 


소년에게는 추위도 익숙하고, 외로움도 익숙하다. 거짓말도 익숙하고, 술도 익숙하고 사람들의 경멸 어린 시선도, 자신을 가지고 놀고 있는 어른들도 익숙하다. 술집을 전전하며 눈치만 늘었고, 어지간해서는 술도 취하지 않는다. 자신의 주량도 이제 는 알고 있다. 견디기 힘든 현실을 어른들은 술로 달랜다지만, 소년이 나이가 어리 다고 해서 술로라도 달래지 못한다면 더 마음 아픈 현실일 것이다. 


소년의 취기가 나에게로 옮겨 붙은 것 같다. 어지러우면서 슬프지만 나이질 기미 없는 현실은 내일 또다시 반복될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술 권하는 사회 현진건 지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