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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마스테 Jul 27. 2020

대접받는 감기

느린 이들의 감기를 대하는 자세


'똑. 똑. 똑'

주차장에서 차 소리가 들리더니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현관까지 걸어가는 것도 지쳐서 무겁게만 느껴지는 내 몸이다.

"타국에서 아프면 서러워요. 이거라도 받아"

"이게 뭐예요?"

"마누카 꿀 넣고 계피 생강차 끓였어요. 나 바쁘니까 갈게'


20년 가까이 정착해서 살고 있는 지인. 언니는 오전에는 초밥집에서 아르바이트로 일하느라 바쁠 텐데. 내가 아픈 건 어떻게 알았을까.  바쁘다고 총총거리며 다시 차에 올라탄다. 그녀의 등을 바라본다. 현관문을 닫는다.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지독한 몸살감기


첫째가 2주 넘게 감기로 고생하더니 며칠 전부터는 둘째까지 고열로 심하게 열이 올랐다. 열이 40도 가까이 되자 응급실에 가야 하나 걱정이 되었다.  미지근한 물에 수건을 적셔서 아이의 몸을 닦아주다가 나도 같이 잠이 들었다. 밤새 추웠는지 한국에서 가지고 온 핫팩 두 개를 꺼내서 잠이 든 모양이다. 불쌍하게 새우처럼 자고 있는 아들.  아이들이 감기가 다 낫자 그다음엔 바로 나에게로 이어지는 감기몸살. 뉴질랜드는 공기가 좋아서인지 코가 막히는 현상은 신기하게도 없었다. 지독한 몸살감기이었다.


감기가 오래간다 싶었다. 홈닥터, 즉 지피라고 부르는 가정의학과 가정의로 갔다.  겨울 감기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니 잘 쉬면 괜찮을 거라는 무심한 의사의 말. '물을 많이 마시고. 잘 쉬어라. 겨울에는 다들 아프다.' 아무 말 대찬 치일까? 의사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처럼 들린다. 게다가 진료비와 약값은 비싸다. 비용은 진료비와 약값까지 하면 비용은 60달러 이상. 약 5만 원 정도면 한국에 비해 많이 비싼 편이다. 한국의 의료시스템이 생각 날 수밖에 없다. 뉴질랜드의 의료시스템은 암이나 교통사고 상해 치료는 무료이지만 의료의 수준은 한국보다 많이 떨어진다.  하지만 감기와 같은 1차 진료는 유료이다. 처음에는 이들의 의료 시스템이 너무 마음에 안 들었다. 한국은 진료비도 저렴하고 약도 잘 처방해주는데 말이다. 항생제가 면역력에도 좋지는 않고 여러 부작용이 있겠지만 아픈 사람 입장에서는 '빨리빨리' 나아지고 싶다.  온 지 얼마 안 된 사람에게는 참 적응하기 힘든 시스템이었다.



그저 쉬다


한국에서 가지고 온 한 무더기의 약이 바닥 구석에 무심하게 놓여있다. 감기약, 설사약, 복통약, 해열제, 알레르기약, 각종 연고, 대일밴드.  한국과 바이러스 내가 다르니 약을 복용해도 큰 효능이 없을 거라는 지인의 말이 맞는 것 같다. 뜨끈한 설렁탕이나 매콤한 짬뽕이라도 먹으면 조금 더 나아질 것 같았다. 죽이라도 먹으면 나을 텐데 그런 것은 호사이다.  뉴질랜드에서 가장 흔하게 먹는 감기약이 파나돌(Panadol)이다. 그저 종합감기약 & 진통제 역할을 하는 약이다. 파나돌을 먹었다. 지인이 끓여다 주는 계피 생강차와 레몬 꿀차도 꾸준히 마시면서 쉬었다. 쉬고 또 쉬었다.  2주 정도 지나자 싹 나아졌다.



고작 감기에 갈렸다고


딸아이가 친구 Henna와 Play date를 하는 어느 날이었다. 차로 10분 정도인 Henna네 집으로 딸아이를 데려다주었다.  오래된 집이지만 넓은 정원에 큰 트램펄린에 강아지와 닭 몇 마리를 키우고 있었다. 평소와는 다르게 문 앞에 Henna의 아빠가 마중을 나왔다. 특유의 영국 발음. 딸아이가 Henna의 부모님은 런던에서 왔다고 한 말을 기억해 냈다. 작은 키에 푸른 눈을 가진 그는 반갑게 인사를 했다. 연이어 '아이 엄마가 감기에 걸렸다.  내가 며칠 휴가를 냈다'라고 했다. '아이들이 잘 놀 수 있게 내가 지켜볼 테니 걱정 말라'며 안심시켰다. 내가 '어서 낫기를 바란다고 하며 그럼 Henna의 엄마는 지금 어디 있냐'라고 물으니 방에서 쉬고 있다고 말했다. 고작 '감기'에 걸렸다고 아이의 아빠는 휴가를 내다니. 더군다나 몇 발자국만 나오면 현관일 텐데 '감기 걸린 그녀'는 방에서 나와보지도 않았다.

 

타우랑가에서


휴가는 호사


아파도 콜록 거리며 지하철을 타고 직장 갔었던 때를 떠올린다. 흔한 감기 정도는 빨리빨리 병원에 가서 약을 먹고 출근을 해야 했다. 동네 내과에는 '비타민 주사로 감기 타파'라는 문구가 쓰여 있는 포스터를 본다. 휴가는 어불성설이다. 감기가 다 나을 때까지 기다려 주는 회사는 없다.  반면 한국과는 다르게 뉴질랜드에서 감기는 ' 무조건 쉬어야 하는 병'이다. 학교 선생님도 감기에 걸리면 안 나오셔서 다른 선생님이 대신 근무를 해서 깜짝 놀랐다. 아이들은 학교에 못 간다.  직장인들도 마찬가지다. 독감이 아니라 그냥 감기라 하더라도 말이다.  이들은 병원에 가도 특별한 게 없으니 집에서 잘 쉰다. 생강이나 레몬에 마누카꿀을 넣어 차를 마시고 참고 견딘다.



느린 이들의 감기


감기가 폐렴으로 이어질도 있기 때문에 이들의 '느린'의료 시스템은 또 단점이 있기도 한다. 하지만 감기는 쉬면 낫는 병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저 나을 때까지 기다리면 신기하게도 몸에서 면역력이 생긴다. 그리고 정말 '느린'이들은 감기가 나을 때까지 모두들 기다려 준다. 


묵묵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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