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공지도 없이 연재를 쉬어 죄송합니다. 교회 청소년부서 수련회를 다녀왔는데, 아주 작은 사고가 있었어요. 요새 수박 값 실화인가요? 한 통에 4만 7천 원이나 하는 수박을 물놀이하는 청소년들 먹인다고 수영장 근처로 나르다 장렬히 넘어지고 말았어요. 그 순간 금수박은 지켜!! 간절함으로 슬라이딩하다 왼쪽 무릎은 다 까지고, 오른쪽 발목은 돌아가서 일주일 내내 절뚝거리며 지냈습니다. 지금은 많이 좋아졌어요~
오늘은 나를 한없이 쪼그라들게 하고, 쓰던 글을 쓰레기통으로 직행하게 하는 ‘내 글의 악플러’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20대 청춘의 시절, 저의 꿈은 소설가였어요. 그런데 집안 형편이 좋지 못했습니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가정의 생계를 책임지면서 나중에 생활이 안정되면 내 글을 쓸 수 있을 거라 막연히 생각했어요. 당시 저는 구성작가 일을 하고 있었는데 방송국은 보통 봄 편성, 가을 편성 이렇게 프로그램을 대대적으로 손보는 시즌이 있어요. 그때 프로그램을 맡지 못하면 바로 <백수>가 되는 것이기에 어떤 프로그램이든 맡으면 열심히, 아니 잘해야 했습니다. 그렇게 한 시즌을 소화하고 또 다음 시즌 프로그램을 맡아 일하다 보니 1년, 3년, 5년……. 시간이 너무 빠르게 흘렀고 정작 내 글을 쓸 여유는 생기지 않았어요.
섭외하고 방송 대본을 쓰면서 참 다양한 분들과 만남, 인터뷰했습니다. 그분들은 모두 저를 '작가'라고 불렀지만 저는 그 말이 이상하게 부끄러워 명함조차 가지고 다니지 않았습니다. 제 책상 서랍 속에는 프로그램 때마다 새로 만든 명함들이 박스째 나뒹굴었죠. 내가 하는 일은 '전지적 잡가'와 같은 일인데 왜 나를 ‘작가’라고 부를까? 그때 저는 '작가'에 대해 엄청난 환상, 경외심을 갖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책을 통해, 혹은 인터뷰를 통해 제가 만난 작가들은 한결같이 대단한 분들이었습니다. 지식의 깊이와 넓이를 헤아릴 수 없고, 놀라운 몰입감을 주는 문체. 글 안에 담고 있는 주제들은 어쩌면 그렇게 통찰력이 있는지 열심히 세상에 대해 더 알고 공부해서 나도 작가와 같은 통찰력을 가지면 그때 글을 쓸 자격이 주어진다는 생각을 했어요.
적어도 ‘작가’라면 이렇게 쓰지는 않을 텐데~ 하는 ‘자기 검열’ 때문에 많은 작품을 쓰지도 못하고 제가 쓴 작품은 컴퓨터 안에서 대부분 삭제되었습니다. 지금 끄적인 글은 그냥 '쓰레기'이다!!! 많은 작가님이 경험하는 ‘내 글 구려 병’ 증세가 심각했던 거죠. ㅎㅎ
마음에 설정해 둔 작가에 대한 환상으로 무려 20년간 저의 글은 앞으로 나아가지도 완성되지도 못했습니다. 작가란 적어도 자신의 분야에서만큼은 통달한 자, 그리고 스스로를 갈고닦은 사람이어야 한다는 설정은 항상 저를 <함량 미달>로 생각하게 했습니다. 더 완벽해지고 더 훌륭해졌을 때 작가가 될 수 있다 생각한 거죠. 독서와 삶의 경험이 저의 부족함을 채워줄 것이라 착각했습니다.
언젠가는 훌륭한 사람이 될 것이라는 바람과 달리, 아시죠? 나이가 들어도 대부분의 존재는 늘 함량 미달이라는 것. 남들처럼 깊은 지식을 갖는다는 것 역시 쉽지 않다는 것. 시간이 지나면 완성된 작가가 되리라는 설정 자체가 오류였다는 것을 굉장히 오랜 시간이 지나고 깨달았습니다. 완성된 작가로 시작하겠다는 것은 어쩌면 교만일지도 모릅니다.
서두에서만 빙빙 돌다 원고를 파기시키는 습관을 저는 카카오 브런치 연재를 통해 고쳤습니다. ‘서툴러도, 조금 완성도가 떨어져도 세상 한 귀퉁이에 내 작품이 자리할 판을 깔아주자.’ 생각을 바꾸고 연재를 하는 동안 작가에 대한 정의도, 작품의 완성도에 대한 기준도 참 많이 달라졌습니다.
세상에 다양한 작품이 필요한 이유는, 독자들이 원하는 작품의 주제, 맛과 빛깔도 그만큼 다양하기 때문이라 생각해요. 대단하지 않아도 오직 나만이 쓸 수 있는 이야기를 공감하고 좋아하는 누군가가 꼭 있을 것이란 믿음. 카카오 브런치 연재를 통해 그런 분들과 교감하며 연재를 이어가다 보니 마침내 장편소설을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 저는 완벽한 작가가 되기 위해, 인정받기 위해 글을 쓰지 않습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삶에 주어진 미션. 누군가에게 가서 어떤 쓰임새가 될지, 어떤 삶으로 이어질지 알 수 없기에 글은 저의 것이 아닙니다.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다면 그저 치열하게 쓰는 일만이 남았습니다. 오늘 글쓰기가 망설여지고, 내 글이 한없이 부족하고 초라해 보인다 해도 그냥 쓰시길 권합니다. 내 글의 가장 지독한 악플러, 방해꾼이 사실은 '나'일 수도 있음을 기억하며 그 저항을 넘어서는 글쓰기, 나를 이기는 글쓰기를 이어가길 응원합니다.
-완벽주의자는 미완의 상태를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하지만 발전과 성장은 언제나 이런 중간 과정을 통과하게 되어 있습니다. 완벽주의자는 그가 손대는 일마다 생명을 앗아갑니다. 뭔가가 성숙하도록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 그는 '시간'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가문비나무의 노래-마틴 슐레스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