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조그맣고 허름한 뜨개질 공방을 운영한다. 사장이라고 하기에는 부끄러운 게 직원도 없을뿐더러 찾아오는 손님도 손에 꼽을 정도다. 그나마 내가 생계를 이어갈 수 있는 것은 단골손님 몇 명 덕분이다. 자기 손으로 직접 뭔가를 만들기를 좋아하는 요즘 시대 손꼽을 정도로 소박한 취미를 가진 사람들. 그들 덕분에 오늘은 김밥 두 줄을 사 먹을 수 있고, 어제는 칼국수 한 그릇을 비웠으며, 내일은 내가 좋아하는 밤 식빵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조그맣고 허름한 공간에서 그들과 둘러앉아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며 손을 바삐 움직이는 시간이 좋다. 나를 항상 따라다니는 가난의 존재 역시 여기에 눌러앉아 우리를 오도카니 바라보고 있다. 아, 너를 어쩌면 좋을까.
“손님이 하루에 딱 세 명만이라도 더 왔으면 좋겠다.” 이건 나의 말이 아니다. 우리 공방 단골들이 수시로 하는 말이다. 그들은 내 삶의 팍팍함을 잘 알고 있다. 자기들이 보기에도 내 수입은 아주 제한적이고 그 수입원으로 생활을 해나간다는 게 힘겨워보였나 보다. 나는 괜찮은데 정이 많은 그들은 나 대신 걱정을 해준다. 그래서 어떤 때는 더 우울해지기도 한다. 나는 괜찮은데, 아니, 괜찮다고 주문을 열심히 외우는데, 자꾸 걱정을 해주니 말이다. 그나마 쥐고 있던 자존감이 무너지기도 하지만, 그들이 없으면 내 삶도 무너지기 때문에 마음 편하게 그 말들을 넘겨버린다. 그래, 틀린 말도 아니니까.
“엄마, 나 돈 좀 줘.” 올해 고등학생이 된 딸이 하나 있다. 내 딸은 말수가 아주 적다. 유일하게 나에게 그나마 편하게 하는 말이 “엄마, 나 돈 좀 줘.”다. 누가 보면 아주 버릇없는 아이 같겠지만 그렇지는 않다. 나와의 대화를 어색해하는 딸에게는 저런 구실이나마 있어야 나와 마주한다. 나와 딸의 연결지점에는 돈이라는 필수 불가결함이 놓여 있다. 고작 이 만원이지만 그 돈으로 우리는 대화가 이루어지고 얼굴을 마주하게 된다. “엄마, 나 돈 좀 줘.” 이 말을 하지 않으면 아이와의 연결선이 사라진다는 말인데, 그렇게 되면 어떡하나 마음이 졸여오는 요즘이다. 이 만원이라니, 이렇게 감사한 이 만원이라니.
“얘야, 나 배고파.” 오 년 전부터 치매로 요양원에 감금되어 있는 친정엄마는 올해 연세가 일흔이다. 감금이라는 단어를 이제는 인정하기로 했다. 그곳에서 나오는 건 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본인은 얼마나 나오고 싶을까. 그러나 요양원에서 나온다 한들 있을 곳도 없고 함께 있어줄 사람도 없다. 언니와 오빠 모두 엄마에게서 등을 돌린 지 오래되었다. 엄마와 나의 연결지점에는 배고픔이라는 생리적 현상이 놓여 있다. 거짓 배고픔이지만 그 배고픔으로 우리는 대화가 이루어지고 전화통화 나마 하게 된다. “얘야, 나 배고파.” 이 말을 하지 않으면 엄마와의 연결선이 사라진다는 말인데, 그렇게 되면 어떡하나 마음이 졸여오는 요즘이다. 배고픔이라니, 이렇게 감사한 배고픔이라니.
“친구야, 나 잠이 안 와.” 내 친구는 불면증을 앓고 있다. 세상 그 어떤 수면제로도 해결이 되지 않는다는 그녀는 나와의 전화통화가 유일한 치료제라며 고마워한다. 어떻게 잠이 오지 않을 수 있을까, 그녀의 상태가 안타까웠다. 아는 것도 많고 바깥 활동도 많이 하던 내 친구는 어느 날부터 잠을 제대로 못 자게 되었다. 이혼한 다음부터일지도 모르겠다. 내 친구와 나의 연결 지점에는 잠이라는 딴 세상의 것이 놓여있다. 내가 해결해 줄 수 없는 그녀만의 고통이지만 나로 인해 그녀가 안정을 취할 수 있다니 다행스러운 일이다. “친구야, 나 잠이 안 와.” 이 말을 하지 않으면 내 친구와의 연결선이 사라진다는 말인데, 그렇게 되면 어떡하나 마음이 졸여오는 요즘이다. 불면증이라니, 이렇게 감사한 불면증이라니.
“야, 나 많이 지쳤어.” 서쪽으로 해가 진다. 퍼렇던 하늘이 까매진다. 텁텁하던 공기가 차가워진다. 이제 집에 가자, 하루 종일 얌전히 앉은 상태로 나만 바라보고 있는 가난에게 말을 건넨다. 이제 집에 가자. 돈 좀 달라는 딸, 배가 고프다는 엄마, 잠이 오지 않는다는 친구를 고스란히 남겨두고 가난과 함께 공방을 나선다. “야, 나 많이 지쳤어.” 나 자신을 놓아버리고픈 마음이 솟을 때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른다. 여기서 저기까지 가는 동안 눈물이 쉼 없이 흐른다, 주르륵주르륵주르륵. “야, 나 많이 지쳤어.” 이 말을 하지 않으면 나 자신과의 연결선이 사라진다는 말인데, 그렇게 되면 어떡하나 마음이 졸여오는 요즘이다. 지침이라니, 이렇게 감사한 지침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