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와 분열 그리고 사랑을 잃은 현대 사회
사랑의 힘은 위대하다. 사랑은 인간이 추구해야 될 마지막 진리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사랑은 인간의 분리불안(고독)을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현대 사회가 혐오와 차별로 분열되면서 지옥이 되고 있는 이유도 사랑을 잃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왜 현대인은 사랑을 잃었는가? 바로 사랑을 자본주의와 결합시켰기 때문이다. 사랑은 상품이 되었다. 현대인들은 사랑의 가치를 상품의 가치처럼 취급하고 있다. 서로의 스펙을 따지며 당신은 나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냐고 조목조목 따진다.
현대인의 사랑법은 마치 거래를 하는 듯한 형태를 띤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결혼 시장이다. 나는 옛날부터 결혼 시장이라는 말이 어색하게 느껴졌다. 왜냐면 나에게 있어 결혼은 사랑하는 남녀가 앞으로 인생을 향해할 배를 같이 타겠다는 선언쯤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즉 결혼은 연애의 끝이고 험난한 인생을 함께할 파트너를 찾았다는 개념이었다. 그런데 여기에 시장을 붙이니 이상하게 느껴진 것이다. 시장은 말 그대로 마켓인데 사람이 상품이 되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인간의 사랑은 상품이 될 수 있는 것인가?
자본주의는 그것을 가능케 만들었다. 특히 결혼시장에서 제일 중요한 가치는 바로 돈과 외모이다. 남자는 경제력이 좋아야 하고 여자는 외모와 나이가 적어야 가치가 높게 평가된다. 즉 거래를 하는 것이다. 결혼 시장에서 사랑이라는 말을 꺼내면 오히려 이상하게 보일 것이다.
이렇게 조건을 따지고 따져서 마음에 드는 사람을 만나 결혼을 했다면 행복이 보장될까? 이 질문에 100% 보장된다고 말하는 사람을 없을 것이다. 서로를 사랑하지 않아도 결혼은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결혼은 마치 속 없는 만두처럼 맛이 없을 것이다.
결혼은 평생을 함께 한다는 선언이다. 신중하게 선택해야 된다는 것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파트너의 조건만 따지고 제일 중요한 사랑을 빼버리면 도대체 결혼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가? 내 나름대로 이런 현상에 대해 고민해 보았다. 그리고 나의 결론은 자본주의 사회가 만들어 놓은 미디어 세뇌가 원인이 아닐까 싶다. 드라마나 영화, 예능 그리고 소셜미디어에서 보이는 현실성 없는 것들이 사람들의 인식 체계를 망쳐놓고 있다는 뜻이다.
대표적인 방송 프로그램의 예가 ' 슈퍼맨이 돌아왔다.'와 ' 나 혼자 산다'이다. 이 프로그램의 공통점은 바로 출연하는 배우들의 경제력과 생활 수준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일반인들은 도저히 흉내도 낼 수 없는 고가의 제품과 집에서 생활하는 모습이 그대로 노출된다. PPL인 제품도 있겠지만 대중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주기에 충분하다.
이런 박탈감은 질투심으로 변질되고 자신의 처지에 맞지 않는 소비를 하거나 욕심을 부리게 된다. 이는 곧 삐뚤어진 욕망이 된다. 최근에 프리지아 짝퉁 논란이 있었다. 프리지아는 왜 가짜를 입고 명품이라고 속였는가? 이런 허영심을 키운 것은 과연 누구인가? 나는 미디어 사업이라고 생각한다.
명품과 외제차, 고급 하우스 모든 것이 소수만이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객관적인 사실조차 인정하지 못한다면 평생 이루지 못할 것을 쫒다가 생을 마감할 수도 있다. 물질이 아닌 진실된 사랑을 찾아야 한다는 뜻이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 주변에 좋은 사람과 사랑할 수 있는 파트너가 있다면 우리는 행복할 수 있다.
사랑은 행동이다. 즉 생산성 있는 활동이다. 사랑을 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사랑은 자아도취적 자아를 버린다는 선언이다. 나를 버리고 파트너에게 관심을 가지고 돌본다는 뜻이다. 그것은 힘든 일이다. 사랑을 하기 위해서는 부지런해야 한다. 성실하게 관심 어린 애정을 쏟아야 한다. 물론 상대방도 그래야 한다. 그런 사랑을 찾는 것은 얼마나 힘든 일인가. 아마 평생 동안 찾지 못할 수도 있다.
의존적 사랑보다는 각자의 자아를 존중하는 사랑이 올바른 사랑이다. 이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느끼는 사랑은 바로 부모님의 사랑이다. 부모님의 사랑은 단순하면서도 위대하다. 부모님은 자식을 위해 자신의 삶을 희생시킨다. 즉 나라는 자아를 버리고 엄마와 아빠로서 살아가는 것이다. 이런 사랑을 타인에게 요구하면 문제가 발생한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사랑은 합일이지 의존적 사랑이 아니다.
성인이 되고 우리는 언젠가 부모님의 일방적 사랑으로부터 독립을 해야 된다. 부모님의 사랑을 무럭무럭 먹고 자란 아이는 나중에 커서 타인에게 사랑을 나누는 올바른 어른으로 성장한다. 반면 그렇지 못한 아이는 어른이 되어도 잘못된 사랑을 갈망한다. 병적인 애정결핍의 원인은 바로 아동, 청소년기에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해 생긴다.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하더라도 애정결핍을 벗어나 성숙한 사랑을 이룰 수 있다. 자신의 삶을 비관하면 안 된다. 사랑의 시작은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부터 시작된다. 자신을 아끼기 시작하면 모든 것이 변화한다. 자기 계발을 하게 되고 운동을 하며 좋은 음식을 먹는다.
건강한 삶이 시작되면 건강한 관계도 더불어 따라온다. 그리고 타인에게 사랑을 나누어줄 용기와 여유가 생긴다. 우리는 명상, 독서, 일, 운동 등 몰입이 필요한 취미를 가져야 한다. 그리고 자아도취적 성향을 버리고 진심으로 사회와 타인에게 공헌하는 마음을 수행해야 한다.
현대인의 사랑법은 기능적이고 유물론적 사고방식에 너무 치우쳐져 있다. 이것은 자기애적 성향 때문에 더욱 심화되는 형태를 띤다. 아이러니하게 이기적이고 자기애적 성향이 강한 사람보다 외적인 현실에 관심이 많고 사회와 타인에게 공헌하는 사람이 더 행복하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즉 자신만의 세계에 사는 사람보다는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이 더욱 행복하다는 뜻이다. 자신을 가두고 있는 두꺼운 알을 깨고 세상 밖으로 나와야 한다. 우리는 사랑으로 문명을 일궈낸 위대한 인류의 후손들이다. 과거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우리는 사랑을 노래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