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토닥 Apr 25. 2022

조카에게 5천 원짜리 반지를 사줬다

삼촌에게 조카란?

나에게는 두 명의 조카가 있다. 나는 조카 바보라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조카가 어릴 때부터 나는 육아에 함께 참여했었다. 형이 바쁜 탓이었다. 주말마다 조카들을 돌보러 갔었다. 형의 가족은 내 도움이 필요했다. 



아이들은 금방 크는 거 같다. 핏덩이 같았을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대화가 통할 정도로 컸다. 나는 조카들을 보고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조카들의 애교를 보고 있으면 마음이 사르르 녹는 기분이다. 아이들이 주는 행복은 직접 경험해 보지 않고는 알 수 없다.



나는 미혼이고 아이도 없다. 하지만 조카들이 태어나고 내 인생의 방향성이 달라진 것만큼은 분명해 보였다. 나는 조카들을 사랑하고 그로 인해 나도 결혼하여 가정을 꾸리고 싶은 마음이 매우 강렬하게 들었기 때문이었다. 



조카들이 태어나기 전에는 나는 흐리멍덩한 사람이었다. 사실 딱히 열정도 없었다. 의욕도 없었고 흘러가는 데로 살아왔다. 그런데 조카들이 태어나고 나는 변하기 시작했다. 내면의 가치관이 변하는 느낌이었다. 아이들이 준 사랑은 나를 기쁘게 했다. 그리고 조카들에게 멋진 삼촌이 되고 싶다는 마음도 생기게 됐다.



조카들과 관련해서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쭈욱 하고 있었다. 나중에 조카들이 커서 내 글을 읽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는 기대에서였다. 조카들 덕분에 삼촌이 글도 쓰고 열심히 산다고 말하고 싶었다. 글을 통해서 말이다. 남들은 오버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조카들에게 받은 사랑을 진지한 마음으로 감사하게 생각한다. 




5천 원짜리 

플라스틱 공주 반지


곧 있으면 아버지 환갑이 다가온다. 그때를 대비해서 쇼핑몰로 가족 전부가 휴일에 나들이를 나왔다. 조카들은 쇼핑몰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정신이 없었다. 여자 아이 조카는 어린이 반지 코너에 시선을 뺏기더니 그곳에서 한 참을 쭈그려 앉아 있었다. 나는 다가가 이렇게 물었다.


" 00아 이거 가지고 싶어? 골라봐 "


아이는 기다렸다는 듯이 3개를 골랐다. 3개에 5천 원이었다. 인어공주와 신데렐라 그리고 유니콘 반지였다. 조카는 고사리 같은 손에 반지를 이리저리 껴보고 있었다. 


" 00은 뭐가 제일 좋아?"


" 공주!"


조카는 공주를 제일 좋아했다. 반지도 공주를 골랐다. 나는 결제를 하고 아이가 신나 하는 뒷모습을 보았다. 평소 같았으면 절대로 플라스틱 반지에 돈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자타공인 짠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이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웃음이 저절로 나왔다. 아깝지 않고 오히려 기쁘게 돈을 쓸 수 있어서 감사했다.


  

조카는 이리저리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어달라고 애교를 피웠다. 나는 카메라를 켜고 아이가 기뻐하는 모습을 핸드폰에 담았다. 찰각 소리가 나올 때마다 조카는 다른 포즈를 취했다. 그 모습이 사랑스러워서 셔터를 더 눌러댔다. 



나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 나는 많은 것을 놓아버렸다. 더 열심히 살아야 된다는 결론을 냈기 때문이다. 방해가 되는 것은 버리고 앞으로 나가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지금도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스스로 인지하고 있다. 그래서 더 열심히 살려고 발버둥 치고 있다.



조카들 덕분에 육아가 얼마나 힘든지 알게 됐다. 형수님과 형뿐만 아니라 이 세상의 모든 부모님들이 존경스러워 보인다. 아이들이 어엿한 성인이 될 때까지 키워낸다는 것은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철없는 모습을 버리고 스스로 책임감을 짊어지고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가족을 부양하고 삶의 의미를 만들기 위해서다. 



삶의 의미는 생각보다 가까이 있을지도 모른다. 바로 가족의 사랑이다.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사실 그것이 전부가 아닐까? 나는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내 생각에 반감을 가질 수도 있다. 누구나 화목한 가정에서 태어나거나 사는 것은 아니다. 나 또한 불우한 어린 시절을 겪었다. 화목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런데도 나는 화목한 가정을 꿈꾼다. 또한 사랑으로 화목한 가족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나는 언제나 최선을 다할 것이다. 미래에 내가 꾸릴 가정과 조카들, 형제, 부모들과 화목하기 위해서다.  











매거진의 이전글 행복하지 않아도 괜찮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