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무계획

by 미로


항상 집에서 읽던 책을 오늘은 웬일인지 밖에서 읽고 싶어졌다. 바로 가방에 요즘 읽고 있는 하완 작가님의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를 부랴부랴 챙겨 외출했다. 어디서 읽을지 정하지도 않고 말 그래도 '무작정', '무계획'으로 나왔다. 계획 따윈 없지만 내 발이 이끄는 대로 내 몸을 맡겨 걸어갔다.


옆으로 카페가 보인다. 따뜻한 유자차와 함께 책을 읽으면 좋겠다 싶어 바로 들어갔다. 아침 일찍 갔었던 터라 매장엔 사람이 없고, 직원분도 방금 온 것인지 부랴부랴 오픈 준비를 하고 계셨다. 햇빛이 드는 창가에 자리를 잡고 음료를 시키려고 카드를 대는 순간. 아차, 오늘 하필이면 카드사가 금융거래 시스템 검사로 인해 금융거래가 막혔다. 정말 '무계획'으로 나온 나는 현금 역시 '무'였다. 카페에 들어가서 여유롭게 차를 음미하며 책을 보려던 계획이 무산된 것이다. 그렇게 또 거리를 걸어 다녔다. 카드가 안 되니 다른 카페를 들어갈 순 없는 상황. 마침 버스정류장이 보였다. 돈이 없는 내게 딱 좋은 자리라고 생각해서 버스 정류장 한편에 자리 잡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햇빛이 책을 비춰 노을이 진 것 같았다. 내 앞으로 지나가는 행인들이 버스를 놓칠세라 황급히 뛰어나 섰다. 나도 항상 저러는데. 행인들의 모습에서 괜히 버스를 놓칠 것 같은 마음에 후다닥 뛰는 내 모습이 보였다.


비록 계획이 살짝 틀어졌지만, 색다른 경험을 한 것 같다. 버스 정류장에서 책 읽기라니.. 처음에는 살짝 눈치가 보였지만, 바람과 햇빛, 자연을 느끼면서 책을 읽는 것도 너무 좋았다. 나중엔 산 꼭대기까지 올라가서 정말 찐자연을 옆에 두고 책을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으로 계획 없이 걷기를 시도했는데 이것도 이것만의 매력이 크게 느껴졌다. 계획이 없는, 그야말로 나갈 준비가 완벽하게 되어있지 않았지만. 우리 사회는 요즘 '완벽'을 추구하는 것 같다. 일이 조금만 틀어지거나, 만점을 받지 않거나, '완벽'이라는 규칙을 조금이라도 어기면 "너 제대로 할 수 있는 게 뭐야?", "이러니까 너가 안 되는 거야." (마음 아프다.) 이렇게 사람 마음을 후벼 파는 날카로운 가시 같은 말들이 꽂힌다. 그 가시는 빼기 전까지 아프다. 가시를 빼려고 노력하는 사람들도 있고, 그 가시를 썩혀 더는 빠질 수 없도록 단단히 놓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사회가 더 이상 아프지 않게 해 주었음 한다. 우리가 태어났을 때부터 걷기를 잘하기라도 했나, 아님 말을 잘하기라도 했나. 우리는 원래 불안하고 완벽하지 않은 아이 었다. 부모님께서 말하는 법, 똥 닦는 법, 밥 먹는 법, 치아 닦는 법 등 가르쳐주시면서 우리는 자라나는 것이다. 처음부터 완벽할 수는 없다. 그러니, 완벽을 강조하는 것은 아이에게 아무것도 가르쳐주지 않고 말을 하라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오늘의 나를 봐도 계획이 없는 '완벽'하지 않은 상태로 밖에 외출하고 심지어 그 계획이 뒤틀렸지만, 오늘 색다른 경험을 한 것처럼 말이다.


완벽하지 않으면 어때? 무계획이면 어때? 나는 나일뿐, 내가 불안정하고 완벽하지 않고 느린 사람인 게 뭐 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