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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마스테 Jul 19. 2020

한밤중, 누군가



쾅쾅쾅!!!


쾅쾅쾅!!

....

쾅쾅쾅!!


폭우가 내리는 7월 어느 겨울밤.  안방에서 자고 있는데 밖에서 무슨 소리가 들린다. 누군가가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였다. 밤에는 가로등이 거의 없는 깜깜한 뉴질랜드. 집에 있는 모든 창문은 두꺼운 암막 커튼이다. 불을 켜지 않으면 칠흑과 같은 암흑. 일어나서 더듬더듬 벽을 짚으며 안방의 불을 켠다. 


다시 쾅쾅쾅!  거실로 가서 불을 켠다. 몇 초 망설인다. 현관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나는 집안에 있고 자정이 가까운 시간에 누군가는 문을 두드린다. 누구지?  망설이다가 운을 뗀다.


"Who's there?"

"Li...."




폭우가 쏟아지다


그날따라 무섭게 폭우가 쏟아져 내렸다.  알아들을 수가 없다. 몇 주 전이었다. 주택 침입 예방에 대한 기사를 읽었다. 창 밖으로 수상한 사람과 이웃들이 들리게끔 소리를 치라는 내용이었다. 수상한 사람이 듣고 놀라서 도망갈 수도 있고 이웃들도 이 상황을 듣기 때문이다. 소리치기가 불안하다면 경찰에 신고하라는 기사였다. 이야기를 못하는 상황이어도 끊지 말고 전화 상담원에게 "I can't talk right now"라고 소곤대라는 기사 내용이었다. 한 달 전쯤인가. 실종된 40대 여성이 와이카토 강변에서 발견되었다는 신문기사도 읽었다. 뉴질랜드는 비교적 안전한 나라라고 하던데 가끔 그런 뉴스는 들린다.  



옆집, 앞집, 뒷집 목젖이 보일라 최대한 크게 소리쳤다. "Who's there?" 빗소리 때문에 소용없었다.

"Light... on..."  소리를 크게 쳐도 폭우 때문에 남성인듯한 목소리는 모기소리처럼 들렸다. 차에 무슨 문제가 생긴 것 같은 직감이 들었다. Chain Lock을 믿었다.  현관문을 조금만 열어도 Chain Lock 이 있기 때문에 조금 열어서 이야기할 수 있다.  아이들은 자고 있었다. 휴대폰을 들었다. 긴급전화 111만 눌렀다. Call은 누르지 않은 상태. 왼손에 휴대폰을 들고 오른손으로 문을 살짝 조금씩 열었다. 나는 가까스로 발걸음을 떼었다.

얼굴 빼꼼히 내밀었다.





© qrenep, 출처 Unsplash




검은 큰 그림자


현관문을 열면 자동으로 현관 등이 켜졌다. 무심하게 쏟아져 내리는 비. 어두컴컴한 흑빛의 밤. 밖에는 무언가가 있었다. 큰 검은 그림자처럼 보이기도 했다. 종아리까지 내려오는 검은색 우비를 입은 남자가 앞에 떡하니 서 있었다. 모자가 달린 우비. 모자를 푹 뒤집어쓴 그 남자. 현관 등은 깜깜한 밤에 그의 얼굴을 더욱 밝게 비추었다. 비를 맞은 축축한 얼굴. 우비에 달려있는 검은 모자를 쓴 그는  30대 후반이나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키위 남자. 이건 공포영화다. 다리에 힘이 탁 풀렸다.


우비를 입고 있었던 그 남자는 다행히도 나를 안심시키려는 듯 웃었다. 어두웠지만 얼굴을 보니 안면이 있는 얼굴 같았다. 같은 타운하우스에 사는 이웃이었다. "The light on your car."  순간 밖에 주차되어있는 차를 보았다. 라이트가 켜져 있었다. 한국이라면 '빨리빨리' 보험 처리했을 텐데 여기에서는 어찌해야 하는지 알 길이 없었다. 아이들을 학교까지 데려다주려면 차는 필수였다.  너무 감사하다고 말하면서 굳게 닫혀있던 Chain Lock을 풀었다. 문을 활짝 열었다. 강철 같은 마음의 문도 활짝 열렸다.  키위 남자는 아까부터 지켜봤는데 그래도 이야기해야 할 것 같다고 하는 듯했다. 한밤중에 문을 두드렸다면서 미안하다고 몇 번을 말했다. 강도일까 도둑일까 의심하는 것은 당연하지 하면서도 부끄러움과 고마운 마음을 한 움큼 삼켰다.  폭우가 쏟아지는 한밤중에 우비를 챙겨 입고 터벅터벅 걸어왔을 그를 생각하니 너무 고마웠다.





© brett_jordan, 출처 Unsplash



중저가 타운하우스


내가 사는 집을 중저가 타운하우스라고 하면 맞을까? 타운하우스라고 하면 바닷가에 2층으로 된 흰색 고급형 빌라를 연상하지만 그런 집은 아니었다. 뉴질랜드는 주택의 특성상 아파트나 빌라가 거의 없다. 키위들이 단독주택을 선호한다.  방 2개, 화장실, 거실, 주방으로 구성된 우리 집을 보통 2 bed라고 불렀다. 각 집의 현관문이 주차장을 마주 보게끔 설계되어 있다.  가족단위인 집보다는 커플, 하우스 메이트, 마오리 가족, 노부부 가 살았다. 집 맞은편에는 사이프러스 나무들이 줄지어 길게 쭉 뻗어 있다. 고흐는 해바라기에도 매료되었지만 대지를 뚫고 길게 뻗은 사이프러스에게도 마음을 빼앗겼나 보다. 고흐는 동생인 테오에게  '난 밀밭이나 사이프러스 나무를 가까이 가서 들여다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외에 다른 아무런 생각이 없다. 사이프러스 나무들은 항상 내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것을 소재로 <해바라기> 같은 그림을 그리고 싶다' 고 말했다고 한다.  <사이프러스 나무가 있는 길>은 그렇게 세상 밖으로 나왔나 보다. 사이프러스 나무길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 것을 보면 나도 고흐처럼 그 나무에 매료되었나 보다. 그 나무들 사이에서 아침마다 울리는 새소리 때문에 일어날 수밖에 집.





© Free-Photos, 출처 Pixabay



나의 이웃들 


입구 쪽에 있는 마오리 가족은 항상 거실에 TV가 켜있고 주차장에는 쓰레기 조각들이 꼭 한두 개씩 널러 다녔다. 휴지조각, 콜라 페트병 , 뜯어진 과자봉지. 웬만하면 치우지 않을까 싶었는데 그건 내 마음이었나 보다.  보통 걸어 다니지 않기 때문에 집 앞에 주차가 되어 있으면 사람이 있고 차가 없으면 ‘아, 아직 퇴근을 안 했나 보네’ 다른 차가 주차되어 있으면 ‘오늘은 친구가 놀러 왔나 보다’ 했다. 각각 양쪽 옆집에 키위 커플들은 이른 아침에 출근을 하고 오후 4시쯤에 퇴근했다. 그들은 눈이 마주치면 가볍게 인사하고 일부러 눈을 마주치지 않은 경우도 많았다. 현관 앞집에는 나이 드신 동양인 커플이 살았다. 매일 그렇듯 눈이 마주치면 친절하게 인사하는 분은 앞집 몽골 출신 아저씨였다.  부끄러움을 많이 타고 소심한 나는 한두 집을 제외하고 보통 먼저 가서 말을 걸거나 인사를 하지는 않았다. 그게 나만의 소통 방식이었나 보다.



한밤중에 문을 쾅쾅 두드렸던 키위 남자. 아직도 사이프러스 나무길이 있는 그 집에 살고 있을까? 


새소리로 아침을 시작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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