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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ok diary jenny Sep 02. 2021

[픽션14] 전화통화하는 전화광엄마K 이야기

"여보세요", 행복한 24시간 풀타임




선생님, 안녕하세요. 네, 잘 지냈어요? 네, 잘 지냈어요. 오늘은 좀 어땠나요? 뭐, 그냥 그랬어요. 그래도 이렇게 전화해주니까 나는 좋은데요? 좋게 생각해주니 감사합니다, 선생님. 아니에요, 이게 내 일이니까요. 예전에 다른 선생님들은 귀찮아하셨거든요. 아, 그랬군요. 네, 많이 귀찮아하셨죠. 그분들도 이유가 있었겠죠. 맞아요, 제가 싫었을 수도 있고요. 그럴 수도 있죠, 사람이니까요. 맞아요, 사람이니까 그럴 수 있어요. 이해심이 아주 넓네요. 선생님, 사람이니까 그럴 수 있어요. 맞아요, 사람이니까..... 내가 다니는 정신과의 상담 선생님은 내가 아무 때나 전화를 걸어도 항상 밝게 받아주신다. 예전의 선생님들은 그렇지 않았다. 나도 이해는 한다. 나는 시도 때도 없이 전화를 해댔다. 왜냐면 너무 힘겨웠기 때문이다. 다른 해결방법을 찾아도 되지만 나는 전화, 아니, 대화가 하고 싶은 것이다. 상담 선생님은 언제나 포근하기 때문에 시도 때도 없이 전화를 하는 거다. 매번 전화하는 내가 귀찮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번번이 이러는 나다. 어쩔 수 없다. 내가 살아야 하니까. 살고 싶으니까.   

아름드리님,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콜러브님. 아름드리님, 항상 이렇게 밝게 전화받아주셔서 감사해요. 아니에요, 제가 더 감사하죠. 왜 감사한데요? 왜라뇨, 심심하던 차에 이렇게 전화해주셨으니 감사한 거죠. 뭐하고 계셨나요, 아름드리님? 콜러브님 전화를 기다리고 있었다고나 할까요? 아, 정말인가요? 그럼요, 콜러브님. 감사합니다, 아름드리님. 감사는 제가 해야죠. 아, 감동이네요. 콜러브님, 전화해줘서 고맙습니다. 아름드리님, 전화받아주셔서 고맙습니다..... 내 닉네임은 전화하는 걸 좋아하는 이유로 콜러브, 그녀의 닉네임은 아름다운 마음씨에 걸맞게 아름드리다. 온라인 한 플랫폼에서 알게 되었는데 그녀는 나에게만 특별히 다정하게 대해주었다. 마침 사는 지역도 같아서 내가 마음을 놓고 다가섰다. 비록 온라인상이지만 그녀는 나에게 항상 먼저 안부를 묻는다. 그런 그녀와 많이 친해졌고 지금은 전화통화를 하는 사이가 되었다. 나는 시도 때도 없이 그녀에게 전화를 해댔다. 채팅을 해도 되지만 나는 전화, 아니, 대화가 하고 싶은 것이다. 음성을 들으며 대화를 나누고 싶은 마음에 아름드리님에게 수시로 전화를 하는 거다. 매번 전화하는 내가 귀찮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번번이 이러는 나다. 어쩔 수 없다. 내가 살아야 하니까. 살고 싶으니까.  

담당자님, 안녕하세요. 와, 안녕하세요. 오늘도 수고 많으셨죠? 아니에요, 항상 하는 일인데요. 오늘도 배달 많이 하셨나요? 그럼요, 오늘 하루도 바쁘게 보냈답니다. 식사도 잘 챙기셨고요? 그럼요, 밥을 먹어야 일을 하죠. 맞아요, 현명하세요. 그래야 이렇게 주문자님 전화도 받고요. 네, 맞아요. 주문자님, 오늘은 뭘 주문하시려고요? 담당자님, 사실 필요한 건 없고요, 그냥 전화통화하고 싶어서요. 아, 그러시군요. 바쁘신데 죄송해요. 아닙니다, 주문자님. 아, 그럼 제가 죄송하니까 항상 주문하는 그 초콜릿이랑 모닝빵이랑 그릭 요구르트 한 통 부탁해요. 그러시겠어요? 알겠습니다. 천천히 보내주셔도 됩니다. 주문자님, 감사합니다..... 내가 애용하는 식료품 가게의 직원이다. 전단지를 통해 알게 된 가게인데 이 담당자님은 정말 싹싹하다. 깊은 새벽에 배달해주기 때문에 당연히 얼굴은 본 적 없다. 나는 담당자님이 배달할 때마다 끼워 두는 명함 같은 메모에 매번 감동한다. 전화하고 싶을 땐 마음껏 전화하세요라는 메모. 담당자님이 처음 우리 집에 배달했을 때 내가 전화하는 걸 좋아하는지 어떻게 알았을까. 나는 이 담당자님이 다른 지역으로 옮겨 갈까 봐 걱정된다. 나는 시도 때도 없이 전화를 해댔다. 온라인 주문을 해도 되지만 전화, 아니, 대화가 하고 싶은 것이다. 활기찬 목소리의 담당자님이 너무 좋아서 전화를 하는 거다. 매번 전화하는 내가 귀찮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번번이 이러는 나다. 어쩔 수 없다. 내가 살아야 하니까. 살고 싶으니까.  

엄마, 저예요. 그래, 우리 딸. 식사하셨어요? 그럼, 먹었지. 저도 엄마가 주문해 준 국에 밥 말아서 잘 먹었어요. 안 그래도 맛있게 먹었는지 궁금해서 전화하려고 했어. 네, 맛나게 잘 먹었어요. 내일 잠깐만이라도 가도 되니? 아니에요, 오지마세요. 엄마는 네가 보고싶어. 온라인 주문으로 사먹을게요. 엄마는 네가 너무너무 보고싶어. 엄마, 아직은 싫어요. 그래, 알겠어. 미안해요, 엄마. 아니야, 이해해. 엄마, 세상에는 좋은 사람들이 참 많아요. 맞아, 네 말이 맞아. 엄마부터 시작해서 상담 선생님, 아름드리님, 그리고 배달 담당자님, 그리고 다른 분들까지. 너도 좋은 사람이야. 아니에요, 저는 전화를 마구 거는 무례한 사람이에요. 그 사람들도 너와의 전화통화를 좋아할 건데? 글쎄요, 모르겠어요. 아니면 너랑 통화할 리가 없지. 글쎄요, 모르겠어요. 그럴 거야, 넌 사랑스러운 아이니까..... 나는 같은 아파트지만 따로 살고 있는 엄마에게도 시도 때도 없이 전화를 한다. 함께 살아도 되지만 힘들어하는 나를 위해 각자 공간을 마련해서 산다. 우리는 만나지 않는다. 대신 통화만 시도 때도 없이 줄기차게 한다. 나는 그저 전화가 하고 싶을 뿐이다. 밤이든 낮이든 내가 하고 싶을 때마다 엄마에게 전화를 건다. 엄마는 나의 엄마라는 이유로 나의 이기심에 고통을 당한다. 아무리 딸이라지만 수시로 전화하는 내가 귀찮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번번이 이러는 나다. 어쩔 수 없다. 내가 살아야 하니까. 살고 싶으니까.



내 딸은 전화광이다. 전화광이라는 단어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내 딸은 전화를 자주 한다. 아니, 전화만 한다. 세상과 소통하고 싶어 노력하는 아이, 그러나 그게 쉽지 않아 세상으로 나서지 못하는 아이, 그래서 전화라는 걸 통해 세상으로 나아가고 있는 아이. 그게 바로 내 딸이다. 그런 내 딸에게 나는 삶의 의미를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아, 먼저 이것부터 얘기하자면, 나에게는 7대의 전화기가 있다. 유선전화기 4대 그리고 휴대전화 3대. 사실 나는 딸에게 있어서 1인 7역을 담당하고 있다. 솔직히 시도 때도 없는 내 딸의 전화를 다 받아줄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딸의 전화에 지쳐버린 그들은 딸을 완강히 거부했다. 지쳐버린 그들의 연락두절에 딸은 슬퍼했고, 그런 딸을 위해 고민을 하던 어느 날 좋은 생각이 났다. 집에 전화기를 여러 대 설치하고 휴대전화도 여러 대 가입했다. 그날부터 난 성우가 되었다. 이 전화기에는 이 목소리, 저 전화기에는 저 목소리, 이 상황에서는 이렇게, 저 상황에서는 저렇게, 또 또 또. 내 딸은 행복해했고, 지금도 행복하다. 그럼 1인 7역을 하는 나는? 당연히 행복하다, 아니, 딸보다 더 행복하다. 세상으로 나오고 싶은 딸을 위해 내가 좀 힘든 게 대수랴? 누군가는 이런 날 비웃겠지만 뭐 어때. 내 딸은 행복하다. 나는 행복하다. 우리는 둘 다 행복하다. 그러면 된 거니까. 내 딸은 전화광이고, 나는 전화광의 엄마이고, 우리는 전화광 모녀다. 언제까지일지는 몰라도 내 딸의 전화 파트너가 되어주고 싶은 나는 딸을 위한 1인 7역의 전화광 엄마 K다.



(어디선가 세상으로 나오기 위해 노력하는 분들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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