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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마스테 Jul 25. 2020

Grandparents Day


Grandparents Day


북부 도시 해밀턴. 아이들 학교에서는 한국에서는 생소한 여러 행사들을 했다. 나라 간 다양한 행사를 선보이는 International culture day, 교복을 벗고 정해진 색깔 별로 입고 오는 School color day, 전교생이 학교 주변을 맨발로 뛰는 Cross country 대회가 있다. 인상 깊었던 행사는 학교에 다니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위한 행사였다. 학교 행사를 참석해서 나에게는 낯선 '조부모님의 날'을 지켜보고 싶었다. 학교 안내문에는 누구든지 환영이라고 했지만 혼자 가기에 사실 내가 가도 될까 싶었다. 그냥 나섰다. 학교 정문 앞에서 항상 볼 때마다 먼저 인사를 해 주는 인도 출신 학부모 Helena를 만났다. 아이들이 하교할 때 학교 놀이터에서 놀고 가곤 했는데 놀이터에서 기다리면서 알게 된 학부모다.


Helena와 함께 행사장소인 성당으로 같이 걸어갔다. 물어보지 않아도 Helena는 친절하게 '내가 매년 조부모님의 날을 빠지지 않고 오는 이유는 인도에 아직 살아계신 90세의 할머니가 생각나서'라고 한다.  보통 학교들은 2년마다 행사를 진행하는데 아이들 학교는 매년 한다고 했다. 할머니 할아버지들 이외에 누구나 다 올 수 있다고 했다. 이 날을 위해서는 다른 도시나 다른 나라에 살고 계시는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오시는 분도 있다고 하니 조금 놀랐다. 이 기회를 통해서 손자, 손녀의 학교생활을 응원 해 주기도 하고 아이들은 조부모님과 함께 추억을 만든다. 조부모님들은 여러 마음이 교차할 것 같았다. 어렴풋이 당신들의 학교 생활이 생각나기도 했을 테고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못한 분도 계실 것이다. 당신들의 자녀를 학교를 보낼 때도 생각이 나시겠지.


학교 성당에서

미사 그리고 모닝티 타임


천주교 학교인 만큼 미사를 드리는 것으로 시작했다. 초등학교 전교생. 그리고 할머니 할아버지들. 희끗희끗 한 분부터 순백의 머리칼을 같고 계신 분까지 한자리에 모였다.  신부님과 교장선생님은 할머니 할아버지와 있었던 자신의 추억에 담긴 이야기를 들려주시는 듯했다.



미사가 끝나고 학생들과 조부모님들은 학교의 강당으로 향한다. 나와 Helena도 같이 강당으로 따라간다. 학부모  Helper가 음식을 준비하고 선생님과 아이들이 세팅을 돕는다. 직접 정성스럽게 준비하신 모닝티 타임이었다. 정성 가득한 쿠키, 샌드위치, 브라운, 머핀을 함께 한다. 아이들은 직접 음료수를 따라드리고 티슈도 갖다 드린다. 본인의 조부모님이 아니더라도 필요한 것은 없는지 알뜰하게 챙긴다. 아이들이 행사를 돕는 것 그리고 교장선생님은 '권위'따위는 없고 같이 어울리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담임선생님들도 같이 티타임을 즐긴다.  아이들이 학교생활을 어떻게 하는지 선생님은 할머니 할아버지께 이야기를 들려주고 조부모님은 끄덕이며 들으신다.


 

학교 강당에서


점심시간이 끝나고 아이들이 강당에서 학년별로 공연을 하는 순서였다.  내 뒤에도 몇몇 할머니들이 계셨다. 바로 뒤에 앉아계신 분이 눈에 띄었다. 손자 손녀들의 어설픈 공연을 보면서 감회가 새로운지 눈물을 훔치는 소리가 들렸다. 티슈라도  필요하신 건 아닐까 염려되어 내가 살짝 미소를 지으며 쳐다보았다. 물어보지 않았는데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며 grand grand mother라고 하신다. 손주들이 벌써 이렇게 자란 걸 보시며 감정이 벅차시지 않을까. 감정의 한 자락을 같이 느껴본다. 9시 45분에 시작한 학교 행사는 2시 45분에 마쳤다. 끝까지 함께 하지는 않았지만 조부모님들은 손자 손녀들과 따뜻한 시간을 보냈겠지.


Grand Gradn Children의 공연을 보며 연신 눈물을 흘렸던 할머니의 곡진한 인생을 짐작해 본다.







나의 할머니


키위 할머니의 왜소한 몸집, 작은 얼굴, 움푹 들어간 눈 그리고  세월진 주름을 보니 고등학교 때까지 같이 살던 '나의 할머니'가 떠올랐다. 6명의 고모님들 즉 딸들과 우리 아버지인 단 하나뿐인 아들. 남성 중심사회에서 교육의 기회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살아온 할머니의 굴곡진 삶을 생각해 본다. 인생에서 할머니 자신은 있었을까. 할머니의 아들사랑은 아버지에서 나의 오빠에게로 고스란히 전해졌다. 남아선호 사상이 강했던 할머니에 대한 나의 감정은 서운함, 속상함, 억울함, 후회 같은 부정적인 단어들이었다. 하지만 아이를 키우면서부터 어느 순간 할머니의 인생이 한 여자의 인생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여성으로서 주어지는 과다한 몫과 억압된 삶. 어느 순간 부터 물감이 스미듯 애잔함, 안쓰러움 그리고 이해가 나의 얼었던 감정들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지기 시작했다. 


'왜' 인지는 모르겠다.  할머니가 나를 따뜻하게  보살펴 준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은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후부터이다. 마음을 활짝 열지는 못했지만 나를 지켜주는 것 같은 '나의 할머니'를 생각해 보는 겨울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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