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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마스테 Jul 13. 2020

벼룩, 한 놈만 문다


동전파스 


아프거나 관절이 쑤시는 곳이 생길 수도 있겠지. 병원에 가기 힘드니 친정엄마에게 남대문 가는 길이 있으면 동전파스를 사달라고 부탁을 했다. 얼마 후 어마 무시한 양을 국제택배로 보내주셨다. 동전파스는 살색의 동전 모양으로 생겼다. 100원짜리 동전 만한 것. 조금 더 큰 것은 500원짜리 동전만 한 것.  뭉쳤을 때나 쑤시는 곳에 붙이면 약간의 통증을 유발하면서 시원하다. 


동전파스를 가지고 와서 이렇게 쓰일 줄이야


아이에게 물린 곳을 얼음찜질을 해 주고 가려움이 가라앉으면 한국에서 가지고 온 동전파스를 붙였다. 그날도 아침에 일어났는데 아들만 벼룩에 물렸는지 심하게 가렵다고 팔짝팔짝 뒤기도 하고 바닥에 누워 대굴대굴 굴렀다. 분홍색으로 부풀어 오르고 가운데에 아주아주 작은 검은 점이 생겼다. 물린 자국은 마치 따라오라는 듯 징검다리처럼 선을 이어서 따라갔다.


 “많이 가려워?” 

“어. 죽을 것 같아. 가려워서.” 


가려워서 죽겠다니. 너무 안쓰러웠다. 물렸을 때마다 딸아이와 같이 세어보았다. 몇 개나 물렸는지. 일주일 동안 50군데 정도는 되는 것 같았다. 아들은 전염병이 아닌지 두렵기까지 한 것 같았다. 전염병이면 누나도 걸리고 엄마도 걸렸을 거라며 괜찮다고 아들을 안심시켰다. 

    


한놈만 문다


아들이 벼룩에 물리기 시작한 것은 다음 주에도 지속이 되었다. 아무도 물리지 않았다. 딸도. 나도. 아들만 지속적으로 물렸다. 정말 ‘한 놈만 문다’였다. 아니 벼룩이 무슨 아들에게 원한이 있는 것도 아니고. 


'비겁하게 숨어있지 말고 나와라!'

'이 보이지 않는 것들아!' 

'왜 가장 어린 아들만 무냐.' 

'차라리 나의 팔을 내주마.'  


이불을 모조리 꺼내서 가장 뜨거운 물에 빨아 햇빛에다가 말렸다. 옷도 모조리 다 꺼내서 햇빛에 널어놓아 살을 뚫고 들어올듯한 햇살에 일광욕을 시켰다. 용량과 힘이 부족한 늙어버린 세탁기도 자기 몫을 톡톡히 했다. 카펫 샴푸도 마쳤다.  얼룩지고 눌려버린 카펫은 다시 태어난 듯 뽀송뽀송해졌다. 마트에 가서 제일 비싸고 좋아 보이는 빨간색 플리 밤(Flea Bomb)도 사 왔다. 강렬한 빨간색이 플리 밤들을 마치 다 없애 버릴 것 같았다. 플리 밤 뚜껑을 열고 흰색 단추 같은 것을 힘껏 눌렀다.  요술램프 지니가 나올 듯 매캐한 뿌연 연기가 ‘취이이~~~ 이’ 소리를 내면서 허공을 향해 내뿜기 시작했다. 안방에 하나, 작은방에 하나 그리고 거실에 하나. 연기가 나가지 않게 창문을 꼭 닫는 것은 필수였다. 007도 아니고 CSI도 아니고 도둑도 아니다. 그저 입과 코를 막고 현관문을 열고 신속하게 집 밖으로 빠져나온다. 플리 밤을 터트리면 3~4시간 이후에 들어가야 한다고 들었다. 밖에서 시간을 보냈다.

 

'다 죽었을까?' 


4시간 후 집에 들어갔다.  이불과 옷은 모조리 꺼내 다시 햇빛 소독. 주변에서는 고온에 죽지 않을 수도 있으니 이불과 옷을 모조리 다 버려야 한다고 하기도 했다. 벼룩 잡느라 초가삼간 태운다더니 그 말이 딱 맞았다.     

     


Welcome to Newzealand


아들이 벼룩에 물린 것 같다면서 담임선생님께 이야기하니 들은 말이었다. 같이 운동하는 친구들에게 아들이 벼룩에 물린 것에 대해 이야기했다. 한국인 친구는 예전에 자기도 빨래방에 가서 옮아온 것 같다며 빨래방에 가서 절대 세탁하지 말라고 귀띔해 주었다. 벼룩시장에서 싸게 건져온 겨울 코트에서 진짜 벼룩을 옮아왔다면서 절대 그런 곳에서는 옷을 사는 게 아니라고 손사래를 치는 일본인 친구도 있었다. 시내에 원예 파는 곳에 가면 각종 벌레를 죽이는 약을 판다고 했다. 숙주를 죽이는 법에 대한 각자의 방법을 이야기한다. 어떤 분은 레몬을 몽땅 짜서 스프레이통에 놓아 레몬 물을 온 집안에 뿌리라고도 했다. 무당벌레 같은 벼룩의 천적을 잡아다가 풀어놓으라고 한 키위 할머니도 있었다. 현타가 왔다. 이 정도면 ‘벼룩 괴담’이며 밤마다 나타나는 ‘벼룩 귀신’에 가까웠다.      





머릿니가 생기다


달 전에는 딸아이의 머리에 머릿니가 생겼다. 머리를 미친 듯이 긁고 있는 아이를 보고 깜짝 놀랐다. 청정국가이니 Lice(머릿니)도 살 수 있는 환경이라고 하던데 직접 경험하니 별별 체험이 다 있다 싶었다.  마트에 가니 웬만한 머릿니 제거 샴푸는 종류별로 다 팔아서 더 깜짝 놀랐다. 샴푸하고 나서 대기시간이 가장 짧은 것으로 사 왔다. 샴푸 냄새를 맡으니 지독한 약 냄새가 났다. 빗, 스프레이까지 있는 종합세트를 사 왔다. 머릿니가 금방 제거되지 않아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벼룩에 비하면 머릿니는 양반이다.


 


모기는 양반


남편과 이집트 여행 갔을 때였다. 카이로에서 4시간을 차를 타고 바하리야 사막으로 달렸다. 수만 년이 만들어낸 자연의 풍화 작용인 검은 사막, 흰 사막, 크리스털 사막을 차를 타고 누볐다. 밤에는 배두인이 운영하는 호텔로 갔다. 사막에는 밤에 춥기 때문에 긴 바지를 입고 있었고 발등이 보이는 신발을 신고 있었는데 발 등에만 50군데 정도 모기에 물린 적이 있었다. 쏟아지는 별이 보이는 하늘은 너무 아름다웠고 나의 발등이 그야말로 별, 위성, 소행성이 존재하는 천체였다. 그래도 가려움의 정도는 모기가 귀엽다고 할 수 있다. 모기의 10배쯤 더 가려운 벼룩에 비해서는 말이다.




벼룩이 아닐 수도 있다?


주변에 물어보니 Flea(벼룩)이 아닐 수도 있다는 말은 더 무서웠다. 베드 버그(빈데), Scabies(옴)의 가능성도 있을 것 같다고 했다. 결국 병원 가서 벼룩인지 아닌지 확인부터 하고 싶었다. 병원에 가서 의사를 만났다. 키가 크고 팔다리가 엄청나게 긴 할아버지 의사. 리셉션까지 나와서 꾸벅 인사를 한다. 의사는 아이의 상태을 확인해 보았다.  고양이나 강아지를 키우는지 물어봤고 언제부터 그랬는지 그리고 다른 사람은 물리지 않았는지 천천히 물어보았다. Flea(벼룩)이 맞다고 했고 가려움을 완화해 주는 약을 바르는 것밖에 해 줄 수 없다고 했다. 등록비&진료비는 78불(약 6만 원), 약값 35불(약 3만 원)     



벼룩 소동이 끝나다


그 이후로 플리 밤을 한두 번 더 터트렸다. 아이는 더 이상 물리지 않았고 벼룩 소동은 끝이 났다. 아이의 몸에는 검은빛 상처가 생겼다가 옅어지더니 몇 개월이 지나니 완전히 깨끗해졌다. ”한 놈 만 무는 “ 벼룩. 그 질긴 벼룩이 어디서 붙어서 옮아왔는지 지금도 알 수 없었다.


그 집요함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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