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책마음 Sep 26. 2023

운동하기 좋은 날

운동하는 사람들 




세 번째 개인저서 《나는 매년 책을 쓰기로 했다》를 출간하고 나서 바로 한 일이 있다. 지역에서 함께할 수 있는 운동 모임 검색이다. 어릴 때 골목길에서 뛰어다녔던 기억이 몸에 새겨 있어서인지 조금은 정적인 나의 성향과 반대로 몸은 움직이는 것을 좋아했다. 그렇다고 운동을 적극적으로 해 오지는 못했지만, 체육 시간이나 움직이는 활동들을 싫어하지는 않았다. 내 버킷리스트 중 하나는 매년 운동 하나씩을 소화하는 것일 정도로.      


결혼하고 아이가 생긴 후로는 더욱 운동에 시간을 할애하기 힘들었다. 어떤 시기에는 너무 일에만 매몰되어 있는 듯하여 거기서 헤어 나오고자 가까운 수영장을 다녔다. 수영 시간도 좋았지만 잠깐 호흡을 가담은 시간에 바로 앞에서 수다를 떠시는 할머니들의 대화는 멈출 줄 모르는 생각의 실타래에서 잠시 벗어나도록 도와주었다. 그러나 그것도 1~2년만 지속하고 꾸준히 하지 못했다. 핑계일 수 있지만 여성에게 일과 육아만도 버거운 것이 현실이었다. 그래도 그때는 젊음이 그 모든 삶을 받쳐 주었다.   

   

체력 때문에 무너진 적은 그동안 한 번도 없었다. 지금은 40대 중반을 넘어서 50을 바라보고 있다. 아직 버틸만하지만 그래도 이 또한 위태위태하다. 직장에 매여 있을 때는 외부 출장이나 모임들이 많아서 집은 숙소의 기능만 있었는데, 코로나 이후 대부분이 일이 재택에서 이루어지면서 내가 이렇게 집을 좋아했었나 할 정도로 집순이의 삶을 탐닉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움직임의 최소화. 걸어봤자 거실 평수 안에서 왔다 갔다 하는 정도로 하루 천 보도 안 될 것이다. 그나마 노트북을 켜 놓고 단단한 근육 몸매를 뽐내는 유튜버를 따라 성의 없는 생존 몸 운동으로 겨우 버티고 있다.     


퇴직 후 2년 가까이 독서와 글쓰기에만 몰입했다. 정신은 풍요로워졌지만, 어째 육신은 나약해져만 가는 듯하다. 나이 들어 체력은 마음과 정신의 모든 것을 좌우할 정도 중요하다. 많은 시간을 빼앗기고 싶어서 혼자 운동도 즐겼는데, 실행을 위해선 역시 ‘함께’의 힘을 무시할 수 없다. 그래서 책을 출간하자마자 내가 사는 지역의 운동 소모임을 검색했던 것이다. 그런데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모임이 잘 보이지 않았다.   


  




그러던 중, 내가 운영하는 북클럽 모임 중 잠시 사적인 대화가 오갔다. 책 중심의 모임이라 보통 사적인 이야기를 거의 나누진 않는다. 수개월이 흐르도록 서로의 직업도 잘 모른다. 그런데 모임 끝자락에서 우연히 한 분과 대화에서 운동에 관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관심을 가지고 찾아보는 중이어서 나는 질문을 쏟아부었다. 근데 알고 보니 그분은 운동마니아셨다. 10여 년도 훨씬 전부터 시작한 달리기부터 이어져 철인 3종 경기에 꾸준히 도전해 오신 50대 중반을 넘어선 중년 여성이었다. 지금은 운동 동아리를 네 개나 하고 있고, 지역 철인 3종 경기 협회 회장님이기까지 하셨다. 와우! 그저 운동을 어느 정도 하신 분이라면 넘어갈 수도 있는데, 중년 여성이 오랜 시간, 그것도 철인 3종 경기를 꾸준히 해 오신 이야기는 매우 신선하다 못해 충격이었다. 바디 프로필을 찍는 단단한 몸을 만드는 운동 프로젝트에는 사실 흥미가 생기지 않았었는데, 철인 3종 경기라니  이상하게 귀가 솔깃했다.


철인 3종 경기를 나는 하루키의 책에서만 접했었다. 그가 소설가로 글을 꾸준히 쓰기 위해 도전했던 철인 3종 경기. 아래는 하루키의 기록이다.      


철인 삼종 경기.
100km 울트라 마라톤 완주, 
매년 마라톤 참가로 25회 풀마라톤 참가 (2007년 시점)     


하루키의 기록이 놀랍다. 마라톤을 100km를 완주할 수 있는 저력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보통 작가라고 하면 집안에 틀어박혀 굉장히 내향적인 삶을 살수 밖에 없는 직업 특성으로 매우 허약한 체질을 상상한다. (실제 하루키는 혼자의 삶으로도 충만함을 느끼는 내향적인 성격이 소유자인 듯하다)     

 

그는 서른쯤 전업 작가의 삶을 시작하면서 건강에 문제를 느끼고 달리기를 시작했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이렇게 집요하게 지속해서 뛰며, 온몸으로 고통과 희열을 느끼며, 자기 몸의 한계의 지점까지 밀어붙이는 작가가 또 있을까?      


그는 “하루에 1시간쯤 달리며 나 자신만의 침묵의 시간을 확보한다는 것은 나의 정신 위생에 중요한 의미를 지닌 작업이었다.”라고 말한다.      



그래서 마라톤 단련은 전혀 피로감을 느끼지 않고 매일매일 집필 생활을 계속할 수 있는 힘을 지탱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나 자신에 대해 말한다면, 나는 소설 쓰기의 많은 것을 매일 아침 길 위를 달리면서 배워왔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하루키     



하루키는 자신의 묘비명에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라고 쓰고 싶다고 했다. 이 문장 읽으며 달리기를 하며 얼마나 멈추고 싶은 순간들이 많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순간순간의 수많은 유혹을 물리치고 끝까지 달렸던 그, 그리고 그 힘으로 끝까지 소설을 써 갔던 그가 있었기에 우리는 그의 수많은 작품을 만날 수 있었다. 인생도 그와 비슷할 것이다. 오늘 하루는 달리기를 쉬고 싶고, 책 읽기를 쉬고 싶고, 글쓰기를 쉬고 싶은 날이 얼마나 많은가. 하루키의 그 집념과 투지, 고통을 통해 오히려 살아있음의 감각을 생생하게 느끼며 멈추지 않았던 그를 보면서 내 안의 집념과 생의 감각을 다시 다져본다.   






나는 북클럽에서 만난 그 여성에게 내가 운동하는 커뮤니티에서 매주 진행하는 무료 특강 때 사례 발표를 10분 정도 해 줄 수 있느냐고 부탁드렸다. 그런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10분으로 부족할 거 같아 결국 1시간 특강을 의뢰했다. 그녀의 배려로 <중년의 운동>이란 주제, 부제는 철인 3종 경기로 강의해 주셨다. 그리고 나는 빠르게 운동 단톡방을 개설했다. 특강 전 단톡방 이름을 어떻게 지을까 생각하다가 <운동하기 좋은 날>이라는 이름이 갑자기 내 안에 들어왔다. 맘에 쏙 들었다. 특강 후, 사람들이 한 두 명씩 들어오기 시작했다.

     

나는 집 앞 작은 운동장에서 걷고 달리고자 오랜만에 집 밖으로 나갔다. 그런데 짓궂게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날씨를 미처 살피지 못했다. 오래간만에 마음먹고 나왔는데 처음부터 포기해야 하나 하는 약간의 허탈감이 일어났다. ‘그래! 약간의 비는 괜찮아!’ 하면서 살살 옷으로 부딪쳐 내리는 빗방울을 맞으며 걷고 뛰었다. 그런데 비가 거세지기 시작했다. ‘어쩌지, 여기서 그만둬야 하나?’, 운동 의욕이 사라지려는 중에 20m 앞에서 우산을 들고 걷는 이웃이 갑자기 나타났다. ‘맞아. 나도 차 안에 우산이 있었지.’ ‘오늘은 조금 달려 볼까!’하는 마음이었기에 아쉬움이 컸지만, 나는 우산을 가지고 나와 달리는 대신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우리 인생도 기대하고 시작하지만 늘 꽃길만 이어지지 않는다. 새로운 시작을 질투하듯 원치 않는 장애물이 시시때때로 등장한다. 그러나 어찌하든 방법은 있었다. 오늘 운동 오늘의 목표 5000보, 3km를 완주한 작은 기록을 단톡방에 올렸다. 비가 왔지만, 오늘도 ‘운동하기 좋은 날’이었다.   

    

한 운동 마니아 지인을 통해 다시 하루키를 소환해 내고, 나의 몸 감각을 일깨워보려고 한다. 마음뿐 아니라 몸의 목소리에도 귀 기울여 보고자 한다.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아 굳어질 대로 굳어진 몸이지만, 마른 몸에 붙어있던 근육마저 소멸 될 위기에 처해 있지만, 세월을 잊은 듯 다시 단단해지고 유연해질 날을 상상해 본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