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을 다닐 때 나에게 이런저런 질문들이 쏟아졌었다. 특히 나는 취미가 뭐냐는 질문에 가장 애먹었던 기억이 있다. 나는 타인과 함께 경험을 공유할만한 취미가 거의 없다. 굳이 취미라고 꼽아보자면 글쓰기와 책 읽기가 전부이다. 취미가 독서라고 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믿어주지 않는다. 당황스러운 사람들의 표정을 보면 내가 더 당황할 때가 많다.
"00 씨는 취미가 뭐예요?"
"아.. 저 뭐.. 독서가 취미예요. "
"아 그래요?"
" 네."
이런 대화 끝에는 항상 무겁고 어색한 침묵이 기다리고 있다. 상대방에게 취미를 묻는 것은 친해지기 위해서이다. 일종의 호감 표시인 것이다. 나는 이 점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호응을 해 줄 만한 취미를 가지고 있지 않으니 난감할 뿐이다. 타인의 호의를 감사하게 생각하고 적극적으로 대화를 이어나가고 싶지만 함께 공유할 만한 취미가 없다.
나에게 있어
최악의 취미는
볼링이다
사람들은 다양한 관심사를 가지고 살아간다. 나 또한 좋아하는 관심사와 분야가 존재한다. 특히 독서와 글쓰기를 매우 좋아한다. 그런데 책 읽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글쓰기 또한 마찬가지였다. 독서 모임을 나가볼까 생각해봤지만 용기가 나지 않는다. 책을 읽고 서평을 남기는 것을 즐겨하지만 사람들을 만나서 토론하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취미를 하나 만들어봐야 하나 진지하게 생각을 했었다. 과거 전 직장에서 볼링을 치러 갔었다. 나는 볼링을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왜냐면 볼링을 칠 차례가 되면 뒤쪽에서 모두 나를 지켜보고 있기 때문이었다. 주목받는 걸 부담스러워하는 나로서는 볼링은 최악의 취미였다. 그런데 첫 회식에서 대표님은 볼링을 치러 가자고 공지를 해버린 것이었다. 나는 신입인데도 불구하고 적극적으로 반대의사를 표현했다.
회식 날짜는 목요일이었다. 그 많은 인원이 볼링을 치면 2시간이 족히 걸리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밥을 먹는 시간은 훨씬 늦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아직 친하지도 않은 동료들과 볼링을 치는 일은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그래서 적극적으로 반대를 했고 다른 놀거리를 하자고 제안했다. 당연하게도 내 의견은 기각되었다. 회식만으로도 불편한데 볼링까지 치러가는지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다.
그렇게 볼링을 치러가서 나는 곤혹스러운 경험을 하게 됐다. 친한 지인들이나 가족들과 게임을 하면 잘 굴러가던 공이 어째서인지 자꾸 옆으로 빠졌다. 나는 식은땀을 뻘뻘 흘렸다. 그리고 상사는 나를 혼냈다 "이렇게 저렇게 자세를 똑바로 하면 잘 굴러간다. 제대로 해봐라" 볼링을 치면서도 인사 평가를 받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만약 볼링을 프로처럼 잘 쳤으면 어땠을까 하고 상상도 해보았다. 하지만 현실은 식은땀을 흘리고 있는 가엾은 신입사원에 불과했다.
취미를 억지로 하나
만들어야 하나?
나는 상사에게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 00 씨는 뭐하면서 살아온 거야?" 나는 애써 표정관리를 하며 그러게요라고 답할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나는 조금 다른 길로 들어섰고 지금도 평범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다만 평범하지 않다고 해서 비난받거나 이상한 사람 취급받을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볼링을 못 치고 취미가 대중적이지 않다고 해서 들을 말은 아니었다. 나는 취미가 있었다. 그리고 나는 분명하게 말했다. 저는 책 읽는 걸 좋아해요! 그런데 아무도 그 말을 믿어주지 않았다. 아마도 내가 이미지를 관리하기 위해 독서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걸로 생각하는 듯했다. 내 외모와 독서가 매칭이 안될 수도 있다.
" 왜 취미가 없느냐." "뭐하면서 살아온 거냐." "무슨 재미로 사냐" 같은 말을 들을 때면 스트레스를 받는다. 나는 분명히 취미를 말했는데도 사람들은 신경 쓰지도 믿어주지도 않는다. 내가 술, 담배도 안 한다고 하면 소스라치게 놀란다. 나는 이제 그런 반응들이 익숙하다.
너는 뭔가 우리랑 다르다 라는 경계의 시선을 아주 오랫동안 받아왔었다. 그렇다고 해서 고독해지거나 외롭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라는 사람을 버리고 다수의 취미 생활을 쫓아다니며 산다면 그게 더 불행할 거 같았다. 다수가 좋아한다고 해서 내가 꼭 그 취미를 좋아할 이유는 없다. 내가 남들과는 다르고 특별하다는 같잖은 우월감 때문이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취미가 있고 그것이 극 소수들만 즐기는 취미라도 해도 그 취미를 즐겨하겠다는 선언이다. 여기서 우월감 같은 감정은 전혀 없다. 오히려 나는 대중들이 좋아하는 취미를 즐기고 싶다. 그런데 내가 땡겨하지 않으니 못할 뿐이다. 가끔은 다수가 좋아하는 것을 왜 즐기지 못할까 스스로를 탓할 때도 많았다. 특히 축구나 게임 같은 대중적인 취미에도 흥미가 생기지 않았다.
이는 친구를 사귀는데 치명적인 문제가 되었다. 함께 공유할 만한 경험과 취미 이야기를 나는 할 수 없었다. 그래서 항상 무리에서 겉돌거나 나와 비슷한 소수의 사람들과 친구가 되곤 했다. 이는 어른이 되어서도 문제가 됐다. 억지로라도 대중들이 좋아하는 취미를 해야 되나 심각하게 고민을 할 정도였다. 나는 지인 때문에 야구장에 간 적이 있었는데 너무 재미가 없었다. 사람들은 춤을 추고 치킨과 맥주를 즐기며 환호하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자리에 앉아 심드렁한 표정으로 공놀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 아... 집에 가고 싶다."
야구장에 대한 내 솔직한 심정이었다. 오히려 야구장에서 열심히 응원하는 사람들이 너무 부러울 지경이었다. 나도 저렇게 적극적으로 열정적인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나라는 사람이 그걸 허락하지 않았다. 내면 깊숙한 곳에서 흥이 올라와야 되는데 그것이 불가능했다. 스스로를 속일 수는 없었다. 지인을 위해 신나는 척 연기를 할 수는 있었다. 그런데 진정한 의미로서 함께 즐거운 경험을 공유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나는 야구장을 좋아하는 지인과 점점 멀어질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취미가 꼭 있어야 되는 건가요?
친해지고 싶은 이성이 있다면 같은 취미를 즐기면 된다. 같은 취미를 공유하는 사람에게 경계심은 생기지 않는다. 사람은 누구나 나를 제일로 중요하게 생각한다. 내가 좋아하는 걸 타인도 좋아한다면 동질감을 느끼고 함께 하고 싶다는 욕구를 느끼게 된다. 대중적인 취미를 하나쯤 가지고 있으면 좋은 것이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스트레스를 받아가며 취미를 억지로 만들 필요는 없다. 먼지만큼도 흥미가 없는 취미에 시간과 비용을 투입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짓도 없다. 그것이 타인에게 호감을 얻기 위해서라면 더 그렇다. 자신이 원하고 재밌어하는 일을 창피해하거나 남의 시선들을 두려워할 이유도 없다. 자신 있게 자신이 좋아하는 취미를 즐기면 된다.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말이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즐길 수 있는 취미라면 무엇을 하든 상관없다. 자신이 진정 좋아하는 취미를 즐기자.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말이다. 인생은 짧다. 취미를 통해 나를 들여다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내가 진정 좋아하는 취미가 무엇인지 그리고 열정이 샘솟는 취미가 있는지 고민해봐야 한다.
취미는 나를 좀 더 나답게 완성시켜주는 도구가 되어준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자신만의 슬기로운 취미 생활을 즐겼으면 하는 바람이다. 취미에서 조차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지 말자는 뜻이다. 나는 당신만의 작고 은밀한 취미생활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