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을 막는 것은 행동을 앞당긴다
행동을 막는 것이 행동을 앞당긴다.
길을 막는 장애물이 길이 된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우리의 삶에서 시련은 필요하지 않을까? 살다 보면 필연적으로 겪는 장애물과 고통, 고독함, 무기력함은 정말로 의미가 없는 걸까? 생각하기 나름이겠지만, 나는 분명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인간은 시련을 통해서만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시련과 고난이 없는 인생은 안타깝고, 애처롭기까지 하다. 왜일까? 이는 곧 외부의 힘에 의해 통제당하는 삶이며, 자신의 가능성을 찾아 나서고,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모조리 빼앗기기 때문이다. 이것은 시련 없이 자란 아이들이 버릇이 없고, 어른이 돼서는, 부모 세대가 모아놓은 재산을 함부로 탕진하는 원흉이기도 하다.
물론 억지로 시련과 고난 속으로 뛰어들 필요는 없다. 분명 이 세상에는 겪지 않아도 되는 고통도 존재하는 법이다. 그러나 자신의 힘을 키우고, 사회적으로 존재감을 확인받고, 역량을 발전시키고, 영향력을 확장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시련이 따를 수밖에 없다.
결국 스스로 선택한 시련과 고난만이, 의미 있는 고통이 될 것이다. 반면에 남이 부여해준 시련은 불필요한 고통만이 따를 뿐이다. 따라서 우리가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시련과 고난을 완전히 없애버리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한 시련과 고난을 통해 성장하는 것만이 행복의 본질이 될 것이다.
미국의 건국 아버지인 벤저민 프랭클린은 이렇게 말했다. " 우리는 상처를 통해 배운다. " 인간은 시련과 고난 없이는 성숙해질 수 없으며, 타인의 마음을 진심으로 공감할 수도 없다. 그러므로 상처가 있는 사람만이, 진심으로 타인을 공감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성숙함에 다가설 수 있는 것이다.
온실 속 화초처럼 자란 사람들은 작은 상처에도 큰 재앙처럼 느껴진다. 반면에 야생 같은 환경에서 자라온 사람들은 웬만한 상처에는 끄덕도 하지 않는다. 강인해지기 위해서는 완벽하게 통제된 환경에서 지낼 것이 아니라, 시련을 극복할 수 있는 무대로 뛰쳐나가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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