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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토닥 Jan 26. 2022

서른의 인간관계

고등학교 때 친구를 만나고 나서

나는 오랜만에 고등학교 친구와 밥을 먹었다. 마지막으로 얼굴을 본 게 5년 전쯤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일을 하다 문뜩 그 친구가 생각이 났다. 



" 연락 한 번 해볼까?"



이런 생각이 들었고 문자를 보내보았다. 나는 사람들에게 잘 연락을 안 한다. 연락하면 왠지 반드시 만나야 할 거 같고 부담도 들고 그래서 잘 안 하는 거 같다. 아무튼 나는 그 친구가 생각난 김에 카톡을 보냈다.



다행히도 그 친구는 반갑게 나와 문자를 주고받았다. 이 친구는 고등학교 때부터 나와 함께 운동을 했던 친구였다. 마치 곰을 연상케 하는 친구다. 나는 왜소한데 비해 그 친구는 키가 180이 넘고 덩치도 산 만한 친구였다. 그 친구하고 함께 다니면 왠지 모르게 든든한 느낌마저 들었었다.


(포로리와 너부리 같은 느낌 - 보노보노)▼▼


출처 http://www.mhns.co.kr/news/articleView.html?idxno=36814


곰 같은 친구의 성격은 소극적이고 순수하다. 위 사진처럼 포로리와 너부리가 노는 듯한 느낌을 우리가 주었다. 그래서 더욱 친하게 지냈을지도 모른다. 그 친구도 나처럼 먼저 연락하지 않으면 잘 연락이 안 되는 친구였다. 나는 그 친구와 약속을 잡고 저녁을 함께 먹었다.



내가 학창 시절 친구와 만나기로 한 장소는 안암이었다. 나는 약속 장소에 미리 가서 카페에 들렀다. 그리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커피를 마시면서 안암에 대한 추억에 잠겼다. 나는 안암 쪽에 있는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그래서 그런지 안암오거리는 마치 나의 두 번째 고향처럼 포근한 느낌을 주었다.



안암에서는 추억이 참 많았다. 안암역 근처는 고려대가 있다. 그리고 가까운 곳에 회기와 경희대가 있어서 상권이 잘 발달한 곳이다. 학교가 끝나면 항상 친구들과 안암 쪽에 와서 밥을 먹고 피시방을 갔다. 우리 학교 근처는 신설동이 더 가까웠지만 신설동은 학생들이 놀만한 곳은 없었다.



안암은 학생들이 많이 와서 그런지 물가도 쌌다. 그리고 고객층에 맞추어 피시방, 노래방, 먹을거리가 넘치는 곳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가서 깜짝 놀랐다. 문 닫은 가게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안암오거리에는 오래된 스타벅스가 있었다. 터줏대감이랄까. 그런데 그 스타벅스 마저 임시휴업을 한 상태였다. 



한 건물 자체가 공실이 나 있었고 대형 프렌차이저 카페와 식당들이 문을 닫은 상태였다. 간간히 보이는 작은 식당들만 위태롭게 영업을 하고 있었다. 나는 마음이 아팠다. 카페가 없어 여기저기 찾다가 작은 이디야 카페가 있어서 들어가 커피를 주문한 것이다.



활기가 넘치던 안암의 거리는 조용하고 측은한 거리가 되어있었다. 코로나의 여파가 정말 강력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실감하게 되었다. 



서른의 인간관계



그 친구와 오랜만에 만나 수다를 떠니 다시 학창 시절로 돌아간 듯했다. 그 철없고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 말이다. 정말 오랜만에 만났는데 어색함이 전혀 없었다. 곰 친구는 딸아이와 아내가 있는 책임이 큰 가장이었지만 내가 보기에는 달라진 게 없어 보였다. 분명 세월이 지났고 많은 것이 달라졌는데도 우리는 철 없이 깔깔 웃으며 대화했다.

맛있는 삼겹살을 먹었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근황 토크를 하며 그 친구가 정말 열심히 산다는 것도 알게 됐다. 우리는 서로가 말은 안 했지만 잠시나마 무거운 현실의 짐을 내려놓을 수 있음에 즐거웠던 거 같다. 서른이 넘고서 인간관계는 점점 기브엔 테이크에 집중된다.



나는 이런 인간관계에 허무함과 공허감을 느끼고 있었다. 과거에 아무리 친했어도 변치 않는 관계와 우정은 없었다. 내가 변했든 상대방이 변했든 살짝만 갈등이 생기면 인간관계는 너무나 쉽사리 부서졌다. 그래서 나는 관계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한 동안은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 깊은 상처를 치료해야 되는 시기였고 사람에 대한 신뢰를 전부 잃었기 때문이었다. 가장 믿었던 친구들에게 당한 배신은 내 영혼마저 뒤 흔들었다. 과연 인간에 대한 믿음을 다시 회복할 수 있을까 의구심마저 들었었다.



서른이 넘고서 생긴 인간관계에 대한 잦은 소음은 나뿐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겪는다. 그렇다면 왜 서른일까? 20대 때는 아직 갈 길이 정해지지 않는다. 각자 미래를 준비하는 시기이고 수준도 비슷해 보인다. 하지만 서른 살부터는 확연하게 각자의 길이 눈에 보이고 수준도 차이 나기 시작한다.



어떤 친구는 잘 나가고 어떤 친구는 일이 잘 안 풀린다. 차가운 현실의 벽이 서른이 되면 다가오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관계는 서른 살부터 재정립되기 시작한다. 상황이 어려운 친구는 더 이상 잘 나가는 친구와 함께 어울리지 못한다. 과거에는 비슷했는데 차이가 발생하고 관계도 금이 간다. 



일이 잘 풀리는 친구는 이제 더 나은 사람들과 어울린다. 그동안 즐겁게 지냈지만 일이 안 풀리는 친구는 자연스럽게 멀리한다. 더 이상 수준이 맞지 않는 것이다. 이는 냉혹한 현실이다. 



나는 인간관계에 대한 깊은 혐오감을 느끼다가 최근에는 다시 생각을 바꾸었다. 관계에 대한 에세이를 쓰다 보니 문제는 나한테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관계는 그저 관계일 뿐 내가 아니라는 깨달음이다. 여태껏 나는 인간관계가 내 인생의 전부인 것처럼 살았다.



나의 모든 에너지를 관계에만 쏟았던 것이다. 그래서 문제가 생긴 것이다. 스스로 잘 살아야 되는데 그러지 못하고 남에게 의지를 하는 것이다. 속으로는 친구에게 기대하지 않는다. 나는 괜찮다는 식으로 스스로를 다독였지만 친구에 대한 서운함은 사라지지 않고 계속 마음속에 남아있었다.



병이 안 날 수가 없었다. 관계에 집착할수록 나는 더욱 이상해졌다. 바보 같고 당당히지 못한 내 모습이 싫었다. 그러면서도 나를 파괴하는 관계를 손에서 놓지 못했다. 나는 결단을 내려야만 했다. 그리고 모든 것이 정리되었다.



파괴와 창조는 한 세트이다. 나의 관계는 완전한 파괴를 맞이했다. 그리고 새로운 창조의 시기이기도 하다. 제일 소중했던 관계들이 파괴되었다. 매우 아팠지만 내가 제어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다. 깔끔하게 놓아주고 새롭게 시작하면 된다.



그 친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우리는 헤어지면서 설날이 지나고 같이 운동을 했던 친구와 함께 셋이 보기로 약속을 잡았다. 오랜만의 친구와의 만남은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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