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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마스테 Jul 29. 2020

꿔다 놓은 보릿자루

플레이 데이트 (play date)



아이들이 학교 생활을 하다 보면 플레이 데이트 (Play Date)에 초대를 하기도 하고 받기도 한다. 보통은 아이만 데려다주고 시간에 맞춰 데리고 온다.  플레이 데이트 날, 첫째 아이를 차로 10분 정도 되는 G집에 데려다주었다.  평소에 항상 먼저 친절하게 인사하는 G의 엄마, K. 따뜻하게 안아주는 그녀와 환영에 긴장이 풀어진다. 아이는 벌써 폴짝거리며 집 안으로 들어간다.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나오려는 상황. 이내 들어와서 차를 마시고 가라고 손짓하며 권유했다. "Come and join!"  이번에는 호의를 거절하기가 힘들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테이블에 아이의 같은 반 친구 키위 엄마들이 2명 더 앉아있었다. K까지 합치면 모두 백인 3명.



 

껄끄럽구나


서로 아이의 친구들을 초대하고 지냈기 때문에 얼굴은 익히 알고 있었다. 환대와 서로의 안부가 오갔다. 반갑게 인사했다. 같은 반 친구 엄마들(K, M, J)은 이미 차를 마시고 있는 상황이었고 대화중이었던 것 같았다. 나도 테이블에 앉았고 K는 서둘러 홍차와 스콘을 내 왔다. 그들은 빠르게 말을 오가다가 내가 들어서자 '잠시 멈춤'하는 상황인 듯했다. 방학을 보낸 이야기를  다시 이어나갔다. 말은 빨랐다. M은 이번에 간 시드니 호텔이 생각보다 서비스가 좋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했고 J는 작년에 갔던 시드니 호텔에 대해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우리나라에서 마치 제주도에 있는 호텔에 대해서 잘 알고 있듯 이들은 시드니가 그랬다. 다 알아들을 수 없는 상황이라 고개를 끄덕이며 어색하게 웃었다. 테이블 앞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스콘.  홍차를 마시며 스콘을 한입 떼어 입에 물었다. 입에 맞지 않는 퍽퍽한 스콘을 입에 물고 있는 느낌. 퍽퍽해서 잘 삼켜지지 않고 다시 뱉을 수도 없는 상황.  홍차를 한 모금 마신다. 아, 난 이런 상황이 너무 어색했다. 영어 소통이 부족한 것이 제일 큰 이유이지만 나는 그렇게 껄끄러울 수가 없다.  



© anniespratt, 출처 Unsplash


말할 틈이 없다


'아. 이번에 남섬 여행 다녀왔다고 하던데 맞지?'라고 M이 나에게 물었다. 두 명의 시선이 내 쪽으로 향한다. 나는 캠퍼밴 여행이 처음이었고 아이들이 많이 좋아했다고 했다. 퀸스타운, 크라이스트 처치, 마운트 쿡 등 여행했던 지역 몇 군데를 이야기하면서 길을 가다가 순간순간 멈추고 싶은 곳이 너무 많았다고 했다. 나의 느린 템포에 맞춰서 그녀들도 조금 천천히 이야기하는 것일까? 그런 것 같았다. '운전하기가 어렵지 않았냐', ' 어디가 제일 좋았던 것 같니', '날씨는 괜찮았냐' 등 묻고 나는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조금 지나자 다시 캠퍼밴 차종에 대해서 말이 오갔다. 차종과 캠퍼밴 회사에 대해서 나도 겪어 봤기 때문에 나도 할 말이 있었지만 내가 말할 틈을 찾다가 계속 놓쳤다. 나를 배려해서 천천히 말하는 것 같았지만 그래도 나에게는 빠르게 느껴졌다..




© composita, 출처 Pixabay


꿔다 놓은 보릿자루


내가 그랬다.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나는 테이블 한쪽 귀퉁이에 앉아있었다. 잘 맞춰진 퍼즐에 안에 껴있는 삐죽 나온 퍼즐 같았다. 홍차를 홀짝거리며 그렇게 몇 분이 지났을까.  "삐이~"하는 초인종 소리가 들린다. 초대받은 중국 아이 친구와 그녀의 엄마, E가 도착했다. E는 중국에서 태어났지만 홍콩에서 학교를 다녀 영어를 무척 잘한다. E는 내가 편했고 나도 그랬다. 익숙하게 내 옆에 앉는다. 키위 엄마 3명과 동양인 엄마 2명.  중국인이 있어서 일까. 대화는 '덤플링'으로 옮겨졌다. M은 시내에 있는 덤플링 레스토랑을 가 보았는데 괜찮았다고 했다. 자연스럽게 중국인 E에게 시선이 쏠린다. E는 가 보지는 않았는데 들어만 봤다고 했고 덤플링과 음식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대화를 유도했다. 영어를 잘하는 E도 키위 틈 속에 있는 자신이 어색해하고 있음을 나도 느낄 수가 있었다. 대화가 오가며 그렇게 한 시간 정도 지났을까. 중국인 E는 이따가 아이를 다시 데리러 오겠다고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도 같이 일어났다.





© marjan_blan, 출처 Unsplash




정적의 순간을 다르게 느끼다


외국인, 특히 백인들 앞에서는 항상 기가 죽었다. 반푼이 처럼 느껴지는 그런 느낌이 나는 항상 싫었다. 그날 저녁, 유튜브에서 이것저것 영상을 보다가 Culture Map이라는 책을 소개해 주는 영상을 보았다. 영어실력 말고도 외국인 앞에서 자기도 모르게 기가 죽는 이유가 있다는 내용으로 시작하는 영상이었다. 영어실력이 부족해서 그렇지 생각하며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던 것이다.  흥미로웠다. Culture Map은 동서양의 문화의 차이를 넘어 성공적인 비즈니스와 의사소통을 할 때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을 제시했다. 그리고 동서양의 의식 차이를 간단한 Map으로 보여주는 책이었다. 다양한 문화권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이 같이 어울릴 때 서로를 이해하지 못해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내가 흥미로웠던 것은 의사소통을 할 때 서양문화권에서는 한 사람이 이야기를 할 때 잠시 멈춤(Pause)가 매우 짧아서 (거의 기다려주지 않고) 다른 사람이 바로 치고 들어가서 이야기를 한다고 했다. 왜냐하면 서양문화권에서는 대화 중 정적의 순간이 있을 때 어색하고 불안하다고 한다는 사실이 매우 흥미로웠다






반면 동양인들은 한 사람의 이야기가 따 끝나고 잠시 멈춤(Pause)이 있어도 기다려준다고 한다.  심지어 중국의 한 종족은 보통 8초까지 기다린다. 그래서 보통 대화가 어색해하지 않고 대화가 충분하게 이뤄진다고 하는 영상이었다. 문화적인 차이에도 대화에 큰 영향이 있을 수 있다고 한다.



계절이 몇 번 바뀌었고 내 마음도 퇴적과 풍화작용을 몇 번 거친 듯했다. 여전히 꿔다 놓은 보릿자루 같은 느낌이 지워지지는 않는다. 그래도 정적의 순간을 그렇게 다르게 느낀다는 것을 이해하는구나. 


그렇게 이해하니 한결 가벼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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