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에게 자유함을
요즘 동네 앞산을 오르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맨발로 걷는 이들이 눈에 자주 띈다. 내가 사는 지역에서는 걷기 코스를 개발하고, 시민들을 위한 걷기 프로그램을 운영하는데, 오랜만에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올해는 한 달에 한 번 맨발 걷기 프로그램이 새로 추가되어 있었다. 맨발 걷기가 새로운 유행이나 하는 생각에 11월에 진행하는 올해 마지막 맨발 걷기 프로그램에 참여해 보았다.
바닷가 모래사장이 아니고서 신발 없이 걷는다는 것을 상상하기 힘들었고, 어떤 느낌 일까도 무척 궁금했다. 얼마 전 읽은 걷기 관련 책 작은 꼭지 하나에 맨발 걷기의 효과에 대해 읽은 부분도 인상 깊게 남아있었다.
원래 이 프로그램은 오전 10시에 운영했었는데 11월이라 오후 1시로 시간이 변경되어 있었다. 집합 장소는 치악산 둘레길 코스 중 하나인 운곡 솔바람 숲길이다. 여기는 맨발로 걷기에 가장 안전하고 최적화된 장소라 이 프로그램은 주로 이곳에서 이루어진다고 한다. 정해진 장소에 도착하니 이미 맨발로 서 있는 분들이 많이 있었음에도 내 흰 발을 보인다는 속옷 벗듯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나는 잠시 쭈뼛쭈뼛 서 있다가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신발과 양말을 벗었다.
걷기를 이끄는 선생님 한 분의 인사말이 이어졌다.
“우리 몸에는 400만 개의 땀샘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중에 반인 200만 개가 손바닥과 발바닥에 있어요. 맨발 걷기는 차가울 때 냉수마찰 효과와 같이 시원함을 느끼실 겁니다.”
그래서 오히려 11월의 맨발 걷기가 가장 좋고 12~2월 겨울에는 발등이 시려 못 걷는다고 한다. 가장 안 좋은 건 여러 핑계로 실천하지 않는 것이고, 날씨가 추워질수록 짧게 하더라도 적당하게 걸어주면 몸이 시원해지고 머리가 맑아진다고 한다. 처음부터 무리하지 말고 땅 하고 친해질 수 있는 시간을 천천히 가질 것을 당부하신다. 추운 날에는 끝나면 뜨거운 물이 아니라 차가운 물로 씻어줘야 주고, 여름과는 다르게 보습제 발라주면 좋다는 팁도 알려주셨다.
체력에는 활동체력과 방어체력이 있는데, 활동 체력이 힘을 쓰는 운동인 반면, 방어체력은 면역력을 키우는 운동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평균연령이 83세인데 여성이 남성보다 좀 더 오래 산다. 여성은 남성보다 방어체력이 더 좋다. 방어체력에 좋은 운동이 ‘맨발 걷기’라고 보태주셨다.
신발을 신고 걸었을 때와 맨발로 걸었을 때 몸에는 각각 어떤 변화가 나타날까? 꼭 안전한 신발을 두고 맨발로 걸어야 하는지 매우 궁금했다. 몸소 체험해 보고 싶었다.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이유이기도 하다.
하얀 발을 노출한 부끄러움은 잠시 접어두고 일행과 출발했다. 11월이지만 날씨도 춥지 않았고, 땅은 살짝 차가웠지만 걷기 어려울 정도는 아니었다. 어젯밤 잠시 비가 내려서 축축할 줄 알았는데 이곳은 비가 건너갔는지 딱딱하고 마른땅이었다. 흙이라 푹신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딱딱해서 의외였다. 내 뒤에 걸어오시는 한 담당자분은 이런 길이 가장 좋다고 말씀하셨다. 적절한 지압도 되면서 말이다. 아 주의점은 계속 맨발 걷기를 하려면 혹시 모를 사태를 위해 파상풍 주사를 꼭 맞아 놓으라고 당부하신다. 한번 맞으면 10년의 효과가 있다는 말씀도 덧붙이시면서.
내 옆에서 함께 걸어가는 한 중년 여성에게 “맨발 걷기가 처음이세요?”라고 말을 건넸다.
“이 장소는 처음이지만 다른 곳에서 종종 걸어요. 과거에는 고강도의 운동을 즐겼는데, 어느 날 이석증이 찾아왔어요. 그 이후로 고강도의 운동은 하기 힘들었고, 만 보 걷기를 4년 정도 실천했어요. 그런데도 아주 큰 효과를 보지 못했었는데 우연히 맨발 걷기를 한 후, 한 달도 되지 않아 실제 관련 수치가 낮아졌어요. 그 후 매주 맨발 걷기를 하고, 치악산 등반도 맨발로 다녀왔어요?”
“와~! 치악산 등반이 맨발로 가능해요?”
험하다고 알려진 치악산을 맨발로 걷는다는 말에 뭔가 있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길을 가다가 지도 선생님은 중간중간 우리를 세우셨다. 맨발 걷기를 끝내고 내려오는 한 여성을 붙들어 세우시더니 자신의 사촌 여동생이라고 소개한다. 이어서 그녀의 간증이 이어진다.
“부종으로 고생해서 여러 치료를 받았는데 효능을 못 봤어요. 맨발 걷기를 시작한 후 부종뿐 아니라 다이어트, 면역력 개선 등 여러 효과를 보고 있어, 그 후 꾸준히 실천하고 있어요.”
지도하시는 선생님은 지리산을 맨발로 다녀왔다고 하니 큰 기대 없이 참여한 프로그램에서 맨발 걷기로 염증, 다이어트, 면역력, 이석증 등이 치료된 분들의 이야기를 접하며 마음이 한껏 고무되었다. 맨발 걷기가 만병통치약 것처럼 보였다.
신발을 신어야 하는 고정관념을 뒤엎은 이들은 이미 있었다. 2016년 칸 영화제에서 영화배우 줄리아 로버츠가 신발 없이 등장했고, 맨발로 공연장에 서서 가수 이은미는 노래를 불렀고, 맨발로 출퇴근, 심지어 마라톤을 하는 이들도 있다. 황톳길을 걷고, 바닷가 모래사장을 걷는 이들도 늘어나고 있다. 외국에서도 맨발 동호회 모임들이 있다.
신발과 맨발 걷기의 과학적 연구 결과도 있을까? KBS 생로병사의 비밀 제작팀에서 출간한 『걷기만 해도 병이 낫는다』에서는 맨발 걷기의 연구 사례와 효능에 대해 잘 설명해 주고 있다.
신발을 싣고 걸을 때는 발의 아치 부분까지 압력을 균일하게 받는데, 신발을 신고 걸을 때는 발 전체가 하나로 움직이고 뒤꿈치 압력이 불안정했다. 또한 신발보다 맨발로 걸을 때 체온이 1도 정도 높았다. 체온이 1도 이상 높다는 것은 혈액순환이 좋아진다는 뜻이며, 혈액 순환이 좋아지면 면역력도 높아지고, 손상된 세포를 빨리 복구하게 되고, 스트레스와 각종 질병에 저항하는 능력도 생긴다.
정형외과 서상교 전문의(前 서울아산병원)는 우리 몸에서 발은 제2의 심장이라고 표현하며 발 건강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어떤 면에서는 발이 심장보다 더 중요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걸으면 심장에서 보낸 혈액이 제일 먼 곳에 있는 발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심장으로 올라오게 되는데, 맨발로 걸으면 발 자체의 관절과 근육의 기능이 원활해지고 몸의 혈액순환도 좋아집니다.”
해외의 한 연구기관에 의하면 맨발이 발근육을 더 많이 강화시킨다고 연구도 있다. 두 발은 52개(몸 전체 뼈의 1/4에 해당)의 뼈와 32개의 근육으로 움직이고 214개의 인대가 지탱하고 있다. 이렇게 발이 발달할 수 있었던 이유는 수십만 년간 인류가 사냥감을 쫓고 쫓기며 맨발로 울퉁불퉁한 산과 바위 위를 걷고 달렸기 때문이다. 온 발을 사용해야 했던 인류는 자동차, 엘리베이터, 온종일 앉아서 일하는 라이프 스타일로 걷는 지분이 줄어들고 있다. 의지적으로 시간을 내어 걸어야만 하는 시대다.
미국 하버드대학 한 연구도 소개하는데, 평소 신발을 신고 걷는 그룹과 맨발로 걷는 그룹을 달리게 하고 착지 시 발의 충격을 측정했다. 실험 결과 신발을 신은 그룹이 맨발일 때보다 발의 충격이 3배 큰 것으로 나타났다. 맨발일 때는 착지 시 바닥에 발가락이 먼저 닿아 발가락과 발목의 유연함이 바닥과 충돌로 발생하는 몸무게 하중을 줄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뿐만 아니라 맨발 걷기는 우리 마음에 영향을 미친다. 척추 안에는 뇌척수액이 흐르는데 걸을 때 후두골과 엉치뼈(천골)의 펌핑 운동으로 흐름이 활발해진다. 활발해진 뇌척수액은 뇌하수체를 자극하는데, 이때 세로토닌 같은 행복 호르몬이 분비돼 기분이 좋아지고 수면에 도움을 준다. 실제로 맨발 걷기를 한 분들은 100일, 200일 꾸준히 해야 한다고 효과를 톡톡히 본다고 하는데, 나는 맨발 걷기를 하루 했을 뿐이지만,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는데, 요 며칠간의 기상 느낌이 살짝 달랐다. 좀 더 개운하다고나 할까.
발을 드러낼 때 아직은 약간의 수치심과 부끄러움을 느낀다. 신발을 벗고 맨발로 다니는 이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눈이 한 번 더 가게 된다. 아직은 이 모습들이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아서겠지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땅속 온갖 세균으로 신발로 발을 보호하려 하지만, 하루 종일 갇혀있는 신발이나 땀에 젖은 양말에서 발견되는 세균이 더 좋다고 말할 수 없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상식이 깨지는 순간이다. 그동안 내가 발을 보호한답시고, 발을 감금했다는 생각까지 든다. 이제 발에 자유함을 주어야겠다. 현대인이 누리는 편리함 속에 발은 서서히 죽고 있었다. 발뿐 아니라 현대인은 편리함을 대가로 온갖 질병을 얻고 자연과의 교감, 감각의 살아있음 등 많은 것을 오히려 잃어버리고 있다. 일상의 편리함보다 약간의 불편함을 선택하는 비중을 늘려갈 필요가 있다. 아직은 모든 일상을 맨발로 대체할 용기는 없지만, 맨발로 활보할 수 있는 안전한 공간에서만큼은 마음껏 발에게 자유함을 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