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함이 즐거움이 되는 날까지
운동 특강을 듣고, 함께 운동하는 사람을 모아, 인증으로 서로 격려하며 나도 조금씩 걷고 달리고 있다. 아파트 정문을 나가자마자 작은 소운동장이 있다. 처음부터 무리하지 말라는 조언을 듣고, 이곳에서 5000보, 약 3km 정도만을 겨우 걷는다. 그런데 막상 운동하려고 하는 날부터 비가 왔다. 그것도 며칠째. 그러나 우산을 들고도 걸을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비가 운동하지 않을 핑계가 될 수 없었다. 마음은 달리고 싶었지만 우선 소소하게 걷는다. 중간에 조금씩 달리는 것도 포함해서.
긴 휴일, 추석이 왔다. 이틀 동안 인증을 못 했다. 평상시보다 많은 음식을 흡수하고, 가족들을 만나고 나니 저녁이 되면 몹시 피곤했다. ‘그래 명절이야.’, ‘휴일은 조금 쉬어도 돼!’라는 내면의 꼬임에 넘어서 이틀 동안 걷는 것조차 못했다. 반면 명절임에도 꾸준히 인증하는 분들이 계셨다.
연후 3일째다. 내일은 오랜만에 가족사진을 사진관에서 찍기로 해서, 아무래도 오늘은 며칠 동안 과하게 채워 넣은 칼로리를 소모해야만 한다. 그래서 며칠 걸었던 집 앞 작은 운동장을 벗어나 예전에 주로 이용했던 큰 운동장으로 차를 몰고 갔다. 사실 여기도 운전하면 2~3분 거리에 있는 곳이었지만 이조차 시간이 아깝다며 집 앞 소운동장을 이용하고 있는 터였다.
오랜만에 나와서 그런지 평상시보다 운동장이 커 보였다. 연휴임에도 사람들은 많았다. 곧 마라톤 대회가 있는지 함께 달리는 팀들도 중간중간 보였다. 갑자기 내가 걸었던 집 앞 운동장이 더 작게 보였다. 오늘도 나오면서 집 앞 작은 운동장에는 할머니, 할아버지 몇 분이 걷고 계셨다. 걷다가 옆 벤치에 쉴 때도 많으셨다. 나는 그런 모습에 개의치 않고 홀로 걷고 달렸었다.
그런데 오랜만에 큰 운동장에 오니, 사람들도 많거니와 달리는 속도, 에너지, 활기가 달랐다. 갑자기 내가 며칠 동안 했던 운동이 하찮게 보였다. 쉼 없이 달리는 뭍 남성 여성들이 부러웠다. 뛰면서 울렁이는 탄탄한 근육이 위용을 뽐냈다. 그에 비해서 나는 너무 말랐고, 있던 근육도 소멸되고 있었고, 마른 몸매에 비해 아랫배는 불쑥 나와 있는 상태였다. 이래서 사람은 좀 더 큰 우물에서 놀아야 하나 보다. 비교로 인해 살짝 주눅 드는 마음도 들었지만, 보는 풍경이 달라지니 내 안에 동기부여가 더욱 쏟아 났다. 그저 어슬렁거리는 수준의 걷기가 아니라 좀 더 적극적으로 걷고 달려야겠다는 마음이 불끈 일어났다. ‘그래 내가 뛰어야 할 곳은 여기야!’, ‘나도 언젠가는 저들 팀에 속해 함께 뛸 거야!’라고 다시 다짐하며.
오늘은 걷기보다 뛰고 싶었다. 소설가 하루키처럼 철인 3종 경기까지는 몰라도 언젠가 마라톤은 나가보고 싶었다. 오늘은 시작부터 열심히 달렸다. 그런데 머릿속은 분명 뛰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내 몸은 걷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달린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나는 또 걷고 있다. 머리와 몸이 따로 논다.
나는 분명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어릴 때 동네에서 밤이고 낮이고 뛰어놀았던 기억은 몸에 남아 있었고, 그래서인지 몸을 움직이는 것을 싫어하지 않았다. 마른 몸매에 비해서 아픈 적도 거의 없었고, 체력이 부족해서 일을 못하는 경우도 거의 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내 과거일 뿐이었고, 젊음으로 유지된 체력일 뿐이었고, 내 머릿속에 남아 있는 환상일 뿐이었다. 오랜 시간 방치된 내 몸은 하루 5 천보 정도 걸을 수 있는 수준이다. 몸은 정직하다. 어떤 분야든 거저 얻는 경우는 없다. 우연히 얻게 된 것들은 자기 실력이 아니기에 금방 사라진다. 그러나 반대로 어떤 일이든 1부터 시작하더라도 꾸준히 쌓아간다면 1이 2가 되고 2가 3이 되고, 언젠가 100이 되는 날도 온다. 한때 운동을 좋아하고, 조금 한다고 했을지라도, 1부터 다시 시작해야 함을 인정해야 한다. 머릿속 과거의 착각에서 벗어나 몸과 머리의 격차를 줄여가야 한다.
걸고 달릴 때는 아무 생각이 없어지기도 하지만, 나만의 상념에 빠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러다가도 가끔 지루함을 살짝씩 느낀다. 그때는 운동장 대형 시계를 본다든지, 몇 킬로미터를 뛰고, 몇만 보를 걸었는지 체크하게 된다. 수다를 떨면서 달리는 여성 그룹은 즐거워 보인다. 함께 달리는 친구들이 있으면 덜 지루할까.
지루함은 왜 오는 걸까? 책을 읽을 때는 새로운 생각의 자극들이 계속 오기 때문에 지루할 틈이 별로 없다. 내용이 매우 어렵거나 정말 재미없는 책이 아니라면 말이다. 물론 운동할 때 나도 오디오북을 들어본 적이 있다. 그러나 계속적인 인풋은 생각할 시간을 빼앗기는 것 같고, 내 몸에 좀 더 집중하지 못하는 거 같아서 운동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몸의 고통을 회피하기 위한 방어기제로 ‘지루함’이라는 감정이 등장하는 것 같다. 조금 더 걷고, 달리도록 밀어붙여야 할 때, 이 감정이 불쑥 나타나서 ‘아 재미없네.’, ‘운동은 재미없어.’ ‘나는 아직 운동 초보자야.’, ‘오늘 이 정도면 충분해.’라고 운동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 운동하지 않을 온갖 이유, 핑계를 들이댄다. 결국 온전한 몰입을 방해한다.
심리학자인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박사는 《몰입》이라는 책에서 즐거움은 어떤 일에 열정을 다해 적극적으로 참여할 때 따라오는 결과다라고 말했다.
“사람들이 대부분 생각하는 것과 달리 생애 최고의 순간들은 수동적이거나 수용성이 크지 않을 때, 혹은 편안할 때 찾아오지 않는다...(중략) 최고의 순간은 까다롭고 노력할 만한 가치가 있는 무언가를 성취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자신의 신체 혹은 마음을 한계 수준까지 확장시킬 때 찾아온다.”
어슬렁거리는 수준의 걷기로는 최고의 즐거움을 맛볼 수 없다. 자발적으로 신체와 마음을 한계 수준까지 확장할 때 그 순간은 찾아오는 것이다. 운동 초보자로 여전히 몰입도 즐거움도 없는 지루한 순간만을 경험하고 있다. 그러나 이 지루함에 굴복하지 않고, 그 정체를 꿰뚫고, 이 순간들을 성실히 쌓아가다 보면, 지루함이 즐거움으로 바뀌는 순간이 반드시 오리라 믿는다. 지루할 때마다 상상하리라. 내 몸 구석구석에 근육이 붙어가는 (벌써 조금씩 근육이 붙는 느낌이다), 그래서 어떤 난관도 뚫고 갈듯이 힘차고 즐겁게 달리는 모습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