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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ok diary jenny Jul 22. 2021

[육아 이야기]'왜 학교 안가냐'는 질문에 의연해지기

복지관 공짜 서예수업에서 서예쓰기의 즐거움에 빠지다




집 근처 동네 복지관에 서예 무료수업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쓰는 걸 좋아하는 내게는 너무나도 매력적으로 들린 반가운 소식이었다. 무료 수업이라는 사실이 내 마음을 흔드는 데 크게 작용했다. 하영이가 홈스쿨링을 하면서부터 ‘둘이 같이 할 수 있는 게 뭐 없을까?’ 찾아보던 때였다. 마침 새 시즌 서예 수업 개강을 앞두고 있어서 우리는 반가운 마음으로 신청했다.


그런데 예상하지 못한 난관이 있었다. 복지관 담당직원이 하영이의 상황을 의아하게 생각했다. 하영이를 바라보는 눈빛을 본인도 숨기려고 했지만 실패했다고나 할까. 의심스러운 눈빛의 표정이 역력했다. “아니, 초등학생이 남들 다 가는 학교를 왜 가지 않고 있어요? 안 가는 건가요, 못 가는 건가요?”


이어지는 말에서도 직원의 의아한 마음이 그대로 전해졌다. “어르신 수업이어서 차분한 분위기인데, 애가 가능하겠어요? 거기다 한 시간 반 수업이거든요. 집중은 할 수 있으려나.”, “혹시 과잉행동 뭐 그런 걸로 학교 안 가는거에요? 그러면 좀 곤란한데.” 아이가 함께 한 자리에서 저렇게 못났게 말하는 그 젊은 직원의 남은 인생이 좀 안타까워서 다독여주고 싶었다.


충분히 그런 생각을 할 수는 있다. 아이가 학교를 다니지 않는다고 하면, 그것도 나라에서 정한 의무교육인 초등학교를 다니지 않는다고 하면 저 직원처럼 생각할 수는 있다. 직접 말하진 않아도 ‘아이에게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라는 추측과 의문이 드는 것이다. 아니면 학교 부적응자거나 왕따나 폭행 등의 불이익을 당해서 상처를 입었다고 추측한다.


충분히 그렇게 추측할 수 있다. 그들이 나빠서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니다. 학생이 학교에 다니지 않는다는 게 우리 사는 삶에서 흔하지는 않으니 말이다. 편견이라는 것은 우리의 생각을 강하게 지배하고 있고, 대부분은 우리 사는 방식 너머를 상상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 그럼!


“아, 그런 건 아니에요. 학교에 다니지 않는 건 가족 동의하에 우리 가족의 가치관에 따라  스스로 선택한 거에요.”, “집에서 가깝고 시간 여유도 되니까 아이와 함께 배우고 싶어서 신청하는 겁니다. 우선 며칠 동안 수업참여를 해보면 안 될까요?”, “저희도 이 수업이 마음에 드는지 판단해 봐야 하고, 복지관 측에서 그래도 탐탁지 않다면 나오지 않을게요.”


사실 성인반 수업이었기 때문에 우리가 고집을 피워 다닐 상황은 아니었다. “그럼, 며칠만 나와 보세요. 나중에 다시 결정 내려봅시다.” 여전히 의아스러움이 가득한 직원의 말에 감사 인사를 하고 나왔다. “엄마, 저를 이상한 눈빛으로 보네요. 나처럼 학교에 다니지 않는 아이들은 처음보나 봐요. 근데 서예수업 재미있겠어요.”


결과적으로 일주일 두 번 하영이와 나는 둘만의 데이트를 하는 기분으로 수업에 나가게 되었다. 그 시간에 하성이는 외할머니와 산책도 하고 책도 읽으며 시간을 보내며 협조를 해주었다. 어르신 여섯 명에 내 또래의 성인이 세 명 있었고, 나이 지긋하신 여선생님께서 수업을 담당하고 계셨다.


호방한 성격의 선생님께서는 하영이를 예뻐하셨다. “어떻게 이 어린 아이가 서예에 관심을 가지지? 기특하고도 예뻐라.” 그러면서도 “근데 왜 학교를 안 보내요, 하영엄마?”라며 같은 질문을 계속 하셨다. “음...” 선생님의 칭찬과 격려에 하영이는 자주 기분이 좋아졌다. 그래서인지 칭찬의 양만큼 실력도 나날이 차곡차곡 쌓였다.


다른 선생님들도 신기하다는 눈빛으로 보시며 말씀을 나누어 주셨다. “학교 다니지 않으면 불안하지 않아요? 엄마가 간이 크네. 애가 나중에 사회에 적응 못하면 어쩌려고.”, “똘똘해 보이는데, 공부를 시켜야되지 않아요? 이렇게 놀기만 하면 안 되는데.” 우리 둘만 보면 한 동안 계속 이어지는 선생님들의 질문이었다.


다들 아이를 키우거나 손자손녀가 있는 분들이다 보니 관심이 많으셨다. 그 연세의 어르신들은 학교가 학생에게는 전부라고 생각하며 사셨다. 선생님의 말이 법이라고 생각하고 사신 분들. 집에서 챙겨 오신 간식을 하영이에게 주시며 하시는 말, “학교 가고 싶으면 가고싶다고 꼭 말해야해.”


한 시간 반 수업이 일주일에 두 번이고, 한 달이라는 시간은 금새 지나갔다. 집중을 해서 써야하니 힘이 들긴 하지만, 말할 수 없는 미묘한 매력이 가득한 서예수업에 나는 온전히 빠져버렸다. 더 놀라운 건 하영이의 집중력과 열정이었다. 선생님들 모두 그런 하영이에게 폭풍 칭찬을 해주셨다. 거기다 이건 또 무슨 일인지, 수업 다닌 지 얼마 되지 않아 열린 지역서예대회에서 하영이가 큰상을 받았다.


“어머나, 기특해라. 우리 하영이가 열심히 하기에 대회에 나가보면 좋겠다 싶었지. 경험삼에 나가보면 좋겠다 싶었는데 이렇게 상까지 타다니 대단해.”, “배운 지 얼마 되지 않아 이렇게 잘 쓰는 걸 보니 하영이가 소질이 있네. 기특해라.” 담당 선생님과 동료선생님들의 칭찬에 하영이는 기분이 좋아서 웃음 한가득이었다.


이렇게 뿌듯한 마음으로 다니던 서예수업이 코로나19로 인해 멈춰버렸고, 벌써 2년이 다되어 간다. 올 초에 다시 개설되었지만 다들 불안해서인지 몸을 움츠리셨고, 수업은 금방 재가동되지 않았다. 우리 역시 “코로나가 안정되면 다시 나갈게요.”라고 밖에 할 수 없었다. 많은 것을 막아 버린 코로나 때문에 무기력하고 슬픈 기간을 보내게 되었다.


우리의 서예수업은 우선멈춤 상태가 되었다. 하영이의 당찬 손길을 기다리는 서예도구들은 여전히 정리함에 곱게 놓여있다. 집에서 여러 번 글씨 연습을 했지만 마음이 크게 동하지 않아서 잠정적인 정지상태다. 다시는 손을 대지 않을 확률이 높은 도구들이 얌전히 누워있다.


 지난 해 전국 대회 및 지역 대회에서 7번이나 받은 큰 상들은 책장에 곱게 정리되어 있다. 이제는 더 이상 서예에 관심이 없는 하영이, 그런 하영이의 마음을 존중해주는 나. 우리가 함께했던 서예시간의 추억과 대회에서의 멋진 경험은 하영이의 인생에 즐거움으로 남아 있을 테다. 뭔가에 몰입을 해본 경험은 살아가는 내내 소중한 자산이 되니까.


복지관 그 직원에게 지나가는 길에 인사를 드리러 가야겠다. 그분의 하영이에 대한 의심과 불안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받아준 그 넉넉함(!) 덕분에 추억을 만들 수 있었다. 대회에 나가 상을 받는 만큼의 실력도 쌓았으니 말이다. 홈스쿨링에 대한 사람들의 마음은 여전히 넉넉지 못하지만, 그들의 의아해하는 표정마저 키득거리며 웃어넘기는 하영이는 오늘도 건강히 잘 자라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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