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준함이 기계가 되지 않으려면
틈이 있는 사람
나는 걸음도 말도 무엇을 하든 조금 빠른 편이다. 컨디션을 유지하여 짧은 시간에 몰입하며 나머지 시간을 여유롭게 지내려 한다. 20여 년 넘게 조직에서 몸담고 있다가 자유의 몸이 되어서인지 나도 모르게 ‘슬로우 라이프를 살고 싶다.’ 내 삶의 목표 중 하나였다. 아마 이 시대를 사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이런 삶을 지향하지 않을까. 나는 내가 원했던 삶을 잘살고 있는 걸까.
어느 날 고1 아들 픽업을 위해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져 카페에 잠시 들렀다. 비 오는 날 혼자 카페에 머물기는 오랜만이었다. 책을 미처 가져오지 못한 터라, 다행히 가져온 메모지와 펜을 가방에서 꺼내 들고, 따뜻한 커피 한 모금을 마시며, 의식의 흐름대로 일상을 메모해 갔다. 쭈욱 적어 내려가다가 나도 모르게 이런 문장을 남겼다. “슬로우 라이프는 무슨!!”.
잠시 숨을 고르며 일상을 돌아보니 내 삶은 하루하루가 촘촘히 꽉 짜여 있었다. 새벽 4시에 기상해서, 5시에 줌을 열어 함께 책을 읽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이후 독서를 이어가다가 조금씩 글도 쓰며, 수업이나 강의가 있는 날은 이를 준비한다. 집안일은 시간과 에너지를 최소한 줄이기 위한 나름의 전략으로 한꺼번에 처리하려고 하지만, 이 또한 시간을 왜 이리 잡아먹는지 (우리 집에는 설거짓거리, 빨랫거리, 빨랫줄에서 걷어낸 갖가지 옷들, 음식물과 재활용 쓰레기 등이 종종 쌓여 있다.)
좋아하는 일들로(주로 독서와 글쓰기, 강의 준비) 하루가 채워져 있기에 정신이든 몸의 노동이든 힘들어도 그리 힘들지 않다. 기쁨과 희열이 고통을 어느 정도 상쇄해 주기에. 최근에는 함께 진행하고 있는 공저의 작업 두 개가 몰려 있었다. 내 책이 나온 지 한 달이 되지 않았는데 이에 대한 홍보와 관심은 어느새 물 건너가 있고, 곧 출간을 앞둔 두 책의 막바지 작업을 하느라 공들이고 있다.
글을 쓰는 과정도 누구에게 쉽지는 않겠지만, 그것이 책으로 나오는 과정에도 많은 이의 수고가 담겨 있다. 그러나 나는 정말 1인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기에(4~5인이 함께 운영해도 1인 출판사라고 한다고 알고 있다.) 유통 외에 책을 편집하고, 편집된 글들을 작가님들과 계속 소통하며 점검하고, 서점에 올릴 상세 페이지와 홍보 글들을 만들고, 마케팅, 출간 기념회, 북토크 등 이 모든 진행과 소통을 나 혼자 하고 있다.
처음 공동 저자 클래스를 열고 나서는 글을 쓰며 사람들과 소통하는 과정뿐 아니라 그것이 책으로 나오는 과정도 신기하고 재미있어서 매달 모집하고 진행하며 한 달에 한 권의 책을 뚝딱 만들어 버렸다. 몰입의 시간이었다. 그렇게 4기까지는 쉬지 않고 진행했다. 그러다가 5기 모집인원이 모두 채워지지 않았고, 내 개인 책 작업도 마무리해야 하는 상황에서 더 이상 홍보해야 하는 에너지가 당시에는 남아있지 않다는 핑계로 이미 신청한 분들에게 양해를 미루고 모집을 뒤로 미루었다. 그리고 시작 시기는 달랐지만 두 권의 책이 한 번에 몰리게 되었다.
글을 쓴 작가님들이 쉬는 타임에 나는 초집중해서 남은 작업을 마무리해야 한다. 컴퓨터 앞에서 시간이 가는 줄 모른 채, 디자인과 문장과의 씨름이 이어진다. 고되지만 이 과정 또한 또 다른 창작의 희열이 있기에 몰입하게 된다. 어깨와 책상과 밀착된 손목과 팔꿈치 부분이 시큰거리면 쉬어 주어야 할 타임이다. 이 외에도 진행하고 있는 북클럽, 독서방, 글방, 강의 등 내가 가능한 선에서 여러 모임을 꾸려가고 있다. 그래서인가 잠시 글과 컴퓨터 화면이 나에게 예민하게 느껴졌다. 조금은 거리를 두어야 할 타이밍이다.
카페에서 이런 일기 같은 글들을 의식의 흐름대로 적어 가다 보니, ‘꽉 찬 삶도 좋은데 내가 지향했던 슬로우 라이프는 어디 갔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러면서 ‘슬로우 라이프가 뭘까?’하는 의문이 들었다. 막연히 조직에서 벗어나면 이런 삶 살아야지 하는 생각만 있었지 이에 대해 깊이 고민해보지 못했던 거 같다. ‘그저 유유자적하며 지내는 삶을 그렸던 걸까?’, ‘조직에서 때론 하고 싶지 않은 일까지 해내야 했던 삶을 내려놓고 좋아하는 일만을 숱하게 하면 슬로우 라이프가 저절로 되는 줄 알았던 걸까?’, ‘지금처럼 꽉 찬 삶을 살면서도 슬로우하게 살 수는 없는 걸까?’, ‘슬로우 라이프는 이제 포기해야 하는 걸까?’, ‘슬로우 라이프를 위해 좋아하는 일을 포기해야 할까?’ 그런 질문들을 여과 없이 종이에 적어 내려가고 있었다. 그러다가 메모한 한 단어. ‘틈’.
슬로우는 틈을 만드는 행위다. 슬로우는 단순히 모든 것을 시간적으로 느리게 살며 유유자적하는 삶이 아니다. 물론 명상과도 같은 이런 시간이 우리에게는 절대적으로 필요하지만. 『월든』의 소로처럼 숲으로 달려가지 않는 이상, 현대인의 삶이란 그리 한가롭지 않다.
내가 생각하는 ‘틈’이란 이런 거다. 좋아하는 것에 몰입하다가도 멈춤의 시간을 중간중간 많이 만들어놓는 것. 이런 시간을 고려하지 않고 여백 없이 꽉 채운 삶은 번아웃으로 직결하거나 좋아하는 것도 싫어하게 만들어 버린다. 많은 이들이 좋아하는 것이 일이 될 수 없는 이유 중 하나가 이 때문이 아닌가도 싶다. 나는 읽고 쓰는 일상을 계속 살아가고 싶고, 이 기쁨을 다른 이들과 나누며 일로 생활을 영위하고도 싶다.
어제 한 수업에서 한 분은 자신은 무엇을 하든 느리기에, 하나에서 다른 것으로 빠르게 전환하기 힘들다고 토로했다. 반면 나는 무엇이든 빠르게 전환하고, 어떤 환경에서든 쉽게 잘 적응하는 편이다. 성격일 수도 있고, 효율성을 추구하는 성향 때문일 수 있다. 이것이 누군가에게는 장점으로 보일 수 있겠지만, 일 중심의 사람으로 변질될 수 있다. 좋아하는 일의 속도를 조절하지 않으면 결국 소유가 존재를 앞지르게 된다. 결과물이라는 유혹에 매여 과정에서 누릴 수 있는 소소한 존재의 기쁨을 지나쳐버릴 수 있다.
속도감 있게 일을 처리하는 것도 때때로 필요하겠지만, 과정에서의 틈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결과를 빠르게 보고자 하는 내 안의 직선적이고 효율적 인간이 조금 느리더라도 위와 아래, 옆을 보고 음미하며 갈 수 있는 명상적 인간도 되면 좋겠다. 내 안에는 늘 두 인간이 존재하며 종종 투쟁한다.
꾸준함이 기계가 되는 않으려면
몰입할 때는 시간의 개념이 달라진다. 나는 MBTI에서 J가 강한 형이다. J형은 계획형으로 24시간을 계획해야 마음이 편한 사람이다. 일정에 나를 맞춘다고 할까. 일정이 없으면 불안하다. 물론 실천은 또 다른 문제지만.
그런 나도 변하고 있다. 24시간이 아니라 하나의 프로젝트, 목표에 요즘은 더 집중하는 편이다. ‘일정’이라는 기준이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그것만이 기준이 될 때, 날씨처럼 변화무쌍한 매일의 컨디션이 반영되지 않은 목표 설정이 되어 몸과 마음을 망가트리기도 한다. 그러나 내가 이루고자 하는 하나의 목적에 집중할 때 ‘시간’이 오히려 무의미해지는 몰입의 순간이 온다. 식사 시간도, 자야 할 시간도 놓칠 때가 있어 컨디션을 위해 알람 설정은 필수다. 그 몰입의 순간은 과정 과정을 세세히 느끼며 집중하며 가기에 매우 느린 듯하면서 쏜살같이 시간이 지나간다. 가장 느린 걸음이 가장 빠르다고나 할까. 몰입의 시간을 거치다 보면 24시간, 일주일, 한 달, 1년의 틀이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지금은 24시간 틀을 활용하되 아주 꼼꼼히 작성하지는 않는다. 큰 틀에서만 목적과 해야 할 일들을 표기해 놓고, 여백을 많이 둔다. 과정 과정에서 내 컨디션을 보며 수정도 많이 한다. 일정을 활용하되 내 푯대에 주목한다. 몰입에 이르는 길이다.
좋아하는 것을 지속하다 보면 꾸준함은 그리 어렵지 않다. 몰입도 쉽다. 그러나 꾸준함이 기계가 되는 순간, 즉, 틈이 없는 몰입이 이어지는 순간 애정과 열정은 식기 마련이다. 그토록 원했던 일도, 이에 대한 무한한 사랑도 바래진다. 문장을 이어가다 보니 슬로우 라이프에 대한 막연한 동경, 허상을 직시하게 된다.
애정하는 일에 대한 몰입과 열정을 바치더라도 언제든 무수한 ‘틈’을 만들 수 있는 사람, 24시간 돌아가는 AI와 같은 꾸준함이 아니라, 꾸준한 루틴의 간격 사이사이 언제든 하늘을 올려다볼 수 있는 여유를 만끽할 수 있는 사람, 꽉 찬 다이어리에 기쁨을 느끼기보다 흰 여백의 퍼센트로 삶을 저울질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적다 보니 내가 바라는 슬로우 라이프는 이 정도였다. 전쟁과 같은 현대인에게 이 또한 너무 안일한 허상이고 꿈일까 싶기는 하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