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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키호테 같은 작가에게 필요한 것은 '마감력'

브런치 연재로 써야만 하는 환경 설정하기

by 북레터


오늘은 고3인 둘째 여름 방학식이에요. 정말 오랜만에 큰아들 포함 완전체로 삼겹살, 차돌박이 외식하고 왔어요. 여름방학은 순삭 지나갈 것이 뻔하고, 수시 원서 시즌이 코 앞인데 큰아이 입시를 경험해 봐서 그런지 하나도 걱정이 안 됩니다. 그보다 브런치 연재가 있는 요일에 외식한다는 것이 저에겐 더 놀라운 일이네요.

작년 <www.판데모니움. net> 소설 연재를 시작한 5월 이 후 저의 일주일은 수요일 연재일에 맞춰 정신없이 흘러갔어요. 브런치라는 낯선 공간에, 도대체 아무도 읽어줄 거 같지 않은 다크한 미스터리 소설 첫 화를 싣기까지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연재소설만 쓰는 게 아니라 작년에는 일요일 하루 빼고 매일 북리뷰를 네이버 블로그에 올리고 있어 잠자는 시간 빼고 읽고 쓰기, 본업인 디베이트로 꽉꽉 채워진 숨돌릴 틈 없는 시간이었습니다.


1화인 <제로데이 공격>에 첫 댓글을 달아주었던 이웃 작가님들, 정말 생판 모르는 초보 작가의 소설에 따뜻한 격려 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했어요. 저도 틈틈 이웃 작가님들 글을 읽고 공감도 누르고 댓글도 달고 했는데 그건 정말 순수한 호기심에 의한 탐방이었구요. 브런치 글들이 요일별로 최신순/응원순/라이킷에 따라 상위에 랭크된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습니다. 와~ 상위에 랭크된 이웃 작가님들 글은 라이킷도 댓글도 장난이 아니고, 브런치에도 핵인싸 작가님들이 있다는 것을 3주 연재 즈음에 알게 되었어요. 제 소설은 브런치 맨 밑바닥에 깔려, 보이지도 않고 당연 조회 수도 미미한 완전 묻히는 글이었습니다. 미리 써둔 분량이 약 4회분이어서 고민 없이 수요일마다 발행을 누르긴 했는데 밑천이 거의 떨어져 갈 무렵, 존재감 없는 연재를 계속해야 하는지 살짝 고민이 되었습니다.

업로드와 동시에 바로 독자의 반응을 실감할 수 있는 웹소설이 얼마나 힘든 작업인지 알겠더군요. 하지만 반응을 얻지 못해도 기왕 시작한 연재, ‘어찌 되었든 끝을 보자’를 목표로 삼았습니다. 협업시스템인 방송 구성작가 일을 하며 깨달은 저의 딱 한 가지 장점이 칼처럼 데드라인을 맞추는 원고 전송이었습니다. 그래서 연재를 시작할 때 여하튼 이 이야기 끝은 보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브런치 북에 소설 쓰기! 요일 발행의 약속, <연재의 강제성>이 글을 쓸 수 없는 핑곗거리를 999개는 생각해 낼 수 있는 초보 작가들에게 정말 필요한 장치라고 생각합니다. 단 한 명이라도 내 소설을 읽어주는 독자님이 있다면 연재를 이어갈 수 있는 열정과 책임감, 대다수 작가님의 마음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수백 번 스토리를 구상하고 시놉을 요리조리 수정했다 해도 세상에 펼치지 않으면 그것은 끝내 미완의 허구일 뿐입니다. 사실 저의 도전은 아주 무모했어요. 장편 소설을 이전에 써본 적도, 연재해 본 적도 없는 초보 작가가 브런치 매거진도 아닌 연재를 무턱대고 시작했고, 이미 써둔 분량도 4회가 다였습니다. 대책도 없이 미친 거 아냐? 돌이켜 생각해 보면 황당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한 번뿐인 인생, ‘한 번도 미쳐보지 않은 삶은 가짜’라는 것이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를 읽고 얻은 깨달음입니다. 1화 연재 버튼을 누르는 순간, 작품 완성을 향해 달려갈 수밖에 없는 환경을 스스로 설정한 것이었고, 그 선택을 저는 24년 가장 잘한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연재를 시작하지 않았다면 ‘마감’에 대한 압박이 없기에 긴 장편을 지금까지도 쓰고 고치고 그러다 작은 디테일이 마음에 들지 않아 구겨버리고 있을 것이 뻔하거든요.

브런치에 소설을 연재해도 괜찮은 이유, 작가에게 곶감보다 무서운 ‘마감력’이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모든 핑계와 이유를 떨치고, 마음에 품은 소설이 있다면 연재를 시작해 보세요. 조회 수도 라이킷도 미미할지라도 이제 막 연재를 시작한 작가들에게 브런치는 깜짝 서프라이즈를 안겨주는 꽤 흥미진진한 공간입니다.



<www.판데모니움. net>의 5화였던 '유령의 메시지'가 브런치 상단 글에 뜬금 올라가기도 하고, 9화 '엄마가 떠난 시간’은 브런치 밖에서 조회 수가 터져 독자님들이 역유입되기도 했습니다. 돈키호테처럼 알 수 없는 시간을 향해 내달려보지 않았다면 모두 얻을 수 없는 경험이었습니다.

한 가지 팁을 드리자면 비교는 금물! 원래 글쓰기는 묵묵히 감내해야 하는 외로운 작업. 읽는 이가 없어도, 라이킷이 없어도!! 약속한 시간에 꾸준히 발행하면 마음에 품었던 미완의 작품이 어느새 현실이 되어 내 손에 쥐어져 있을 거예요. 그때부터가 시작입니다. 반죽이라도 있어야 빵을 만들 듯이 그때부터 내가 쓴 글과 어울리는 공모전을 찾아 글을 다듬거나, 출판사에 투고하거나 뭐가 됐든 시도가 가능합니다. 브런치 소설 연재를 망설이는 초보 작가님이 계신다면, 돈키호테처럼 정해지지 않은 내일을 향해 내달려보시길!! 마감력이 소설을 완성하는 강한 추진력이 됩니다. 그리고 소설 연재는 뜨거운 여름이 정말 최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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