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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마스테 Jul 25. 2020

정서적인 허기

 육개장 끓여놨어요



"별일 없으면 점심 먹으러 와요. 같이 식사라도 해요"

뉴질랜드에서 10년 넘게 살고 있는 나와 동갑인 한국인 친구 H 에게서 온 카톡 문자. 너무 반갑다. 감사하게도 맛있는 음식을 하면 나를 알뜰하게 챙겼다.   평소와 다름없이 그날도 별일은 없었다. 학교 Office에서 유학생 담당을 하고 있는 S와 만나기로 했지만 아이들 하교시간에 맞춰서 가도 괜찮았다.


한 끼 정도 같이 먹는 '밥'은 그냥 밥이 아니었다. 한국에서는 육개장을 끓어본 적이 없었다. 가까운 식당에서 사 먹으면 그만이었고 맛집으로 가려면 차로 10분만 가면 원하는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곳.  뉴질랜드에서 육개장을 끓이려면 마트를 2군데 이상 가야 했다. 고기를 사기 위해서는 대형마트나 고깃집으로 가야 했다. 양지 (Brisket) 살이 불고기, 찌개, 육개장으로 하기엔 적당했다.  파와 숙주 또는 콩나물이 필요하니 한인마트나 중국 마트는 필수였다.  나는 주로 아삭아삭한 콩나물을 많이 넣어서 먹었는다. 토란대와 고사리가 있다면 좋을 텐데 그것까지 바란다면 사치에 가깝다.



그냥 한 끼 식사를 넘어


운동이 끝나고 차로 15분 정도인 거리에 친구 집에 도착했다. 주방과 넓은 Dining room이 따로 있고 잘 관리된 정원에 바비큐 시설이 잘 갖춰진 중산층들만 모여 사는 곳이었다.  뉴질랜드에 5년 이상씩 살고 있는 지인들과 나처럼 유학생 엄마들이 모였다. 여자 5명. 육개장을 내놓는다. 그곳에 모인 우리들은 안다. 그 음식이 그냥 떡하니 나온 게 아님을.  식사를 하며 여자들만의 수다가 이어졌다.   


나는 좋아하는 쌀 국숫집이 없어졌다고 했다.

"H 씨. City에 있는 중국인이 운영하는  쌀 국숫집이 있잖아요. 안보이던데요?"

"아. 시티에 있는 푸드코트에 쌀 국숫집이요?

"네. 맞아요. 거기"

"새로운 상점이 들어선다고 해서 입점 해 있는 레스토랑들 다 내보냈다고 하던데요?"


 쇼핑몰 안에 있는 푸드코트 중 한 곳이었는데 저렴하고 푸짐하고 입맛에 맞아 한국인들이 자주 가던 곳이었다. 하얀 국물에 매콤한 소스를 마구 뿌린다.  한국 사람이 빵만 먹고살기는 힘들듯이 며칠 김치라도 못 먹으면 그 매콤한 것. 그게 뭐라고 그렇게 생각이 났다. 생각해 보면 왜 그리 매콤한 게 생각나고 자주 배가 고팠는지 모르겠다. 종종  디저트로 '쿠키 타임', '초코칩 쿠키', 치즈케이크' 또는 '에그타르트'를 먹기도 했다.




© karriezhu, 출처 Pixabay



정서적인 허기


'허기'는 삼시 세 끼를 꼬박 먹어도 가시질 않는다고 말을 덧붙였다. 


"S 씨. 그거 일종의 정서적인 허기예요."

"아. 아.. 정서적인 허기"


나는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정서적인 허기가 뭔지 알 것 같았다. 10년 이상 이민생활을 하던 3명의 지인들도 많이 느끼는 감정이라고 한다. 한 친구는 뉴질랜드에서 끼지 못하는 소속감, 즉 Sense of belonging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생각해보면 행여나 나의 행동 하나하나가, 아이들의 태도가 이들의 문화에 어긋나지는 않을까.  여기서 이런 행동을 하면 다른 사람들이 나와 아이를 어떻게 생각할까?라는 생활 속 긴장감이 있었다.


이방인처럼 느꼈던 서로의 경험들이 오갔다. 나 아이를 힐끗 쳐다보면서 소곤소곤 대화하는 두 명의 키위 할머니에 대해 이야기했다. 친구는 내내  미소를 머금다가 돌아서서 표정이 싹 바뀌는 아이 학부모의 얼굴을 보면 타자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대부분 사람들은 친절하고 관대하다. 하지만  괜스레 겁먹고 움츠러드는 느낌이 든다.



 괜스레 움처러든다 


Waikato Junior football club에 가입해서 아들은  6개월 동안 주말마다 축구를 했다. 30개가 넘는 팀들이 서로 경기를 하는 마지막 'Tournarment Day'. 아들이 속해 있는 팀은 16강에 들어가 오후에는 3경기까지 총 7경기를 뛰었다. 며칠 후 지역 커뮤니티에서 풋볼클럽 상을 받고 바비큐 파티가 있는 날. 50-60명 정도가 모였을까. 풋볼클럽에 속해있는 가족들은 바비큐를 즐기고 소시지를 먹고 아이들은 놀이터에서 자연스럽게 놀았다. 키가 훌쩍 큰 그들 사이에서 동양인은 나와 아이들 뿐이었고 나는 그 속에 끼지 못했다. 아는 사람도 없고 영어능력의 한계가 첫 번째 이유였지만 그들과 나는 다르다는 이질감을 느낀다. 괜스레 움츠러든다.  '꿔다 놓은 보릿자루' 그게 나였다.


아들이 활동한 축구 클럽




정서적 허기를 달래다


식사를 마치고 아포가토와 달달한 티라미수 케이크를 가지고 정원에서 이어지는 대화. 비슷한 경험들을 공유하고 나니 우리들만의 더 끈끈한 정이 생기는 것 같다.  '정서적 허기'를 느끼는 우리는 한국음식을 더 찾게 되고 한국 드라마나 예능을 더 찾게 된다. 해외에 있으니 더 한국에 대한 그리움이 더해진다. 친구들과 한식을 먹으며 서로의 고민을 나눈다. 한 끼 식사를 통해 정서적 허기를 달랜다.  


그냥 한 끼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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